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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리닐: 내 몸을 돌려줘(Trinil: Kembalikan Tubuhku)>

작성일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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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리닐: 내 몸을 돌려줘(Trinil: Kembalikan Tubuhku)>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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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리닐> 포스터 


영화의 원제는 <뜨리닐: 내 몸을 돌려줘(Trinil: Kembalikan Tubuhku)>. 하지만 사실은 이것도 원제는 아니고 실제 원제는 <Trinil: Balekno Gembungku)>. 같은 뜻의 자바어 방언이다.

하눙 브라만티요(Hanung Bramantyo) 감독은 1985년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스마랑 지방 방송국의 라디오 연속극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 연속극 때문에 방송이 나올 저녁 무렵엔 거리에 지나는 차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인기가 센세이셔널한 정도였다고한다. 자기 몸을 돌려달라며 달려드는 주인공 귀신은 복 수민뜬(Mbok Suminten)인데 자바의 유명한 전통 괴담 주인공인 막 람삐르(Mak Lampir), 니니 뻴렛(Nini Pelet)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상까지 올랐다. (Mbok), (Mak), 니니(Nini)는 모두 중년 이상의 여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경칭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라디오 연극 속에서 복 수민뜬과 그녀의 딸 뜨리닐(Trinil)은 바구스 수지워(Bagus Sujiwo)라는 남자를 사랑하며 삼각관계를 형성했고 급기야 질투에 눈이 먼 뜨리닐이 자기 엄마 복 수민뜬의 목을 절단하는 방식으로 살해한 후 바구스와 결혼한다. 그로부터 복 수민뜬은 귀신이 되어 간드러진 웃음을 웃으며 자기 몸을 돌려달라며 딸과 사위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다. 이슬람 인구가 90%를 넘나드는 자바에서 수하르토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 어떻게 이런 스토리가 가능했을까 싶다.

리고 영화 <뜨리닐>은 이 구도를 인물 배치만 조금 바꿔 채용했다. 하지만 제목까지 같이 가져오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 라라를 뜨리닐이라고 부르기 위해 별도의 설정이 필요했다.

시놉시스
<
뜨리닐>의 시대배경은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남주의 두툼한 구렛나루, 여주의 말아올린 단발머리, 판탈롱 바지 등 등장인물들의 패션에 미루어 1980년대, 즉 예의 라디오 연속극이 나오던 시절이라 유추할 수 있다. 장소적 배경은 중부자바의 차 농장, 티 플랜테이션이다.

차 농장을 가진 네덜란드인 부호 윌리엄 사운더(William Saunder – 빌렘 비버스 분)가 악마와 계약한 여인 라히유(울란 구릿노 분)와 결혼하여 라라(Rara)를 낳는다. 라하유가 위의 라디오 연속극의 복 수민뜬 포지션이고 라라는 뜨리닐이다. 극중에서도 라라는 아버지에게 뜨리닐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바구스 수지워의 포지션은 병으로 쓰러진 윌리엄을 간병하는 남성 간호사 수딴(랑가 나트라 분)이 맡았다.


96a7de9bfd6f5c1c17bddae5d403bdd1_1725213943_5433.jpg▲수딴 역의 랑가 나트라, 라하유 역의 울란 구릿노, 라라 역의 카멜라 판데르 크룩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꿨던 라하유가 악마와 계약한 주술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페로몬을 흩뿌리며 뭇남성들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설정에서 뻴렛주술을 시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저택에서 파견나와 일하는 간호사 수딴을 유혹해 남편의 죽음을 사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라하유는 친딸인 라라(뜨리닐)를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 그것은 자신에게만 향해야 할 남편의 관심을 라라가 가져가게 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라하유는 그토록 이기적이고 비정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남편 다음엔 라라의 차례라며 미소짓던 순간 난입한 라라가 단칼에 친엄마의 목을 베어 버린다. 말다툼으로 자잘못을 따지거나 몸싸움도 할 만한데 하눙 감독은 전광석화처럼 라하유의 목을 따버리는 연출을 보였다. 스토리를 질질 끌지 않겠다는 것이다. 라라가 수딴의 입을 다물게 한 방법은 라하유의 시신을 유기하는 알에 공범으로 만들고 그 댓가로 그와 결혼해 아버지의 유산을 함께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떠난 후 차 농장의 일꾼들이 하나 둘 의문의 죽음을 맞는데 돌아온 두 사람 앞에도 허공을 떠다니는 머리통 귀신이 된 라하유가 급기야 모습을
드러내 자기 몸을 돌려달라며 따라붙는다. 이에 두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한다는 심리치료사 유숩에게 퇴마를 부탁한다. 유숩은 퇴마를 위해 귀신의 한이 무엇인지 조사하면서 점차 진실에 다가가지만 귀신도 몰아내고 싶고 라하유의 죽음도 숨겨야 하는 라라와 수딴으로선 유숩이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성골 출신 미장센 감독
이 영화는 하눙 브라만티요가 감독, 제작, 시나리오까지 맡았다.

