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가정폭력을 호러에 담아낸 <살아서도 죽어서도(Sehidup Sem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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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들어 극장에서 본 첫 영화는 <스히둡 스마띠(Sehidup Semati)>라는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다. 직역하자면 ‘평생동안 평사(死)동안’ 정도의 뜻이겠지만 의역하면 ‘한번의 삶 한번의 죽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여기선
<살아서도 죽어서도>로 번역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촌스러워 나중에 OTT에 가서 달릴 한국어 제목은 전혀 다른 것이 될 듯하다.
우삐 아피안토(Upi Avianto) 감독이 만들었고 스타비젼 플러스 작품이다. 우삐 감독의 최근작 중 이름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스리아시>, <내 멍청한 상사(my stupid boss)> 1,2편
등이 있다.
그런데 여성감독인 우삐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앞서 언급한 감독작품들
외에도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인 <스위트 20(Sweet 20)>(2017)를 비롯해 30편 가까운 작품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하지만 흥행한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살아서도 죽어서도>의
시나리오는 우삐 감독이 단독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감독한 작품이라면 작가의 의도가
더욱 분명히 드러날 법한데 이 영화는 역효과를 냈다.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 속 세계관을 꿰뚫고 있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거기서 허점이 생겼다.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만큼 관객들도 그걸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에 세계관의 설명이 충분치
않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스토리의 맥락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곳곳에 보인다. 충분히 설명되었다면
딱딱 들어맞았을 내용이지만 전지적 작가 겸 감독이 관객들의 이해력을 너무 신뢰해 몇 단계씩 논리를 뛰어 넘어 생기는 문제다.
라우라 바수키와 아리오 바유가 주연을 맡았는데 라우라는 <예전 지금 & 그때(나나)>에서
주인공 남편의 정부를 연기했고 아리오 바유는 넷플렉스에서 히트한 <시가렛 걸>의 남주 출신이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부터 두 A급 연기파 배우가 이른바 B급으로 분류되는 호러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일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아리오 바유는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많이 보여주었는데 <시가렛 걸>에서는 최고였지만 조코 안와르 감독의 <지옥의 연인(Perempuan Tanah Jahanam)>(2019)에서는 아무래도 좀 납득이 안되는 연기를 보였다. 하지만 <수카르노>(2013),
<내 마음의 복제>(2016) 등에서 열연을 펼쳤던 그는 분명 당대의 대표적인
인도네시아 남성배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23년 연말 남부 자카르타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있었던 성탄 트리 점등식에서 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마야 하산 배우를 만나 이 영화를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하프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알린 마야는 점등식에서도 멋진 연주를 여러 곡 들려주었는데 그녀의 연기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검색해 본 바 그녀는 2006년에 스크린에 데뷔했지만 2022년부터 한 해에 한 두 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하는 중이고 난 아직 그녀의 출연작을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친애하는 나단, 고마워 살마(Dear Nathan, Thank You
Salma)>(2022), <옆 가게를 좀 봐 2(Cek Toko Sebelah
2)>(2022), <친애하는 다핏(Dear David)>(2023)은
꽤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에서 라우라 바수키가 분한 여주인공 레나타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한 마야의 출연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나온 것은 처음 갖는 경험이었다.
▲하피스트 마야 하산
2023년 말에 100만 또는 200만을 넘는
영화들이 줄줄이 나왔고 그중 특히 올해 초까지 일부 극장에 걸려있던 <지옥의 고문(Siksa Neraka)> 같은 영화에 관심이 갔지만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OTT에 올라올 날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1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시간으로
이 영화 티켓을 샀다.
시놉시스와 특징
여주인공 레나타는 아리오 바유가 분한 남주 에드윈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녀는 가정폭력이 자행되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참아내며 가정을 지키는 것이 여성이자 아내의 책임이라고 딸 레나타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레나타도 결혼한지 불과 3년 만에 매맞는
아내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남편은 누군가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황을 감수하거나 또는
무시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레나타에겐 이웃의 아스마라(아스마라 아비가일 분)가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지극히 보수적인 레나타와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고 매춘부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는 아스마라가 보여주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의 극명한 차이는 스토리 저변에 깔린 중요한 복선 중 하나다.
