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속 우스탓들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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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우스탓들의 활약상
배동선
(dok. Magma Entertainment/Rapi Film via Instagram @qodrat.movie )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속에 이슬람 교사인 우스탓(ustaz)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인데 우스탓이 사악한 영들과 싸우는 역할로 나오는 것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인도네시아의
문화-종교적 배경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슬람 교세가 더욱 커지고 어느 정도 극단적이라 할 근본주의 이슬람까지 힘을 얻는 최근에 영화 속 우스탓들은 좀 더 다양한 모습과
역할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뽀쫑, 꾼띨아낙으로 대변되는 귀신들과 산뗏, 뻴렛 같은 흑마술을 매우 두려워하는 이유는 실제 그러한 고대의 애니미즘적 문화가 여전히 그들 일상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귀신과 무속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영화에도 종교적 가치가 끼어들면서 청렴 강직하고 신실한 이슬람 교사이자 설교자인 우스탓의 모습을 하고 영화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영화 속 우스탓들은 마을 어귀 조그마한 모스크(머스짓)에서 매일 만나는 이웃이지만 사탄과 맞설 만한 높은 영능력을 가진 신실한 전문가, 신의 대리인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에서 늘 사람 등 뒤에 나타나는 뽀쫑 귀신
(dok. Starvision Plus via YouTube)
영화 속 우스탓들은 어느 정도 그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있다. 그들은 반드시 나이 지긋한
남자로 등장하는데 그래서 영화 <코린(Qorin)>처럼
간혹 잘생긴 젊은 우스탓이 공포영화에 나타나면 사실은 몰래 사탄을 섬기는 교활한 배교자이기 쉽다.
그들은 꼬꼬(koko) 복식에 머리엔 꼬삐아 모자, 목엔
소르반 천을 두르고 손엔 묵주가 들려 있다. 묵주는 천주교나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슬람에서도 묵주는 필수품이다.
이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악령들에게 고통을 받을 즈음 등장해 퇴마에 성공해 감사를 받기도 하고 퇴마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엑소시스트>나
<검은 사제들>의 신부들과 같은 포지션이다. 단지
구마사제들이 바티칸에서 특별한 자격을 얻거나 따로 공부하는 것처럼 뭔가 특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신실한 무슬림이 신의 뜻을 따라
정진하면 자연히 영능력과 항마력이 생긴다는 설정이다.
물론 우스탓들은 호러영화뿐 아니라 일반 드라마에서도 등장해 주인공들을 위로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유명한 중견 조연배우 끼끼 나렌드라가 <사탄의
숭배자 2: 커뮤니언)>에서 주인공들을 돕는 우스탓으로
분했다. 그가 쓴 모자가 꼬삐아, 어깨에 두른 것인 소르반
천(둘둘 말면 목도리가 됨), 입은 옷이 꼬꼬 복식이다. (Screenshot dari Instagram @kikinarend)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진화
영화 속 가장 전형적인 우스탓의 모습은 1980년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영화
스토리라인이 궁극적으로 신의 영광과 신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영화제작 윤리강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반헤이렌(Van Heeren)이 쓴 ‘끼아이의
귀환: 수하르또 시대 이후 영화, TV 속 호러의 표현, 상업성 및 검열’이란 제목의
2007년 연구보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끼아이의
귀환’이란 제목은 조지 루카스의 ‘제다이의 귀환’을 오마주한 것이 분명하다.)
1981년에 발표된 영화제작 윤리강령에는 "스토리 라인에서 주인공과 적대자 사이의
대화, 장면, 시각화 및 갈등은 전능하신 신에 대한 경건과
영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래서야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겠냐 싶겠지만 어쨌든 이 윤리강령으로 인해 1980~90년대에 만들어진 모든 영화에
우스탓이 등장하고 우스탓의 캐릭터가 영화의 주요 요소이자 스토리라인을 풀어나가는 데에 핵심적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수하르또가 몰락하며 신질서시대가 끝나자 우스탓 역시 더 이상 영화 속 필수 등장인물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즉 우스탓은 모든 공포영화에 꼭 등장해야 하는 필수 캐릭터가 아니었고 설령 등장한다 해도 반드시 훌륭한 퇴마사
선량한 선생일 필요가 없어졌다.
이후 영화 속 우스탓은 사뭇 이질적인 모습을 띄었는데 곧잘 악마에 빙의되거나 패배하고 영화 중간에 악령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슬람 선생인 우스탓, 끼아이들은
더 이상 스타워즈의 제다이 같은 영웅들이 아니라 때로는 지독한 이기주의자, 또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코린> 속의 악당 우스탓 (dok. IDN Pictures via
Instagram @omardaniel_)
영화 및 대중문화 전문가 힉맛 다르마완(Hikmat Darmawan)은 우스탓을 파괴적
캐릭터로 묘사한 조꼬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2017), <코린(Qorin)>(2022), <코드랏(Qodrat)>(2022)등 세 편의 영화를 예로 들었다. 거기
등장하는 우스탓들은 예전의 천편일률적 정의의 사도 우스탓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역할을 보인다.