1975
년생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은 2000년부터 25년간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영화인들의 산실인 자카르타예술대학(IKJ)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05 <브라우니스(Brownies)> 2007 <겟 메리드(Get Married)>로 인도네시아 여화제(FFI)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일찌감치 차세대 감독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정규 코스를 통해 제대로 배운 감독답게 <까르티니(Kartini)>(2017), <인간의 대지(Bumi Manusia)>(2019) 등 역사영화들이 미장센으로 호평을 받았고 거의 매년 각종 영화제에 감독상 후보로 이름을 올려 적잖은 수상을 했지만 인도네시아 영화제와의 인연은 위의 두 작품뿐이었다.

96a7de9bfd6f5c1c17bddae5d403bdd1_1725213966_9256.png▲하눙 브라만티요 감독(왼쪽)과 조코 안와르 감독 


하지만 이외에도 전기영화 <수카르노>(2014), 루디 하비비 전기영화 3연작, <그립지 않은 천국(Surga yang Tak Dirindukan)> 시리즈(2016, 2018) 등이 흥행했고 2022년엔 한국 영화 <7번방의 선물> 리메이크작이 586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자신의 영화 커리어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하눙 감독은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성골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본의 아니게 조코 안와르 감독과 라이벌 비슷한 구도가 짜인 후 계속 밀리는 중이어서 어쩌면 많이 자존심이 상해 있을 것 같다.

2019
년 조코 안와르는 부미랑잇 유니버스의 수퍼히어로 영화 <군달라(Gundala)>를 히트시키며 해당 시리즈가 세 편까지 나온 반면 하눙 감독은 그 라이벌인 사트리아 데와 유니버스를 맡아 총 일곱 편의 영화로 계획된 시리즈의 첫 영화 <가똣까차(Gatotkaca)>(2021)를 말아먹어 버렸다. 실력 차이가 증명된 것이다.

조코 안와르 감독은 하눙 감독보다 한 살 적은 1976년생으로 영화랑 전혀 관계없는 반둥공대를 나왔고 데뷔도 하눙 감독보다 3년이 늦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처음엔 듣보잡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숨은 재능이 뒤늦게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2016 <내 마음의 복제(A Copy of My Mind)> CJ의 눈에 띄며 한 방에 떠버렸고 이후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연작(2017, 2022),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2019)을 연속 히트시키며 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그는 HBO Asia의 호러 엔솔로지 시리즈 ‘Folklore’에서 자바 귀신 웨웨곰벨을 모티브로 한 ‘A Mother’s Love’로 세계에 진출하더니 2024년에는 웹시리즈 ‘Joko Anwar’s Nightmares and Daydreams’가 국제적인 각광을 받았다. 하눙 감독 앞으로 멀찍이 짓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눙 감독이 뜬금없이 공포영화 <뜨리닐>을 만든 것은 자신도 얼마든지 공포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려 한 한 것이라 보인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뜨리닐> 이전에는 공포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는데 이는 성골 출신인 그가 드라마 장르에 비해 호러 장르를 한참 밑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조코 안와르가 호러장르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조코가 할 수 있는 걸 하눙이 할 수 없을 리 없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뜨리닐>에서도 그 다운 미장센들과 부드러운 장면 전환, 그리 어색하지 않은 CG가 돋보였다. 엔딩 크렛딧도 인상적이었다. 한번 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잘 하는 감독임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걸은 영화인데 아무리 호러영화를 삼류라 생각했다 해도 좀 더 잘 나와야 했다.

억지와 두려움
필자도 인도네시아에서 나름 한 귀신 하는 사람이지만 하눙 감독 역시 비록 귀신영화가 처음이라 해도 자기 나라 귀신들은 잘 알고 있다는 게 영화에서도 드러났다. 머리통만 날아다니는 라하유의 원혼을 본 유숩이꾸양(Kuyang)’이란 이름을 꺼내고 꾸양은 귀신이 아니라 그 본체가 특정 흑마술사라는 것과 말레이시아에도 뻐낭갈(Penanggal)이라는 같은 스펙의 귀신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왠지 '내가 이만큼 잘 아는 사람이야'라는 과시처럼 들린 건 내 편견 때문일까그러면서 라하유처럼 목이 잘려 죽은 이가 자기 몸을 찾을 경우에도 꾸양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건 억지다. 미안하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더욱이 꾸양이 자바를 배경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꾸양은 깔리만탄 오지에서 목 아래로 내장을 주렁주렁 매단 채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인데 자바에서는 아직까지 관측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억지를 쓰면서 스토리를 시작한 하눙 감독은 호러 장르 영화를 너무 만만히 본 게 아닌가 싶다.

96a7de9bfd6f5c1c17bddae5d403bdd1_1725213997_2502.jpg▲영화 속 장면은 괜찮았는데 사진으로 나온 결과물은 왜 이 모양? 


또 하나의 단점은 악령을 퇴치하는 방식이다.

