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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영화 <피나: 원혼의 증언(Vina: Sebelum 7 Hari)>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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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55회 작성일 2024-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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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원혼의 증언(Vina: Sebelum 7 Hari)> 리뷰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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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에(Vina: Sebelum 7 Hari)>는 워낙 유명한 실제 사건을 영화한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간 5 13() 120만 명 가량 관객이 들었던 때인데 개봉하자마자 관객들이 몰리며 5일만에 간단히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매체에서 이 영화는 물론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적잖게 쏟아져 나왔다.

 

개봉 10일차인 5 17, <피나~> 250만 관객을 넘었는데 이 추세라면 <무덤 속의 고통>, <무용수마을의 바다라우히>의 흥행성적을 곧 뛰어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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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10일만에 2024년 로컬영화 흥행순위 4위까지 올라간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에> 


제목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에(Vina: Sebelum 7 Hari)>라는 제목은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기 전 7일간 세상에 머문다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게 무슬림의 신앙인지 자바인들의 토착신앙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처참하게 살해된 비나가 죽은 후 7일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이것도 벌써 스포일러인데 이보다 더한 스포일러를 말해야 한다. 물론 이 사건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로서는 이미 알고 있던 이 사건의 팩트들이 영화 속에서 어떤 장면으로 구현되는지가 관전 포인트일 뿐이지만.

2016
년 찌레본에서 피나와 그의 애인이 무참히 살해되어 한 교량 초입에 버려진 것은 그것 자체로 이미 비극적인 일이지만 사실 그 정도의 사건들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피나 사건이 유독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피나의 원령이 친구에게 빙의하여 자신이 살해되던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고 해당 녹음파일이 소셜미디어를 유포되면서 많은 이들이 실제로 피나가 빙의하여 말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실세계의 살인사건이 지닌 오컬트적 요소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녹음파일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자 이를 단순 교통사고 사망사건으로 처리했던 경찰이 뒤늦게 검시와 추가수사를 진행해 범인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붙잡힌 여덟 명의 범인들 중 일곱 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한 명이 8년형을 받은 것은 그의 죄가 다른 이들보다 적어서가 아니라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이 참작되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원령의 증언이 없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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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를 연기한 나일라 D 뿌르나마 배우(왼쪽)과 생전의 피나(오른쪽) 


그래서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은 <피나: 원령의 증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호러 영화
이 영화엔 분명히 귀신이 섬뜩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당시 벌어진 실제 범죄를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것으로 귀신 등 호러적 장치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분노와 원통함을 삭히기 위한 영화적 기법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신과 빙의가 난무하는 이 영화를 굳이 호러 장르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재능 많고 아름다운 고등학생 피나가 애인과 함께 찌레본의 한 교량 초입에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피나의 부모는 딸의 부러진 팔과 다리, 몸 전체의 멍과 열상에 이상함을 느끼지만 단순 교통사고라는 경찰의 말을 믿고 부검 없이 매장을 진행한다. 하지만 딸의 원령이 딸 친구에게 들어가 사실은 오토바이 갱에게 잡혀가 고문과 강간을 당한 끝에 살해되었다고 밝히고 그들 중 경찰의 아들에기란 인물은 이미 자카르타로 도망갔다며 복수를 부탁한다.

이때 녹음된 파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가자 경찰은 그제서야 피나를 다시 무덤에서 꺼내 부검을 진행하고 오토바이 갱들을 잡아들이지만 범인들 중 세 명은 잡지 못했고 이미 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소재는 밝혀진 바 없다.

그들은 아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지만 영화를 만든 앙기 움바라 감독은 영화 속에서 피나의 원혼이 오토바이 갱 두목 에기에게 처절하게 복수하는 장면들을 넣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두 젊은이의 생명을 어떠한 자비심도 없이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짓밟아버리고도 지금 어디선가, 아마도 외국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을 그 세 명의 가해자들을 앙기 감독이 영화 속에서만큼은 그렇게 처단한 것이다.

그래서 피나의 원혼이 복수하는 장면은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통쾌하기만 하다.

감독과 배우
앙기 움바라 감독은 2004년에 데뷔한 베테랑으로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 2022년 나오기 전까지 로컬영화 역대흥행순위 1위를 지키던 코미디 영화 <와르꼽 DKI의 부활: 귀뚜라미 보스 1(Warkop DKI Reborn: jangkrik Boss! Part 1)>(2016)을 찍었고 최근엔 <사뚜 수로(Satu Suro)>(2019), <안쫄다리의 미녀귀신(Si Manis Jembatan Ancol)>(2019), <칸잡(Khanzab)>(2023), <문카르(Munkar)>(2024) 등 호러영화도 여러 편 히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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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기 움바라 감독 


피나 역을 맡은 2007년생 그래서 아직 17살 학생인 나일라 데니 뿌르나마는 최근까지도 등장인물의 아역으로 자주 출연하다가 이번 영화가 첫 주연작이다.

