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의 13 (The Shadow Strays)>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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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의 13 (The Shadow Strays)> 후기
배동선
<The Shadow
Strays>를 <섀도우의 13>으로 번역한 것은 주인공이 섀도우라는 암살조직의 13번으로
불리기 때문이겠지만 좀 더 원작 제목에 따라 <방황하는 그림자>
정도로 번역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섀도우의 멤버 13번 노미(Nomi)와 자카르타 범죄집단들과의 전투에 이어 섀도우 정예들과의 격투를 보여주는데 한편으로는 정체성에 고민하는 13의 모습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 아무래도 <방황하는
그림자> 쪽이다.
하지만 개연성이나 배경, 등장인물의 입체성 같은 것들은 중시하지 않고 오직 뇌를 빼놓고
봐도 될 액션 시퀀스로 일관된 영화라는 점에서 굳이 문학적 제목보다 <섀도우의 13> 같은 제목도 충분히 어울릴 듯하다.
이 영화는 한때 끼모 스땀불(Kimo Stamboel)> 감독과 함께 모 브라더스(Mo Bothers)라고 불리던 띠모 짜햔토(Timo Tjahjanto) 감독이
각 잡고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드코어 액션영화다. 넷플릭스에서는
2024년 10월 17일 프리미어 스트리밍되었고
웬일인지 한글자막도 달려 있다.
끼모 스땀불 감독은 <이바나(Ivanna)>(2022),
2023년 최고 흥행작 <세우디노(Sewu
Dino)>, 천만 관객영화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2022) 후속작인 <무용수마을의
바다라우히(Badarawuhi di Desa Penari)>*2024)를 연거푸 내세우며 몸값을
크게 올린 반면 띠모 짜햔토 감독은 <킬러스(Killers)>(2014),
<헤드샷(Headshot)>(2016) 등의 액션영화를 만들어 호평을 받은 덕에
인도네시아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밤이 온다(The
Night Comes for Us)>(2018)을 만들었고 이후에도 <빅 4(The Big 4)> 등 액션 코미디를 만들었지만 타율이 높다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액션 장르에 특화된 감독인 것만은 틀림없어 조만간 할리우드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 브라더스 시절의 띠모 짜햔토 감독(오른쪽)
시놉시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킬빌>로 시작해 <아저씨>로 전개되다가
<스타워즈>로 끝난다.
즉, 처음엔 13과 움브라 교관이 일본 야쿠자
조직 하나를 완전히 쓸어버리는 모습은 <킬빌>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런 후 자카르타에 돌아와 다음 임무를 기다리던 중 알게 된 이웃의 몬지(Monji)라는
소년을 알게 되어 그 어머니를 죽인 하가(Haga)와 소리아(Soriah)의
범죄조직, 그리고 그 배후의 주지사 후보 정치인 부자와 싸우는 시퀀스는 <아저씨>의 원빈을 인도네시아 여전사로 치환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 섀도우 정예들과의 전투에선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Star Wars: The Empire Strikes Back)>(1980)의 가장 유명한
장면, 즉 루크 스카이워터의 손을 날려버린 다스 베이더가 ‘내가
네 아빠야’라고 말하는 명장면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서로
금방이라도 목숨을 빼앗을 듯 살수를 펼친 끝에 갑자기 부성애 또는 모성애가 폭발하는 클리셰는 잘 붙들고 있던 인내심을 마침내 폭발시켰다.
아무튼 <섀도우의 13> 이렇게 성공한
영화들의 오마주를 연상시키는 클리셰들을 연결했고 주연 여전사로 나선 13 역의 오로라 리베로 연기와
전체적인 액션이 꽤 볼만 했음에도 그리 크게 팬들에게 어필한 것 같진 않다. 매체들 리뷰에서 이 영화
이야기를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수 작전, 암살 등에 특화된 섀도우라는 조직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작전을 벌이는데 수뇌부가
따로 있고 작전을 감독하는 핸들러-교관들의 선생 마스터-요원들을
가르치고 현장에서도 뛰는 교관-번호로 불리는 요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단지 내부적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요원들의 반발 움직임을 조직이 말살하려 드는 등 내부적 갈등도 치열한 곳이다.
이 영화는 아마도 속편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어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은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조직되어 있는지, 어떻게 요원으로 편입되는지, 어떤 훈련을 받는지 등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전화로 지령을 받는 방식, 긴급 코드 같은 것들도
좀 뜬금없어 사실 전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속편까지 다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등장인물들 감정선이 그리 공감가는 편이 아니고 특히 빌런들이 인질을 빌미로 여주를 협박해 빌런들끼리의 전쟁에 소모품으로 내세운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단점을 커버할 만큼 액션이 뛰어나고, 아마도 다른 시장들을 노린 듯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영어, 인니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도
나름 인상적이다. 일단 등장인물들 영어실력이 장난 아니다.
배우들
주인공 13 역의 오로라 리베로(Aurora
Ribero)는 2004년생 젊은 배우로 이태리-자바
혼혈이다. 하지만 전체적 마스크에서 유럽 분위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2017년 영화에 데뷔해 몇몇 단편영화에도 출연했고 이후 <와르꼽 DKI의 부활> 3, 4편,
<알리와 퀸즈의 여왕들(ali & Ratu Ratu Queens)>에도
얼굴을 비쳤는데 결정적으로 2022년 기나 G 누르 감독의
문제작 <라이크 & 쉐어(Like & Share)>에서 아르윈다 키라나와 공동주연을 하면서 명실공히 주연배우 레벨에 올라섰다.
▲<라이크 & 쉐어> 포스터
그간 대체로 멜로 드라마나 코미디에 출연했지만 본격적인 하드코어 액션도 이번 <섀도우의 13>이 처음이 아니다. 전투력은 대체로 합격점. 강인한 여전사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아쉬운 것은 전쟁의 천사 같은
잔혹한 아름다움을 기대했던 것에 비해 그 액션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 뭐, 피칠갑 영화이니 어쩔 수 없나?
그 외에 교관 움브라 역으로 엄청난 액션을 보여준 한나 말라산, <죽음의 문턱에서(Di Ambang Kematian)> 같은 호러영화 주연으로 자주 등장하다가 이번 영화에서는 완전 생또라이
여자 빌런을 연기한 따스끼야 나미야(Taskya Namya), 잘 생긴 얼굴로 로맨스 영화 남주를 꿰차다가
여기선 악독한 부패경찰을 연기한 아디빠티 돌큰(Adipati Dolken), 빌런 주지사 후보 역에는
관록이 빛나는 중견배우 아르스웬디 브닝스와라, 인도네시아 액션영화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고 <존윅 3>로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야얀 루히얀 등도 출연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은 영화였다.
▲왼쪽부터 아디빠티 돌큰, 띠모 짜햔토 감독, 한나 말라산, 오로라 리베로, 알리
피크리,
딴따 긴띵, 끄리스토 이마누엘
무엇보다 스토리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 것이 좋았다.
물론 현실에서는 자카르타에서 주-부지사 후보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오는 경우는 없고, 미국 뉴욕의 어느 거리처럼 사람들이 줄 서 들어가는
클럽도 없고, 도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나 인도네시아인 닌자들의 활동도 없지만 영화란 어느 정도의 개연성과
충분한 재미만 있으면 영화제 상까지 줄 순 없어도 대체로 용납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 짜여진 격투 시퀀스였다. 하지만 그 텐션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중간에 살짝 느슨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용서가 된 영화
<섀도우의 13>.
넷플릭스에서 찾아보길 권한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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