인도네시아에도 얼마든지 퇴마 전문 두꾼들이 있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수딴이 말레이시아에서 학교를 다닐 때 만난 현지 친구 유숩(파타 아민 분)을 퇴마능력이 있는 심리치료사로 등장시킨다. 귀신을 보고 주문을 외우고 중국 퇴마도사들이 쓰는 장비를 사용하지만 두꾼은 아니라는 설정이다. 뭔가 피하려는 거다.

결정적으로는 라하유의 머리통 귀신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퇴치하는 것은 신심이 깊은 운전사 조코이거나 이슬람 교사 우스탓이다. 그러려고 두꾼 비슷한 유숩을 결정적인 순간에 미리 치워놓는다. 이는 너무나 진부한 방식이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신성모독 논란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전개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세대 선두주자라는 감독이 이렇게 안전빵만 추구하다니......

신의 이름을 담은 기도는 신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귀신을 쫓을 권능을 주고 신실한 우스탓을 이겨낼 귀신은 없다는 것이 전제로 깔린다. 그래서 영화 스토리 상에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일지 몰라도 관객에겐 초면인 한 우스탓이 갑자기 나타나 운전사 조코 등과 함께 나타나 완전체 괴물이 된 라하유 귀신을 터트려 없애는 장면에서 한숨이 나왔다.

다른 감독들이 만든 다른 공포영화에서는 우스탓이 죽기도 하고 고전도 하면서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감독이 나름대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기라도 하는데 <뜨리닐>에서는 정말 1980년대 마인드로 너무 대놓고 이슬람 만능의 신앙을 투영해 버렸다. 재미 대신 안전을 택한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신성모독 비난이 두려우면 귀신영화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그렇다고 스토리의 전개가 아주 무리한 것은 아니다. 꾸양이 자바 땅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우스탓들이 교황청 구마사제 정도의 능력치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말이 되므로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다..

단지 막 신참 귀신이 된 라하유가 어떻게 차 농장 일꾼들을 차례로 죽일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는지, 라하유의 어머니이자 라라의 할머니라는 인물은 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건지, 몸을 되찾은 라햐유가 왜 오히려 괴물이 되어버린 건지 등은 여전히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어차피 과학영화도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걸로 치자.

등장인물들
라하유로 등장하는 울란 구릿노(Wulan Guritno) 배우는 이 영화의 연기자들 중 가장 필모가 화려한 배우다. 1981년생으로 40대 초반. 당연히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주 카멜라 판데르 크룩(Carmela van der Kruk)은 그의 아버지 역의 빌렘 비버스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혼혈이다. 그래서 이 영화 내내 자바어와 함께 네덜란드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연기 경력 8년의 카멜라는 하눙 감독과 함께 이번이 첫 호러영화 출연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출연진들의 이국적 미모로 젊은 배우들의 빈약한 연기력을 상쇄하려 했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퇴마사이자 심리치료사 유숩을 연기한 파타 아민은 정말 말레이시아인이다. 그래서 영화 속 그의 인도네시아어 대사는 억양이 매우 독특하다. 1990년생으로 배우이자 가수, 모델이기도 하다. <뜨리닐>은 그가 출연한 유일한 인도네시아 영화다. 그래서 하눙 감독이 왜 그를 캐스팅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바 호러 영화에 왜 깔리만탄 귀신 꾸양과 말레이시아 배우를 끌어들인 것일까?
그냥 자기 지식과 인맥을 과시한 것일까?

96a7de9bfd6f5c1c17bddae5d403bdd1_1725214018_9274.jpg▲유숩 역의 파타 아민(오른쪽 앞) 


가장 흥미로운 캐스팅은 라하유의 엄마, 라라의 할머니인 냐이 론도알라스를 연기한 엘리 D. 루탄이다. 1952년생이란 나이답지 않게 이 영화에서는 훨씬 젊어보이는 할머니 역을 맡았지만 그녀는 많은 공포영화에서 인상적인 조연을 맡아 왔고 그 배역도 심상치 않았다. 자애로운 할머니 인상인데도 <사탄의 숭배자>(2017), <끄라맛 2(Keramat 2)>, <시진>(2023), <죽어서도 살아서도(Sehidup Semati)> 등에서 주로 마녀나 두꾼으로 출연한 그녀는 올해 개봉해 앞서 리뷰한 <꾸양(Kuyang)>에서 꾸양으로 변하는 땀비 냐이 역을 맡았다. 일년에 두 번씩이나 꾸양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96a7de9bfd6f5c1c17bddae5d403bdd1_1725214041_2618.png▲엘리 D 루탄(왼쪽)과 영화 <꾸양> 포스터 


나가면서
OST 트랙으로 쓰인 주제가 ‘Kasih Merinthi’는 고통으로 인한 신음소리를 의미하지만 영화와 별개로 따로 들어보면 꽤 운치 있는 노래라고 생각된다.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아이나 압둘(Aina Abdul)의 노래는 아름답고 아련하기까지 하다.

OST
처럼 하눙 감독도 힘을 좀 빼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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