<사탄의 숭배자>에서 우스탓은 악령을 물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악령의 제물이 되어
매번 살해당한다. 한편 <코드랏>의 우스탓은 헐리웃 영화 <콘스탄틴>처럼 퇴마, 즉 루키야(ruqyah)
의식을 전문으로 하는 거칠고 고독한 존재로 묘사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코린>에 등장하는
우스탓이다. 여성 전용 이슬람기숙학교 쁘산뜨렌의 교사로 등장하는 우스탓은 사실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여학생들을 겁탈하고 악령을 섬겨 쁘산뜨렌을 지옥으로 만드는 빌런이다. 우스탓을 본격적으로 악당 캐릭터로
포지셔닝한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스탓에 대한 묘사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것은 영화 창작 과정과 영화계 배경이 비교적 자유로움을 시사한다. 감독들은 이제 반드시 우스탓을 선량하고 신실한 교사나 유지로 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강박관념을 버리고 특색있는
우스탓 캐릭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100% 자유롭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종교와
관련한 영화 속 표현의 자유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 연출하면
곧바로 신성모독으로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모독엔 약이 없다.
용서를 빌고 전체적인 수정하거나 개봉을 포기하거나 다시 제작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도 영화 <끼블랏(Kiblat)>이
기도하던 무슬림이 악령에 빙의되는 장면을 너무 무섭게 표현했다가 기도의 신성함을 해쳐 무슬림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비판받아 결국 영상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제작사는 부득이 해당 영화를 다시 찍기로 했다.
우스탓에 대한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속 우스탓들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선의에
가득찬 신령한 이들로 묘사되지만 그들이 다양한 캐릭터에 배치되다 보면 어느날 악랄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날도 올 것이고 어느 유력한 이슬람 단체가
전가의 보도처럼 또는 조자룡의 헌칼 처럼 ‘신성모독’이란
칼을 뽑아들고 문제삼으며 덤벼들지도 모를 일이다.
▲2017년 로컬영화 흥행수위를 찍은 <사탄의
숭배자> 1편에서는 저명한 중견배우 아르스웬디 브닝 스와라(Arswendi
Bening Swara)가 우스탓으로 등장했다. (dok. Rapi Films via IMDb)
조코 안와르 감독과 아위 수라이디 감독의 우스탓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 1편(2017), 2편(2022)에서 우스탓들은 모두 악령에게 당해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조코 안와르 감독은 CNN인도네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우스탓을 불완전한 인물로 묘사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종교만으로 악령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완벽한 사람이야말로 시련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우스탓에게 의지하지 말고 신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탄의
숭배자>는 마치 옛날 그레고리 팩과 리 래믹의 <오멘> 분위기를 풍기며 국제적인 오컬트 집단과 늙지 않는 사람들(아마도
뱀파이어?)들이 배경에 깔리는데 아무래도 완전히 신에게 의지하진 못할 것 같은 주인공들이 반드시 제작될
것으로 보이는 3편에서 영화 속 거대한 흑막집단과 불길한 악령들을 어떻게 맞설 지 기대되기도, 우려되기도 한다.
한편 인도네시아 최초 천만 관객 호러영화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2022)와 <자바땅
이야기: 대머리 뽀쫑(Kisah Tanah Jawa: Pocong
Gundul)>(2023) 등을 만든 호러 장인 아리 수리아디 감독은 영화 속 우스탓 등장에 대해 조코 안와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MD 픽쳐스의 호러영화 프랜차이즈인 ‘다누르(Danur) 유니버스’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속에도 무슬림들이 등장하고 숄랏 기도하는 장면들도 나오지만 우스탓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스탓 포지션에 다른 인물이 등장해 악령과 맞서는 것을 돕는다. <무용수마을~>에서는 인간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어려운 두꾼이 등장해 인간의 마을을 지키고 인간과 마물의 경계를 넘어가버린
학생의 영혼을 되찾아오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두꾼조차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들끼리 문제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영화 속에 우스탓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아위 감독은 뭔가 오해를 일으킬 것이 두려워 자신의 영화 속엔 절대 우스탓을 소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을 애당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영화 속 종교적 장치는 아위 수리아디 감독 같은 배테랑 연출가마저 그렇게 우려할 만큼 민감한 것이다.
<파묘>는?
그래서 어쩌면 최근 한국영화 <파묘>의
인도네시아 흥행 이유를 ‘종교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파묘>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관련 요소가 전혀 없으니
신성모독에 휘말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같은 이유로 영화 <살아서도 죽어서도(Sehidup
Semati)>에서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기독교인으로 설정했고 2023년 최고 흥행작 <세우디노(Sewu Dino)>에서는 오직 원초적인 자바의
고대 무속을 보여주면서 숄랏 기도 장면이나 우스탓 등 이슬람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파묘>는 종교적으로 그 외의 ‘특별한’ 요소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종교가 한꺼번에 등장하거나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참신했을 것
같다.
무당 이화림과 박수 윤봉길, 아무래도 애니미즘에 가까울 풍수사 김상덕, 기독교 장로인 장의사 고영근에 보국사 주지까지 등장하여 악령의 무덤을 이장하고 쇠말뚝의 다이묘 오니를 상대하는
모습이 한국인 관객들이 한때 ‘묘벤져스’라 부른 것처럼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종교를 총망라한 어벤져스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거기 이슬람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종교적으로
부담도 없었을 것이고.
이야기가 살짝 옆으로 갔지만 혹시 인도네시아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 속 우스탓들이 등장하는지 아닌지, 등장한다면 어떤 캐릭터로 나오는지를 보며 스토리라인의 전개와 감독의 취향을 미리 점쳐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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