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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단 다양성 속에서 이루어내는 균형과 공존 -자카르타를 살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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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972회 작성일 2015-11-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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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 머무는 기간이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녔다. 뿐짝, 반둥, 족자카르타를 다녀오고 나서야 자카르타를 둘러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인도네시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가 풀리지 않은 지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부터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방패, 가루다, 다양성 그리고 적도
 
오전 8시에 한•인니문화연구원에 도착하였다. 투어를 위해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우선 연구실에 앉아 사공경 원장님의 간단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인도네시아 문장이었다. 문장은 가루다 가슴을 방패가 보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가루다는 힌두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녔다고 한다. 방패 모양의 마크 속에는 빤짜실라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 건국이념이 담겨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다문화가 어우러져 구성된 국가이다. 또한 힌두, 불교, 이슬람,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들어와 각자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역사 가운데 서로 간의 반목으로 인해 겪었을 갈등 사이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틀을 정해 무조건적으로 맞출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여러 갈래의 뿌리를 바탕으로 하나의 줄기로 뻗어나가 그 끝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뻗쳐 나가는 가지로 표현하였다.
 
이 외에도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방패 모양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굵은 검은 선에 대한 것이었다. 이 검은 선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를 가로지르는 적도에 대해 자부심을 표현해 놓은 것이었다. 사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 전에는 적도 부근의 위치나 사시사철 더운 날씨는 불평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문양에서조차 이들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인의 삶
 
묘비박물관은 신분이 높은 네덜란드인 가톨릭교인을 위한 묘지였다고 한다.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어떻게 살았던 그들은 지금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래서 죽음은 공평한 것인가.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박물관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부터 인도네시아 전역의 가옥 모형, 그리고 바틱과 도자기 같은 문화재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의 경우 한반도 북부와 남부의 기후 차이로 인한 구조의 차이 외에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동일한 형태를 보이지만, 인도네시아 가옥은 섬마다, 그리고 부족별로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뱀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은 가옥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기둥을 네모나게 가공한다던지, 부족의 전통문양을 처마에 새겨놓는 등 인도네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옥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박물관의 한편에는 힌두교와 관련된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이슬람이 이 땅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힌두교와 불교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발리는 현재 힌두교) 모든 사물마다 영혼이 존재하고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다신론, 범신론의 힌두교. 어쩌면 인도네시아의 다양성 존중에는 힌두교의 이런 신앙적 바탕도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균형과 공존
 
박물관 이후 점심식사를 한 뒤 우리가 향했던 곳은 동남아시아의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인 Mesjid Istiqlal이었다. 모나스 광장의 북동쪽에 있는 이곳은 1955년에 건축위원회가 디자인 공모를 하면서부터 구상이 시작되었는데, 공모전에서 채택된 디자인은 다름 아닌 프로테스탄트 건축가 F.Silaban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교체 없이 건설이 시작되었고,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약 인도네시아가 아닌 다른 무슬림이 많은 국가였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한 번 포용, 화합을 중시하는 인도네시아를 알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트였던 Silaban은 그의 디자인 속에 완벽하게 이슬람을 녹여냈다. 열두 달 혹은 마호메트의 생일을 의미하는 열두 기둥, 코란의 6666구절을 상징하는 뾰족탑의 높이 6666cm.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세 가지 문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고 있었다. Silaban에 대한 설명이 없었더라면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인도네시아임을 잊을 뻔 했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국가이지만 이슬람국가는 아니다.
 
 
우리가 입장할 당시는 기도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슬람 신도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둥 옆에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슬람 사원의 맞은편에 성당과 멀지 않는 곳에 있는 200년 된 임마누엘 교회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이슬람 사원, 개신교 교회, 가톨릭 성당이 가까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신선했다. 오늘날 세계는 종교적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 있지만, 이곳 자카르타에서만큼은 온화한 날씨,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커피의 철학
 
투어의 마지막은 영화 관람이었다. 제목은 ‘Filosofi kopi'(한국 개봉명: 커피의 맛)로 인도네시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커피와 관련된 영화다.
 
인도네시아는 커피 4번째 생산국으로 높은 품질의 커피콩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커피란 차와 마찬가지로 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식민지때 들어와 플랜테이션을 통해 이 땅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흘렸던 땀과 노력, 정성들이 지금의 인도네시아 커피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지만 커피는 인도네시아 인들의 노래가 되고 향기가 되었다. 또한 양질의 커피콩을 만들어 내기 위한 사람들의 고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향기로운 커피 한잔과 함께한 영화 관람의 시간까지, 오늘의 투어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약 10시간 동안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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