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회귀와 먼치킨의 웹툰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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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와 먼치킨의 웹툰 세계관
배동선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판
몇 년 전에 나온 추공 작가의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이
웹툰으로 만들어지며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찍어 웹툰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해당 웹툰의 조회수가 해외에서
몇 억 뷰를 찍었다는 기사를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조회수와 댓글, 평점이 웹툰작가에겐 다 돈이라는 면에서 추공 작가는 돈방석에 앉았을 것
같다.
그러자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세계관을 차용하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제목에 '나 혼자' 또는 '레벨업'이란 부분을 넣어 스스로 아류작임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사실 이게 조회수에 눈이 멀어 웹툰 작가들이 나름의 긍지를 개나 줘버린 것인지, 아니면
네이버나 다음 웹툰 담당자에게 등 떠밀려 그런 제목을 썼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 후자일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해당 작가가 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해외에서도 인기 높았던 이 웹툰은 원작 웹소설이 Sole Leveling'이란
제목을 달고 인도네시아에서도 4편으로 출간되어 서점에 깔려 있다.
이런 류의 웹소설, 웹툰들은 회귀, 환생, 이세계 전생 등의 키워드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세상의 정점을 찍었으나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 회한을 안고 최후를 맞는 순간 시간을 되돌려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 간다거나 별 볼 일없는 삶을 살다가 과로나 사고로 죽음을 맞은 이가 지구가 아닌 어떤 다른 세계 또는 소설
속, 만화 속의 어떤 세계에 전혀 다른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거나 그곳 인물에게 빙의한다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최근 몇 년 간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면 다음과 네이버 웹툰의 거의
절반은 이런 류의 작품들이지 싶다.
이 정도로 유사한 세계관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좀비와 뱀파이어 세계관처럼 나름대로의 상식과 규칙이 정립된 일정한 세계관이 형성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젠 다들 별 부담 없이 이를 공유하는 것 같다.
1. 과거로 회귀하거나 환생한 주인공이 자신의 살았던 생애 전체,
즉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기억과 지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독보적으로 가진 주인공이 처음부터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2. 대부분 회귀 전 세계관 최강자로서 정점을 찍었던 주인공은 빠른 속도로 세계관 최강자 또는 그 이상의 존재로
성장한다. 즉 ‘주인공=먼치킨’이 디폴트인 장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먼치킨’은 닭집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니라 무적에 가까운 주인공을 뜻하는 용어다.
3. 이전에 겪었던 사고를 피하고 죽었어야 할 사람을 살리고 망했을 사업을 부활시킨다. 그 과정에서 악당들을 척결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변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부분을 부각한 작품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4. 주인공은 점점 더 자신만만해진다. 사실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으니 그 부분은 신과 다름없다. 자신만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회귀, 환생, 빙의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고 등장인물 개개인의 특징을 섭렵하고 있는 주인공이 해당 작품의 가장 강력한 등장인물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이기 쉬운데 세계관 최강자인 주인공과 감정이입하며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느끼는 안도감, 여유로움, 카타르시스가 사실상 독자들에게 주효하는 부분이고 개중에
웹툰 <상남자> 같은 수작도 나온다. 드라마화된 <재벌집 막내아들>도
이런 회귀물, 빙의물 중 하나다.
이런 장르 작품들이 넘쳐나다 보니 나름 차별성을 만들기 위해 관련 규칙과
클리셰들을 조금씩 비튼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것을 그것이 주효해 성공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그런 시도가 오히려 세계관을 무너뜨려 망하기도 한다.
이 장르는 대개 ‘세상의 게임화’, ‘현실 속에
나타난 포털과 던전’, ‘시련의 탑과 헌터’ 들의 이야기와
결합되곤 한다. 어떤 작품에는 탑만 나오고 또 어떤 작품엔 포털만 나오기도 하지만 요즘은 다 섞여 나오는
추세다. 그래서 그 클리셰들을 이어서 열거하자면 이렇다.
5. 어느 날 뜬금없이 이 세상에 시련의 탑 또는 포털이 나타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와 인류를 공격하고 일부 각성한
사람들이 헌터가 되어 탑을 오르거나 포털 속 던전들을 정복한다. 서두의 설명을 길게 할 필요
없으니 작가들로서는 탑과 포털이 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왜 헌터로 각성하는지 등 배경 스토리를 짤
필요도 없이 간단히 작품을 시작할 수 있다.
