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이슬람 기숙학교 쁘산트렌 이야기 <문카르(Munk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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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이슬람 기숙학교 쁘산트렌 이야기 <문카르(Munkar)>
배동선
‘문카르(munkar)’는 이슬람의 율법을
위반하는 악행, 범죄행위를 뜻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자의 무덤 속으로 찾아와 망자의 신앙을 시험하는 문카르(Munkar)와
나키르(Nakir), 두 명의 말라이깟(천사) 중 하나다. 예전 <무덤
속의 고통(Siksa Kubur)> 리뷰에서 잠시 다루었던 것처럼 사람이 죽어 무덤 속에 묻히면
천사가 찾아와 ‘너의 신은 누구냐?’, ‘너의 선지자는 누구냐?’ 물으며 그 대답에 따라 영혼을 이끌어간다. 그중 불신자에게는 지옥에
이르기 전 무덤에서부터 극악의 고문을 시작하는 게 천사 문카르의 임무다.
이 영화의 제목 <문카르>는 아무래도
전자의 의미, ‘이슬람의 율법에 반하는 악행’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77만 명의 관객이 들어 2024년 8월 31일
기준 흥행순위 15위, 하지만 새로운 영화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 곧 순위 밖으로 밀려날 것같다.
▲ 2024. 8. 31 기준 로컬영화 흥행순위. 녹색으로 표시된 것들은 이미 리뷰를 마친
작품들
시놉시스
영화 <막뭄(Makmum)>, <꼬린(Qorin)> 등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슬람 쁘산트렌 여학생 기숙학교가 또 다시 <문카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헤를리나(라뚜 소피아 분)는
라눔(아디스티 자라 분)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친구였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매일 왕따를 당하며 학교폭력을 당하는 그녀에게 쁘산트렌은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면회 온 어머니에게 쁘산트렌에서 나가게 해달라 요구하지만 완고한 어버지가 이를 반대한다.
안도네시아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이슬람 중심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는 등하교가 기본인 마르라시(Madrasih)와
기숙사 입소가 기본인 쁘산트렌이 있다. 이중 쁘산트렌은 미국에서 반항적인 아이들을 보내는 군사학교처럼
아이들을 종교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시설이란 느낌이 강한 곳이다. 물론 깊은 신앙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쁘산트렌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면 <꼬린>의 아그니니 하끄처럼 문제아들이 일반 학생들과 섞이게 되고 폐쇄적인 곳에서 여학생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알력과 충돌이 발생하거나 우스탓 교사로 인한 성폭행 사건이 벌어져도 그 사건의 소문은 물론, 피해자
역시 쁘산트렌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예의 <무덤
속의 고통>에서는 주인공 남매가 귀신들이 출몰하는 긴 터널을 통해 동성애 성폭력이 난무하는 쁘산트렌을
탈출한다. 헤를리나가 바로 그런 처지에 처했다.
친구들의 과도한 폭력에 쫓겨 쁘산트렌 울타리를 벗어난 헤를리나는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런
후 몇 주 만에 돌아온 헤를리나는 완전히 음산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고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에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히죽 웃는다. 헤를리나는 여전히 라눔을 살갑게 대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한 명씩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으면서 라눔은 헤를리나가
예전의 그녀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사실은 그날 사고로 절명한 딸을, 복수심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두꾼을 통해 강력한 악령과
계약을 맺고 딸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일으켜 세워 학교로 되돌려 보내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응분의 복수를 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래서 쁘산트렌에 돌아와 모든 수업에 참여하고 있던 헤를리나는 사실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다.
복수의 방법, 퇴마의
방법
자바인들은 독특한 복수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죽은 자가 자신을 죽인 자(들)에게 스스로 복수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뽀쫑의 복수인데 이에 관해서는 예전에 썼던 것을 인용한다.