피나의 절친이자 나중에 피나의 원령이 빙의하는 린다 역은 지셀마 피르만샤가 맡았는데 2005년생이니 나일라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2023년 최고 흥행작 <세우디노>에서 악령에 빙의 당해 시체를 옮기는 들것인 끄란다(Kranda)에 누워있던 아트모조 가문 마지막 자손인 델라 역을 맡았던 배우다.

오토바이 갱 두목 에기 역의 파하드 하이드라는 2001년생 배우로 앙기 감독의 < & (Jin & Jun)>(2023)에 출연한 필모만 알려져 있다. 잘 생긴 외모여서 팬들도 많은데 의외로 인터넷 상 찾아볼 수 있는 활동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 악역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미남이지만 막무가내에 잔혹한 오토바이 갱단 두목 역할을 나름 잘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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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일라 데니 뿌르나마, 지셀마 피르만샤, 파하드 하이드라 


배경 문화
2016
년 찌레본에서 벌어진 이 영화의 원본 살인사건에서 린다의 몸에 빙의한 피나가 자신을 죽인 에기가경찰의 아들이라고 목놓아 외치지만 관련 수사가 얼마나 철저히 진행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경찰이 귀신의 말을 가이드라인 삼아 수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경찰 아들이 연루되었다는 원혼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폭행흔적이 온몸 가득한 피나와 그녀의 애인을 경찰이단순 교통사고 사망으로 간단히 처리했을 리 없고 당시 체포를 피한 세 명의 도망자를 8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7의 의미는 앞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7일이 지나면 망자의 혼이 시신과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된다. 망자의 혼이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출몰하며 괴롭히게 되는데 그건 자신이 떠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혼이 죽은 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죽어서도 안식에 들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무슬림들의 시신을 염할 때 천으로 감아 뽀쫑을 만들고 몸의 여러 곳을 끈으로 묶어주는데 매장할 때 그 끈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밤에 뽀쫑이 무덤에서 일어나 지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딸리뽀쫑이라 불리는 그 끈을 풀어달라 하소연한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일부 두꾼들은 그 딸리뽀쫑이 주술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갓 매장된 무덤을 파헤쳐 딸리뽀쫑을 가져가는 경우도 벌어지며 그 소동의 일부가 드러나 신문 사건사고면 기사로 실리기도 한다. 영화엔 피나의 시신을 매장하면서 딸리뽀쫑을 풀어주는 장면들도 담겼다.

또 하나 무슬림들의 특기할 만한 매장문화는 시신을 묻을 때 인공적인 것을 함께 매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파묘>에서 본 것처럼 한국은 시계나 귀금속, 심지어 틀니 같은 것이 관 안에 같이 넣는데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에게 그런 것은 금기가 된다. 반지, 가발, 의수, 의족, 의안 같은 것들도 무덤에 함께 넣을 수 없다. 치아교정기, 헤어익스텐션도 마찬가지다.

보철, 보형물 같은 것들도 그렇다. 예를 들어 가슴확대수술을 하여 보형물을 넣은 여성의 경우 가슴 속 실리콘을 꺼낸 후 매장한다. 큰 사고를 당해 다리뼈 등에 철심을 박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개인적으로 몹시 궁금하다.

이중 무슬림들이 가장 문제삼는 것은 두꾼들의 주술이 담긴 수숙(susuk) 같은 것이다. 대개 금속 바늘처럼 생긴 수숙은 주술적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두꾼이 모종의 신비로운 방식으로 수술 없이 몸속 어딘가에 장착하는데 죽을 때가 다가오면 이 수숙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죽지 못하고 죽더라도 혼이 몸을 떠날 수 없다고 하여 다급히 수숙을 꺼내는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도 피나에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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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숙은 대개 이런 모양이지만 전혀 다른 형태, 예컨대 구술 같은 것들도 있다

이걸 몸 속 어디에 어떻게 심는지는 두꾼들만의 영업비밀이다. 


맺는 글
한국에서 옛날 정우성의 <비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젊은 시절 싸움 잘하는 상남자가 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치명적인 매력처럼 느껴지던 시절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대형 오토바이 클럽을 만들어 할리 데이비슨 같은 걸 타고 단체로 도로를 질주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을 보면 어떠면 이들도 그런 비슷한 낭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문화 속에서 오토바이 갱들이 발생한 것일까?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 갱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예전엔 끄마요란 대로, 요즘은 카사블랑카 고가도로에서 오토바이 갱들이 머플러 굉음을 울리며 경주를 벌이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찰이 이들을 단속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는다. 영화 속의 오토바이 갱도 그런 이들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무서운 영화를 보았다는 생각보다는 분노가 치미는 걸 느끼는데 그건 피나를 살해한 나쁜 놈들 일부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거론하며 도망자들의 인상착의를 뿌리고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들이 여러 매체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사건의 녹음기록이 사실이라 해도 죽은 피나의 원혼이 직접 가해자들을 벌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빙의해 당시 사건을 전하며 울분을 터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피나가 죽은 후에도 너무 애를 쓴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당시 원본 녹음파일이 재생되면서 흘러나오는, 린다에게 빙의한 피나의 목소리는 지금도 충분히 센세이셔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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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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