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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단 쯔빳쯔빳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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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3건 조회 16,173회 작성일 2015-03-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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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빈  
자유기고가   
                                       
 
 
“Cepat-cepat!”(“쯔빳쯔빳!”)
인도네시아가 어떤 곳인지 몰랐던 어린 나이의 필자가 수카르노 하따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처음 들었던 인도네시아어였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들은 운전 기사는 짐을 싣자마자 재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와 엑셀을 밟았던 것 같다. 당시 영어 말고는 외국어를 접할 기회가 전무해서 발음상 된소리가 자주 나오는 인도네시아어가 처음에는 무척이나 생소하면서 웃겼다. 특히 쯔빳쯔빳은 자주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혼자 웃고는 했다.
하지만 이 쯔빳쯔빳이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많이 통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업이 바로 신발제조다. 90년도 후반 당시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쪽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필자의 아버지 역시 신발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자카르타를 제외한, 공단이나 공장부지들이 많은 지역에는 법인공장부터 개인공장까지 다양한 신발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졌다. 또한 신발제조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격 화끈하기로 유명한 부산 출신이라, 아버지가 저녁식사를 초대한 지인도, 옆집에 사는 필자의 친구 아버지까지 죄다 부산이었다(심지어 같은 동네였다). 사실 법인을 대표해서 오거나 이곳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일의 추진력이나 업무처리 능력이 굉장히 빨랐는데(그랬기에 법인을 대표해서 왔거나 일찌감치 인도네시아의 비전을 보고 개인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쯔빳쯔빳의 남발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던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일터에서 그랬듯이, 인도네시아에서도 평소처럼 가능한 모든 일을 ‘빨리빨리’, 동시에 ‘정확하게’ 처리하고 싶다. 하지만 현지에 가장 능한 것은 현지인이라, 고용을 했으니 내 의지대로 일 처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왠걸?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유가 많고 업무가 우선이 아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이고, 인도네시아니까(당시 인도네시아는 모든 것이 너무도 열악한 개발도상국, 아니 후진국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절대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다. 저건 습관이다. 그러니 닦달해야 한다. 쯔빳쯔빳!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 다시 쯔빳쯔빳!
 