실제로 살해당한 자녀를 매장하려 할 때 복수심에
가득 찬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를 살해범에게 복수심에 이를 갈며 일체의 이슬람식 장례절차나 알꾸란의 암송을 금지시키고 딸리뽀쫑을 풀지 않은 채 시신을
무덤에 내립니다. 그러면서 뽀쫑의 귀에 속삭입니다.
“네 원수를 찾아내 꼭 핏값을 받아
내거라!”
그러면 그 시신은 그날 밤부터 당장 뽀쫑귀신이 되어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에게 복수를 완료할 때까지 밤마다 이승을 떠돌게 됩니다. 그 피의 신원과정이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망자를 매장한 후 어느 날 밤 누군가 귀가길에, 또는 취침 중에
급사한다면 그 자가 바로 살인범이고 망자의 뽀쫑이 마침내 복수를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복수를 마친 망자의 영혼은 이미 저승에 받아들여질 수 없어 영원히 구천을 헤매게 된다고 믿습니다.
(출처: 죽음의 궁극적 시각화 – 뽀쫑 https://dons-indonesia.tistory.com/1544)
헤를리나의 아버지도 그런 비슷한 방법을 쓴 것이다. 하지만 실제 무슬림이라면 이는 매우 무책임한 방법이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미 죽은 자식에게 ‘네가 알아서 복수해’라고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련 믿음대로라면 헤를리나의 영혼은 복수를 마친 후 다시는 내세로 들아갈
수 없다.
마치 매력을 얻기 위해 몸 속에 주술을 담은 수숙(Susuk)을 심거나 심지어 틀니, 임플란트, 가발 같은 것을 한 채 무덤 속에 들어가면 신이 그 영혼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무슬림들의 믿음에 따르면 이미 복수극을 벌이며 타락해 버린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딸의 영혼이 그렇게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사주한 아버지의 마음을 잠시 헤아려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영혼이 귀신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빙의해 현실세계에서 복수를 자행한다는 컨셉은 이슬람은 물론 기독교 사상과
대체로 충돌하는 것이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것은 세상이 종말을 맞을 때에나 벌어지는 사건이므로 그
전엔 한번 떠난 영혼이 돌아오는 일은 없다. 따라서 죽은 딸의 몸을 입고 나타나 그 기억과 성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말하는 악마가 딸의 몸에 들어가 철저히 딸을 흉내 내며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 정통 종교적 해석이다.
그런 해석은 <공포의 묘지>(2019)로
번역된 스티븐 킹 원작 헐리우드 영화 <펫 세메터리(Pet
Sematary)>에도 잘 나타난다. 그 묘지에 묻은 시체가 반드시 살아 돌아오는데
생전과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원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컨셉이 이교도의 부활, 또는
악마적 부활을 테마로 한 <문카르>와도 일맥상통한다.
쁘산트렌을 배경으로 한 악마의 출몰인 만큼 당연히 퇴마사는 이슬람 교사 우스탓이다. 많은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에서 그러하듯 영화 속에서 학생들에게 알꾸란을 가르치는 우스탓들이 악마가 나타나면 교황청 구마사제처럼 엄청난 영력을 발휘하며
마치 매일 하는 일인 것처럼 퇴마작업을 당연스럽게 수행한다. 이렇게까지 인도네시아 공포영화들이 판에
박힌 듯 돌아가서야.
감독과 배우들
앙기 움바라 감독은 전에 인도네시아 연구혁신청(BRIN)에서 있었던 ‘호러 작품의 영화화’ 테마의 세미나에서 함께 발표자로 나선 적이
있어 조금 팔이 안으로 굽는다. 안면이 있는 감독이어서 없던 호감마저 막 생기는 건 나만 그러는 걸까?
무슬림식 퇴마 결말에 대해서는 그의 전작 호러영화 <칸잡(Khanzab)>(2023), <지옥의 고문(Siksa
Neraka)>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슬람적 요소가 필연적으로 들어가 있다. <수잔나
무덤 속에서 숨쉰다(Suzzanna Bernapas dalam Kubur)>(2019), <사뚜
수로(Satu Suro)>(2019) 같은 예전 작품들은 이슬람 요소를 최소화한 ‘자바 호러’를 추구한 것 같은데 최근 들어 부쩍 이슬람 부분을 부각하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Vina: Sebelum 7 Hari)>에서는 뜬금없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조사까지 받은 앙기 감독이니 이 영화의 우스탓 퇴마사 부분을 가지고 너무
까진 않기로 하자.