남편의 정부 아나(Ana)가
남편의 잠겨진 방 안에 숨겨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여성은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강박관념에 휩싸인 듯한 아나의 어머니가 레나타의 집 주변을
맴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레나타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고 남편은 약기운 강한 알약을 자꾸 레나타에게
강제로 먹이려 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스토리 설명은 이 정도로 그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호러영화인데도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 심리 스릴러란 점이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얼마든지 제작되는 심리 스릴러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새삼스럽게 취급되는 이유는 인도네시아의 호러 영화라면 백이면 백 모두 귀신이 등장하는 ‘악마적 호러’를 주제로 해왔기 때문이다. 심리 호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후 최근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관객들이 나름 머리를 열심히 써서 생각해야 하는 심리 스릴러보다 허접한
귀신이 한번 나와주는 것이 더 많은 관객을 들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성패가 갈리는 심리 호러물에 연기력이 입증된 라우라 바수키, 아리오
바유, 아스마라 아비가일 등을 기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대체로 여배우들의 연기가 뒤로 갈수록 너무
과장되어 간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앞서 <사탄의 숭배자>, <지옥의 여인>, <망꾸지워> 등에서 각각 신비로운 불멸자, 살인귀 마을의 순수한 여성 주민, 마침내 미쳐 악마에게 바쳐지는 가련한 여인을 연기하며 다양한 연기 스팩트럼을 보여 주었던 아스마라의 이번 연기는 확실히 좀 부담스러웠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출연진 왼쪽부터 라우라 바수키, 아리오 바유, 아스마라 아비가일
종교와 가정폭력
이 영화에서 이슬람 색채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 대신 기독교 목사가 등장하고 에드윈-레나타 부부도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개신교 회중석에 카톨릭 성당에 온 것처럼 머리를 숄로 가린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에 익숙하지 않은 제작자 또는
감독이 억지로 기독교를 영화 속 배경으로 깔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평등을 중시하는 개신교에서 남존여비
사상을 설교하는 목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 속의 목사는 남성의 갈비뼈로 만든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스토리의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이 얘기를 차마 우스탓의 입을 통해 말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매질하는 가정폭력은 최근 실제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주요 이슈다. 특히
연예인 부부들이 이혼하거나 경찰에 서로 고발하여 물의를 빚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폭력이 그 이슈 중 하나다.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우삐는 여성으로서 이 주제를 일부로 선택하여 이 시대의 세태를 일부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레나타의 얼굴과 몸에 멍이 사라지는 날이 없고 때로는 가죽 허리띠로 내리친 흔적이 등에 채찍자국처럼
남기도 한다.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남편에게 굴종하는 여성들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대개의 경우
자신이 죽거나 상대방을 죽이는 것뿐이다.
그런 아내들은 남편을 거스르지 못해 남편의 외도를 막을 수도 항의할 수도 없을 만큼 무력하다. 어쩌면
실제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그런 가부장제의 폭력성이 여성들로 하여금 남편이 두 번째, 세 번째 처를 들이는
것을 피눈물 흘리며 용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치 한국 남성들이 중형
세단이나 롤렉스 시계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듯 인도네시아에서는 처를 여럿 둔 것이 재력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사회문제를 건드렸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라 하겠다.
오리무중
우삐 감독은 분명 불안정한 레나타의 심리와 시각을 통해 공포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을 자꾸 살려내니 영화의 스토리가 꼬이고 말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로서의 우삐 감독의 머리 속엔 분명하고도 명쾌한 스토리가 들어 있었겠지만 감독으로서의 그녀는 그것을 스크린에
충분히 표현해 내지 못했다. 몇몇 복선들을 놓치고 필요없는 장면이 들어가고 편집이 뒤죽박죽되면서 분명
몽환적이긴 하지만 그게 너무 지나쳐 마치 관객들이 모두 약을 빤 듯 스토리의 가닥을 놓쳐 좀비처럼 헤매고 말았다.
만약 이 영화 스토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왜 저런 마지막 장면이 등장하고 어느 장면이 먼저고 어느 장면이 뒤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관객이 있다면 자신이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아쉽지만 우삐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타율이 그리 좋지 않다.
이 영화의 총평?
많이 아쉽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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