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단 모국어와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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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빈
자유기고가
맹모삼천지교, 우리나라 부모님의 유별난 자녀교육열에 빗대어 자주 쓰이는 고사성어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 필자의 부모님 세대는 이 뜨거운 교육열의 비자발적 가해자일 것이며, 필자 또래들은 이 교육열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암묵적으로 가해자가 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사람이 없어 취업난이 사라지고 구직자와 기업간의 난공불락과도 같던 갑을관계가 역전되는,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가장 본연의 원초적인 본능과 관련한 이 아이러니한 위기를 맞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주변에 여전히 아이들은 많다.
끝나길 바라지 않았지만, 다음이 보이지 않아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에 항상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캠퍼스 생활을 마치고 커다란 사회로 발을 들이고 나니, 편협하기 짝이 없던 시각이 넓어지며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필자에게는 아이들이 그러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학교 다닐 때 새벽마다 아파트 로비에서 같이 눈을 부비부비하던 꼬맹이들이(지금 보면 걔네나 필자나 개찐도찐이나, 당시에는 본인이 무척 어른이었다) 팔다리가 쭉쭉 뻗은 중고등학생이 된 것을 알아차린 지도 얼마 전의 일이었다.
물론 그 녀석들은 필자를 잘 모를 테지만, 아이 티를 막 벗어난 아이들에게서 기억에 남아있던 옛 얼굴을 찾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또 기억 속에서 항상 불량식품과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었던 아이들 손에 이제는 두껍고 보기만 해도 재미없어 보이는, 흑백으로 복사된 두꺼운 문제집이 들려 있으니 당시에 나름 치열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 당시에도 끊임없이 고뇌하게 만들었던 하나의 생각, 사실 지금까지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와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하다.
얼마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일이 있었다. 교회는 항상 사람이 붐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이다. 특히 아이들이 엄청 붐비는 장소에 잠시 볼 일이 있었는데, 그곳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화를 영어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유창한 발음으로. 신세계였다. 그래서 말 한마디 걸었다.
'너 영어 무척 잘하는구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Excuse me?' 눈을 끔뻑끔뻑 뜨면서 귀를 가까이 대고 다시 묻던 그 아이의 해맑은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궁금하다. 내 말을 정말 못 알아 들어서 저렇게 물었을까, 아니면 저게 편해서 저렇게 물었을까.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몹시 대단하지만(오바마 대통령이 벤치마킹을 운운했으면 말 다했다), 특히 외국어에 관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른은 물론이고 그 밑에 아이들마저도 자기동기라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없는 상태로 언어를 학습하게 된다. 아 물론, 취업이 가장 강력한 자기동기라는 점에는 부정하지 않겠다.
덕분에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학원들은 망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보낸다는 사실을 원장들은 너무도 잘 안다. 바야흐로 가구당 부채가 6000만원이 넘어가는 시대가 오고 만 것이다.
그 동기부여를 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언어유학이다. 말 안 통하는 곳에 홀로 남겨지면, 자연스럽게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도네시아는 또 다른 기회의 땅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외국어 교육 여건이 좋은 곳이라면, 내 자녀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필자가 나열한 것처럼 이상적으로 동기부여가 돼서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잘 구사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같은 방향이면 모를까,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튀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모국어와 외국어는 정말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방향성이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확립하는 일, 다시 말해 모국어를 잘 구사하고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기유학의 실패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국의 문화와 모국어가 확립이 되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외국어를 구겨 넣으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되거나, 그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잘 구사하지만 정작 모국어는 없는 그런 아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공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있었으며, 그 수도 늘고 있다. 벤치마킹을 위해 성공사례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하지만 왜 출간되는지를 따져보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적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 밖 사석에서 담소를 나누다 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자녀’다. 사정상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임무 수행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함께 나와서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족 그리고 자식은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어찌보면 지독한 습관 같은 것인가 보다.
'와, 애들 고생한다. 우리 애들은 그 때 그렇게 안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애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자주 오고 가는 대화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학교 생활과 대한민국의 학교 생활은 정말 다르다. 그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읽는 이들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요즘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필자에게는 조금 낯선 대한민국식 교육이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너무 현실적이라고 한다. 즐겨보는 만화 캐릭터를 쓰거나, 터무니없는 꿈을 쓰면 특이한 아이가 된다. 벌써부터 꿈이 아닌 장래희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꿈에 가까운 꿈을 꾸며 산다고 생각한다.
너무 존경하는 한 부장님께서 꿈이 뭐였냐는 질문에 멋쩍게 대답한 적이 있다. 아직 필자에게는 너무 먼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그리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꿈? 이제 없다 그런거, 대신에 내 자식들이 꿈을 꾸며 살 수 있게 해줘야지, 부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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