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만화영화 <니모나(NIMONA)>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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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만화영화 <니모나(NIMONA)> 관람 후기
배동선
이번엔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이다.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스(Blue Sky Studios) 작품 <니모나(Nimona)>가 6월 30일 넷플릭스에서 프리미어 스트리밍 되었다. 미국에서는 그보다 일주일 전인 6월 23일에 일부 오프라인 상영관에서 먼저 개봉했다고 한다.
평론가들이 최근에 나온 스파이더맨 만화영화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버스>와 <엘리멘탈(Elimental)>을 대체로 찬양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의 다른 만화영화
<니모나(Nimona)>는 아무래도 좀 불편하다. 남성들 사이의 동성애 코드가 적잖은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 그리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프리미어 스트리밍이 바로 엊그제였으니
이후 본격적으로 나오게 될 평단의 평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족과
어린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디즈니가 동성애 코드 때문에 이 만화의 제작에서 손을 뗀 시점에서 평단과 관객의 평가를 이미 어느 정도 결정지은
것이라 보인다.
아이러니컬한 부분은 이 만화영화가 바로 편견을 벗어나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주제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통해 강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적 중세(?)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왕국와 국민들에 대한 책임을 지키려는 귀족 중심 기사단
속에서 평민 출신 기사가 겪는 차별과 모함, 일그러진 전설로 인해 고대의 치명적 괴물로 지목되어 길고
긴 세월의 고독과 비난을 견뎌온 핑크빛 개구장이 니모나가 진정한 친구를 찾아 마침내 자신을 희생마저 불사하는 노력과 분투는 익숙한 성공코드를 모두
담고 있다.
전통적 편견에 짓눌린 사람들이 역경과 각성을 통해서만 비로소 낼 수 있는 용기를 멋진 장면과 설득력있는 스토리 속에 장착해 보여주었는데
만약 그것뿐이었다면 이 영화는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큰 반향을 얻고 여러 평론가들의 입에 긍정적으로 오르내렸을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 발리스터 볼드허트(Ballister Boldheart)과 절친 암브로시우스
골든로인(Ambrosius Goldenloin), 두 명의 멋진 기사들 사이의 동성애적 우정이 끈끈이
이어지는 또 다른 스토리라인은 관객들 수긍을 얻어내기엔 허들이 높다.
주인공들이 모든 시련과 거대한 음모, 차가운 여론에 맞서 싸우는 언더독의 모습은 전형적인
영웅 탄생의 서사이지만 하필 그들이 동성애자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는 그 부분을 배경적
팩트로 기정사실화 하며 접근하고 있다. 별다른 설명도, 해명도, 변명도 없이 그렇게 시작해 버린다는 점이 무방비하게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사실 극중 주인공들의 동성애를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별도의 서사나 배경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차별적이고 꼰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부분을 특별히 설명하거나 포장하지도, 설득하려
하려 하지도 않는다. 하긴 그게 더 어른스럽다.
난 한때 개인적으로 꽤 오래동안 미용기기 수입판매사업을 하면서 성적지향성이 다른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았다. 그들은 대개 '벤쫑’이라
부르는 여성적 취향의 남성들이었는데 그들 중엔 남성성을 가지고도 스스로 여성역할을 하는 뻬웡(pewong), 그
상대역인 남성역할의 레꽁(lekong)이 있었다. 스스로
가장 남성적이면서도 다른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추구하는 전형적인 게이와 마침내 성전환에 성공한 트랜스젠더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를 '호모' 또는 '게이'라는 말로 통칭하긴 어렵다.
여성들의 경우엔 어떨지 모르나 사람세상은 다 비슷한 것어서 흔히 '레즈'라고 통칭되는 이들 역시 좀 더 폭넓은 성적 취향의 스펙트럼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미용사업을 하면서 덤으로 얻은 것은 이 세상엔 외과적, 해부학적, 물리적으로만 결정하는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에는 정서적, 관념적 취향과 성향, 지향성
등에 따라 어쩌면 수십 개의 성이 실존하고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그러니 난 좀 덜 놀래야 마땅했지만 다른 남성 품에 안기거나 건장한 남성의 다정한 키스 장면 등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절대 안된다고 비토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으니 좀 미안하다. 멀쩡한 피투성이 호러영화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정상인 것처럼 내 성적 방향성도 그들의 성적취향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퀴어 축제나 성소수자들의 입장을 납득하고 십분 응원하는 것은 그들의 논리에 동의하고 그들의 권리를 함께 지켜준다는 의미이지 나 스스로
그들의 성적취향에 동승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 내 정체성과는 아무 관계없이 신념에 따라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잘 안되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서 <니모나>는 훌륭한 작화와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그 진입장벽이 좀 높은 영화다. 하지만 영화상 묘사된 동성애 코드를 극복할 자신만
있다면 걸출한 만화영화 한 편을 마침내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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