하지만 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최근 불거진 과격한 이슬람 문화가 아닌 다수를 포용하는 그들만의 이슬람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수 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엄청난 다민족∙다문화 국가 등 인도네시아를 수식하는 문장들만 봐도 그들이 추구하는 포용, 더 나아가 느림의 미학을 알 수 있다. 순리에 삶을 맡기되, 결코 쫓지 않는다. 때문에 생활방식만 하더라도 우리와 다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조금이라도 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몇몇 예가 있다. 우선,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 심지어 무단횡단을 할 때도 인도네시아인들은 절대 뛰지 않는다. 높게 손을 들고 천천히 걷는다. 당시에 이것이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운전기사에게 물었었는데, 빨리 뛰면 횡단보도 끝나는 지점을 지나는 차에 부딪혀서 사고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 간단하고 막연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빨리 밟던 차들도 사람이 지나가면 무언의 약속처럼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었다. 사실 그렇게 건너가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답변이었다. 또 인도네시아인들은 딜레이에 굉장히 관대하다. 주말에 장을 볼 때 줄이 아무리 길어도, 심지어 바코드 문제로 카운터 직원이 자리를 비우고 함흥차사라도, 아무렇지 않게 기다린다. 사실 이 때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역지사지로, 인도네시아인에게 당시 부산 사람들의 크고 짜증 섞인 억양의 쯔빳쯔빳은 무척이나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선천적으로 화내거나 짜증내기보다는 웃어 넘기려고 하는 편인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짜증과 화를 유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 인도네시아인들도 빨리 하라며 화를 내는 고용주들이 정말 못마땅했을 것이다. 상관의 지시라 결코 무시할 순 없지만, 본질적으로 왜 빨리 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성격 급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보다 단지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불 같은 성격의 한국 사람들을 비교할 때 수마트라 사람들이 언급되곤 하는데, 실제로 수마트라인들이 지리적으로 전쟁과 수탈이 빈번해서 성격이 급하고 불 같으며 짜증이 많은 민족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한국인들 관점에서 일 잘하는 인도네시아인들 중에는 수마트라 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몇몇 인도네시아인들의 의식이나 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취업을 하거나 이직을 할 때 한국 고용주보다는 다른 외국인 고용주를 선호한다거나,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쯔빳쯔빳이라는 말에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일화는 예전에 필자 아버지가 사무직원을 뽑는 인터뷰를 볼 때 실제로 겪은 일이다. 이 현지인이 한국 고용주 밑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꼭 채용을 하고 싶었으나(분명히 업무를 ‘빨리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현지인이 쯔빳쯔빳을 자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깨끗이 포기했던 적이 있다. 이 외에도 당시에 외국 고용주 중에서는 한국 고용주보다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더 선호하는 현상도 잠시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철저하게 고용인으로 현지인들을 취급해버리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는 훨씬 따뜻한 인정으로 대하는 한국인들이지만, 단순히 급한 성격을 이유로 그들에게 고용주로써 기피 당한 것이다. 심지어 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월급도 훨씬 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이런 성향을 보이는 인도네시아인이 있었다는 것이지, 절대 우리나라사람들과 일했던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이 그런 성향을 보였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 주변에는 가정부나 운전기사와 10년 이상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으며, 한국인들의 방식에 금방 적응해서 그들 밑에서만 일하려는 이들도 분명히 많았다. 하지만 소수일지언정 이러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따른 사회 현상을 ‘쯔빳쯔빳 증후군’이라고 분석한 어느 인도네시아 교수의 칼럼이 있었을 정도니, 정말 신드롬(syndrome)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한국인들의 영향력과 목소리, 그리고 급한 성미는 정말 유명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도네시아인들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방식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약진을 반복하며 과거 선진국들이 이뤄온 경제성장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식 역시 보다 글로벌해졌으며,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들은 자신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회사에 일방적으로 고집부리고 존중 받기를 원하기 보다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윈-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효율성을 해치는 쯔빳쯔빳보다는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포용하는 방법으로 효율의 극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 중 하나가 바로 인도네시아어 교육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교육보다는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인도네시아어를 습득해서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비파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문화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으며, 수강생의 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또 업무현장에서도 인도네시아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은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인도네시아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겠는가, 또 문화를 공유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이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겠는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지만, 당시에는 그 순서가 조금 어긋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쯔빳쯔빳이라고 무작정 외쳐대던 옛날 한국 사람들도, 장관님의 외국근로자 인도네시아어 시험 때문에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인도네시아어를 배우려는 지금 우리들도, 모두 인도네시아 생활이라는 커다란 과정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말, 그야말로 황무지 같은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상대로 당당히 외화를 번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그들을 따라주는 인도네시아인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지금의 초석이 닦아지지 않았나 싶다. 또 고무적인 것은 비교적 수동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인도네시아인들 역시 능동적으로 변했고, 업무를 비롯해 생활 역시 ‘빨라’졌다. 이는 계속 약진해온 경제성장률과 더불어 이제 더 이상 인도네시아를 호락호락하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덕분에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준비의 일환으로써, 사실 당연하지만 계속 등한시되었던 인도네시아어 교육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고 만다. 한국인 특유의 강단과 속도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인도네시아인들도 충분히 본받고 그들의 문화에 적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우리는 쯔빳쯔빳!이 아닌 적당한 쯔빳쯔빳을, 인도네시아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윈-윈 해야 할 때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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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님의 댓글

작성일

글이 참 와닿네요ㅎㅎ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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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님의 댓글

디제이 작성일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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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님의 댓글

01 작성일

참 공감 가는 글입니다. 그리고 반성이 되네요, 잘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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