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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단 마지막 범선 부기스 종족(Suku Bug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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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585회 작성일 2015-08-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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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범선 부기스 종족(Suku Bugis)
그리고 또라자 커피(KOPI TORAJA)와 마카사르(Makassar)
 
 
최문정(연구원팀장/디자인트레블 대표)
 
남술라웨시를 대표하는 마카사르, 부기스 종족은 고와(Gowa) 문명에서 출발한다. 15세기에 건설된 술라웨시의 고와 왕국은 2세기 동안 술라웨시 지역을 통치하게 되는데, 17세기 카라잉파팅알로 왕의 통치 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무역을 하며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마카사르는 16~17 세기 동안 고아 왕국 항구 및 국제 무역 중심지로 번성하게 된다. 주요 무역품은 세라믹, 면, 목재, 향신료 등을 수출하며 부강한 도시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나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 왕국 또한 전쟁으로 참패를 면치 못하며 쇠퇴하게 된다. 고와왕국의 패전으로 이곳의 지배층이었던 부기스 종족은 말레이 열도와 싱가포르, 파푸아 등지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거대한 범선을 타고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며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부기스 종족. 마카사르는 그들의 터전이었고 또라자 커피는 그들의 중요한 무역품이었다.
 
 
또라자 커피 (Kopi Toraja)
 
커피는 16세기 즈음에 아랍상인들이 술라웨시에 처음 소개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미 1500년대부터 마카사르는 중요한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1652년 London coffee가 아시아에 소개 된 이후로, coffee 무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동인도 회사가 1658년 Ceylon인 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커피무역을 시작함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커피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이차적으로 18세기에 다시 붐이 일었다. 1830년 마카사르 무역항을 통해 술라웨시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의 Gowa 왕국 시절부터 조금씩 커피 재배가 시작 되었으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부기스 족의 주요 무역품이었던 또라자 커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부터이다. 네덜란드가 부기스 족이 사는 따나 또라자의 남부 저지대에서 큰 규모로 커피를 재배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또라자 사람들은 물보다 커피를 더 사랑한다고 한다. 손님에게 커피를 청하는 것이 예의이자 인사라고 한다. 하루를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며 시작 한다고 하니 굉장히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또라자의 아라비카는 현재 자메이카 커피를 뒤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수출이 되었던 커피는 종전 이후 약 20년간 주춤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의 커피 산업은 일본의 투자로 활력을 되찾게 된다. 북부 따나 또라자의 고지대에서 일본과 인도네시아 인이 함께 만든 벤처회사 PT. Toarco가 일본 마켓에만 독점적으로 커피를 공급하고 있다. 술라웨시 섬 중앙 산악 지역의 적도에 위치한 커피 농장은 해발 150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커피를 생산하는 최상의 고도에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고급 커피로 알려진 또라자 커피는 묵직한 바디와 진한 초콜릿 향이 가미되어 아라비카 커피의 걸작으로 평가되며, 고급 커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품질관리에도 노력을 많이 하여 직경 7.5mm 에서 6.8mm 사이의 녹색콩만 사용하여 최상급의 또라자 커피를 생산해 내고 있다.
 
 
부기스 종족(Suku Bugis)
 
부기스 족들은 마카사르 족과 함께 마카사르를 술라웨시 남부 지역의 Gowa 왕국의 관리 직원 및 상인 이었던 종족으로 술라웨시 전역에 분포되어 살아왔었다. Gowa 왕국 당시 300만 명 이상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말라유를 사용하며 문화유산을 많이 가진 문명화된 부족으로 평가된다. 그들은 해상 종족임에도 유목종족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위계 구조가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비슷하고 인도의 문학양식도 받아들이는 등 인도의 문명을 많이 가지고도 있으나, 100명 정도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유목 종족으로의 특징도 나타난다. 일찍이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1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부기스 족들은 모험심과 해양술이 뛰어나며 선원 또는 상인으로 활동하였고, 일부는 해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주요 거점지인 마카사르는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교역 항구로 번성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전투를 벌였고, 마카사르가 네델란드에 정복당하자, 술라웨시를 떠나 말레이 열도로 이주했다.
그들은 큰 돛을 가진 범선으로 잘 계획된 항로로 여행하며 향신료 무역상들에게 유명했다. 설계도도 없이 못도 사용하지 않고 배를 만들고 항해도도 없이 별을 보며 달을 보며 항해한다. 그들이 만든 배를 삐니시(Pinishi)(길이 20~30m, 폭 5~6미터, 무게 30~200톤, 돛 7개)라고 하는데 지금도 순다끌라빠 항구에 밝은 색으로 물들여져 줄지어 정박해 있어 그들의 조선 능력과 항해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할 수 있다. 2개의 직사각형의 돛대 위에 각 삼각형의 돛대가 달려있다. 그리고 뱃머리에 3개의 삼각형의 보조 돛이 있다. 과학적인 7개의 돛의 모양을 보면 삐니시가 얼마나 빠르게 운항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삐니시는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항해할 수 있는 범선으로, 찬란했던 남술라웨시의 고아문명의 역사를 말해준다.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600만 명의 많은 부기스 족은 동남 술라웨시, 중앙 술라웨시, 파푸아, 자카르타, 동부 칼리만탄 등 여러 지방에 퍼져있다. 말레이시아 반도, 싱가포르 등지에도 살고 있다. 그들은 영원한 항해자로 기록된다.
 
 
마카사르 Makassar
 
마카사르(Makassar)는 술라웨시 섬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동인도네시아의 중심항구가 된다. 수도인 마카사르는 인도네시아의 동쪽 관문이었고 향신료 무역으로 유명했다. 실크, 사롱, 금,・은 세공품, 향신료, 매운 해산물 구이로 유명하다. 남부 술라웨시 섬 네 개의 주요 인종 그룹 중 가장 큰 그룹이 부기스 족 및 마카사르, 만다리즈 (Mandarese ) 족은 해안 근처에 거주하며 선원과 상인들의 후손들로서, 바다를 바탕으로 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네 번째 주요 인종인 또라자(Toraja) 족은 바다에서 먼 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슬람, 기독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 수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한편 마카사르는 1971~1999년까지는 우중빤당(Ujung Pandang)이라고 불리어졌다. 타 도시로 가기 위한 환승 항구로도 유명한 이곳은 예술을 찾는 방문객들과 그들을 따스하게 환대하는 마카사르 인들로 인해 번성해 왔다.
 
번떵 솜바 오푸 요새 Benteng Somba Opu Fortress
 
포트 노트르담 요새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카사르 로사리 해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16세기 술탄 하사누딘(Sultan Hasanuddin)과 Gowa 왕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투쟁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somba opu였고, 네덜란드 식민지 후, 이곳의 총독이 살던 도시 노트르담 이름을 빌려와 포트 노트르담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식민지 시절에는 이곳은 향신료 구입 및 무역센터로 이용했었다. 바다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어, 해일에 의해 침수되기도 한다. 1669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파괴하였고, 1990년대에 다시 복구 되었다. 과학자 알프레드 월레스 (alfred Wallace)는 인도네시아에서 지어진 요새 중 가장 견고하게 지어진 요새로 평가한 바 있다. 발루와라 아웅 (Baluwara Aung)이라 불리는 길이 9m, 무게 9,500kg에 이르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박물관에는 Gowa의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부기스 족의 범선인 Pinish도 잘 설명해 놓았다. (한*인니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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