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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신영덕-이전순 교수 부부를 환송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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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34회 작성일 202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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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덕-이전순 교수 부부를 환송하며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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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9일 아그네야 레스토랑에서 

왼쪽부터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사장, 조연숙 편집장, 이전순 교수, 신영덕 교수

훈련기 한 번 타보니 이게 영 내 적성이 아니란 걸 알게 됐죠.”

그날 인터뷰를 빙자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신영덕 교수가 한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오래 전 트위터에서 봤던, 주식투자로 몇 천만 원 날렸다고 친구에게 말하면 내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해 준 그 친구가 그날 밤 집에 돌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푸근하고 만족스러운 잠을 자게 된다는 누군가의 글처럼 존경하던 교수님의 젊은 날 실패담이 내게 위로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는 1976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아마도 그의 꿈은 탑건의 톰 크루즈처럼 걸출한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처음 훈련기를 타본 순간 자신이 조종사 자질이 아니라는 걸 절절이 깨달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평생 위대한 산악인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몸을 만들고 장비를 준비한 사람이 해발 4천 미터쯤에서 생기는 고산병을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극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처럼 허망한 순간, 인생 항로 자체를 완전히 수정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시 그에겐 그것이 재앙 같은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한 나한테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교수요원이 되어 오늘날 인도네시아 한국어교육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 더욱 큰 위로가 되었다.

저 사람은 땅에서도 길치에요. 전투기 몰았으면 큰일날 뻔했지.”

사모님 이전순 교수가 한 마디 덧붙인 말에 난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영구 귀국을 앞두고 멀리 반둥에서 시간을 내 자카르타에 오신 신교수 부부를 남부 자카르타 위자야 거리의 아그네야 레스토랑(Agneya Restaurant)에 모셨고 나 혼자 두 분을 맞기엔 중량 차이가 너무 나서 데일리인도네시아 신성철 사장과 조연숙 편집장을 함께 초청해 이른바 합동 인터뷰를 겸한 자리였다. 거기서 체신머리 없이 나 혼자 빵 터질 수 없는 일이다.

신교수 부부가 인도네시아에서 또 한 시대의 막을 내리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 2023 8 19일이었다. 내가 그날 자리를 마련한 것은 그보다 열흘 전인 8 9일이었으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미 한 달도 더 지났다. 그 사이 조 편집장이 인터뷰 기사 다 썼냐고 몇 번이나 물어왔다. 사실 그날 식당 홀에 자리를 잡아 주변이 좀 시끄럽긴 했지만 인터뷰 내내 녹음도 착실히 했고 이후 글로 정리해 보겠다고 랩톱 덮개를 몇 번이나 열고 닫았다.

그때 아차 싶더라고요. 신문용 인터뷰 기사가 내 적성에 영 맞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죠,”

내 심정이 훈련기 탔던 신교수 소회와 비슷했다. 옛날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들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 적성에 맞지 않는 일들을 그럭저럭 해낸 것은 내가 그걸 잘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잘하는 척 흉내만 냈던 것 같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 대기업 다니던 시절 출장보고서 제출하면 우리 부서장이 보고서를 허공에 흩뿌리며이 새끼는 보고서를 쓰라면 맨날 소설을 써와요!’ 이려면서 길길이 날뛰게 만들었던 소설 전문. 인터뷰 기사가 잘 써질 리 없었다. 요즘은 영화 리뷰를 쓰다가 논문을 써버리는 부작용도 생겼다.

결국 데일리 조편집장이 인터뷰 기사를 썼다. 급한 사람이 지는 거다. 어쨌든 인터뷰 기사가 소설이나 논문이 되는 것보단 역시 쓰던 사람이 제대로 쓰는 게 맞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인터뷰] 퇴임하는 신영덕 UPI 한국어교육학과 교수 


그래서 굳이 여기서도 신교수 부부의 이력과 업적, 저서 같은 것들을 다시 반복해 늘어놓진 않겠다. 하지만 그분이 교수요원이 되어 오랜 교수생활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한 후 기회가 닿아 2009년에 인도네시아로 넘어와 인도네시아대학교(UI)에서 6, 반둥의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UPI)에서 8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는 굵직한 윤곽선은 다시 그어 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나시오날대학교(UNAS), 인도네시아대학교(UI), 가자마다대학교(UGM)에 이어 가장 늦게 한국어과를 개설한 UPI에서 학과 개설부터 참여한 신교수 부부는 지난 8년간 현지 한국어 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인도네시아에서 학위를 따거나 정기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연구한 학자들이 꽤 있지만 현지에서 십 수 년간 학생들과 직접 부대끼며 가르치고 학술활동을 하며 분명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신교수 부부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구귀국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교민사회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그런 인물을 데면데면하며 보내서는 안된다 싶었다. 기념비, 공덕비를 세우자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가 해온 일과 남긴 업적에 대한 평가가 교민사회에 오래도록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가 몸담았던 학교와 지역사회, 교회, 지인들 사이에 감사패와 꽃다발이 증정되고 여러 차례 환송회도 있었겠지만 현지 한인사회 차원의 환송이 이루어지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진 않았다.

내가 신교수 부부와 그간 그렇게 각별한 사이였던 것도 아니고 자유총연맹에서 매년 주최하던 한국어 말하기 대회 같은 교민행사에서 자주 눈인사를 하며 페이스북 친구로 근황을 아는 정도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용기를 내 인터뷰를 빌미로 자카르타에서의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신교수 부부의 귀국을 최소한 문화계 인사들이 글로 환송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동참해 준 데일리인도네시아 부부와 한인뉴스 이영미 작가가 고마웠다. 한인회 기관지 한인뉴스 9월호에도 신교수 이야기가 실렸다.

한인뉴스 2023 9월호나의 이야기 (신영덕)’


나는 그 자리에서 자카르타경제신문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을 대표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사는 쓰지 못했다ㅠ

사람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태도의 문제다.
신영덕 교수 부부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교민사회에 오래 몸담았던 이들이 달려갈 길을 마친 후 이런저런 이유로 이 나라를 떠나거나 이 세상을 떠날 때 교민사회 차원에서 진심을 다해 치하하고 감사하며 보내주고 오래 기억하는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단지 사람들 머리 속에서만이 아니라 글이 되고 책이 되어 서가와 인터넷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구귀국이라 하여 신교수 부부가 인도네시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거지가 바뀌었다는 뜻일 뿐이다. 이제 청주에 자리잡은 두 사람은 학교와 학회의 일로 매년 한 두 차례 인도네시아로 돌아온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한인사회를 뭉뚱그려 말하자면 대사관 등 정부기관단체에서 나온관리들과 사업하기 위해 또는 현지에 취업한 이른바 포괄적경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다. 미주나 유럽의 한인사회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학문-문화 부문의 인사들이 인도네시아 교민사회에서는 그야말로한줌도 안된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수적으로도 적고, 오래 머무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14년간 함께 했던 신영덕 교수 부부의 귀국은 현지 교민사회 교육-문화계의 큰 손실이다. 절대 대수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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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덕-이전순 교수 부부 


2020
년에 발행된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에도 이름을 남긴 이분들 이야기는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한국어과가 존속하는 한, 저서와 업적이 남아 있는 한 교민사회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잊지 않겠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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