6. 헌터들 앞엔 스탯창(상태창)이
나타나 자신의 상태를 스탯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로서
예전엔 스스로의 실력을 판단하기 위해 도장깨기를 하거나 누군가 찾아가 대결을 벌여야 하는데 이 장르에서는 자기 스탯창을 허공에 불러내는 것만으로
자기 능력의 종류와 정도를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작가는 더 편해진다.
7. 심지어 상대방의 이름, 직업, 각종
스탯이 그 사람 머리 위에 떠오른다. 종래의 작품들에서는 주요 상대방의 실력을 떠보기 위해 싸움을
걸어보거나 다른 사람과 대련하는 모습을 훔쳐보거나 등등의 작업을 해야 하지만 이젠 그 사람 머리 위의 스탯창만 보면 모든 것을 파악한 것으로 간주해도
되니 작가들에겐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상태창 자체가 웹소설/웹툰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 방식은 다양한 장르에 적용되는데 어떤 작품들에서는 사람 머리 위에 그 사람의 남은 수명이 떠오르거나 탈세액이 어른거리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하다면 머리 위에 떠오르는 그 사람 능력치를 보거나 스탯창을 불러내
좀 더 상세한 능력확인을 통해 채용면접이 간소화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8. 예전엔 주로 주인공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킨 것에 비해 이 회귀 장르에서의 주인공은 치밀하고 표독스럽고 자비심 없고 가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욕망에 충실한 타입이다. 그러니
작가도 주인공을 그럴 듯한 인격자로 포장하기 위해 애써 스토리에 분칠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신이
최강이니 예의를 지킬 필요도, 남을 배려할 필요도, 패배한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이런 작품들 저변에 적잖이 깔려 있다.
9. 그 시련의 탑이라는 게 정말 탑이 아니라 각각의 층이 별개 차원의 공간처럼 그려진다.
10. 각 층, 각 포털마다 메인 보스가 있고 이 모든 것을 망라하는 최종보스, 또는 그 위의 설계자, 신 등이 존재하는 구도다. 사실 매번 더 강력한 적이 등장하는 <드래곤볼>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구도다.
웹소설 중에도 정통 장르들이 일부 있지만 회귀, 환생, 전생물들
특히 스탯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장르들의 특징은 대략 이 정도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도 벌써 식상해 열어보지 않게 되는 웹툰들이 열에 아홉이지만 이런 장르가 창궐하며 독자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요즘 독자들은 주인공의 성공과 안전을 빌며 가슴 졸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은
해당 세계관 최강자이어야 하고 모든 걸 다 알고 이해하는 전지전능하면서도 영민한 캐릭터, 거기에 후환을
남겨 스토리의 후반부가 꼬이지 않도록 나쁜 놈들을 확실하게 학살하는 잔혹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오래 생각하는 게 싫으니 모든 게 수치로 나타나야 한다. 내 힘과 지구력뿐 아니라
감정과 기술, 지식, 교양까지도 난해하고도 문학적인 표현
대신 딱 떨어지는 숫자로 표시된다. 소수점이나 방정식도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뇌를 빼놓고도 술술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절대 강자인 주인공.
그리고 모든 능력과 감정이 수치로 확인되는 세계관,
그런 웹툰 속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들이 늘 당하기만 하고 사람들의 능력과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롭기만
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정반대의 세상을 한없이 탐닉하는 것이겠지. 현실에서 갈망하는 것, 그러나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꿈 속에서, 또는 이런 작품 속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손에 넣으려는 우리들의 심리적 경향을 부인할 수 없다.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시계를 웹툰 속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되돌리는 것 역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허구의 세계 속에서나마 구현해
보려는 노력이다.
이들 웹툰에서 시간을 거슬러 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1990년대 초, 정말 모든 게 버겁기만 하던 시절, 재입대를 할까 고민하던 시절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웹툰 속 회귀, 환생, 전쟁은 사실 현세에서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현실이 그렇게 버거운 것이기에 온라인 웹툰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훌훌 털어버리고 서로 앞다퉈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이리라.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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