여러 출연진들 중 라눔 역의 아디스티 자라(Adhisty Zara)가 여주 포지션인데 일본
걸그룹 AKB 48의 프랜차이즈인 JKT 48 출신의 예쁜
가수 겸 배우다. 연기로도 두각을 보여 <쯔마라 가족(Keluarga Cemara)> 연작(2018, 2022), <두
개의 파란 선(Dua Garis Biru)>(2019), <딜란(Dilan)> 3연작(2019~2020) 등 유명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주가를 크게 올린 2003년생 젊은 여배우인데 이번 영화 <문카르>에서는 여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헤를리나 역의 라뚜 소피아(Ratu Sofya)의 연기에 완전히 눌린 점도 있지만 모두들 히잡을 쓰고 있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다.
▲아디스티 자라(왼쪽)과 라뚜 소피아. 히잡을 벗으면 이런 분위기
2004년생 라뚜 소피아는 2017년에 데뷔해 열 편 채 못 되는 극장 영화에 출연했다. 그런데 마치 앙기 움바라 감독의 새 뮤즈인 듯 <참아, 이건 시험이야(Sabar, Ini Ujian)>(2020), <지옥의
고문(Siksa Neraka)>(2023), <문카르>(2024),
<끄로몰레오(Keromoleo)>(2024) 등 앙기 감독의 최근작에 연속 출연했다. 여주가 아디스티인데도 라뚜 소피아가 스크린에서 더욱 부각된 것은 그녀에 대한 애정을 앙기 감독이 주체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외에도 사스키아 채드윅, 카디자 아루마, 카네이샤
유숩 같이 이제 막 한 두 편의 영화에 얼굴을 비친 신인 여배우들이 헤를리나를 괴롭히는 쁘산트렌 일진들로 출연했다.
호러영화 쏠림 현상
학폭 피해자가 죽어 그 가해자들을 찾아가 복수한다는 줄거리를 근간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학교폭력이 이미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는지를 시사한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학폭문제는 한국 못지않게 잔혹하고 악랄하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이 사고를 친 후 이를 숩습하거나
불거지는 과정에서 그들이 대개 기득권을 등에 업은 이들의 자녀들이란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쁘산트렌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들에서는 주로 우스탓 등 교사들이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내용이 대세였는데 이제 그 초점이
쁘산트레의 교내폭력으로 바뀐 것은 그러한 작금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앙기 움바라 감독은 영화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을 통해 2016년 찌레본에서 피나와 그의
연인 에키가 살해될 당시 느슨하기 그지없었던 경찰수사의 난맥상을 지적했는데 그보다 몇 개월 앞서 나온 <문카르>에서는 쁘산트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카르, 즉 악행들을 조명하며
영화를 통한 사회참여적 제스쳐를 보였다. 물론 그가 모든 영화에서 그리 한 것은 아니다.
그간 코미디와 드라마, 호러 등 전 장르를 넘나들며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왔던 앙기 감독은 2024년엔 <문카르>, <피나~>에 이어 <끄로몰레오>를 극장에 올렸고 현재 <악몽의 초상(Potret Mimpi Buruk)>, <안쫄다리의
처녀유령 2(Si Manis Jembatan Ancol 2)>, <군딕(Gundik)> 같은 공포영화들을 찍고 있어 최근 부쩍 호러 장르에 역량의 상당부분을 쏟아 넣고 있는 모양새다.
내로라 하는 감독들, 특히 드라마와 코미디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감독들이 모조리 호러
장르로 쏠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호러 장르에 관객들이 가장 쉽게 들고 있다는 국민적 영화 취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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