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아직도 대체할 수 없는 종이책 독서 열망, 그러나 부족한 정책과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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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체할 수 없는 종이책 독서 열망, 그러나 부족한 정책과 인프라
인도네시아 출판협회 칼럼/ 배동선 작가 번역
하지만 종이책의 매력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 물론 디지털 세상으로 향해 가는 요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출판업계 종사자들만의 종교, 또는 미신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종이책이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분주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사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매개체라 생각하는 이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서부자바 찌까랑에 사는 빠뜨리시아 디안(28)은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몇 번 읽어보았지만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소셜미디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고 털어 놓았다. 그래서 독서를 한다면 당연히 종이책이어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데빈(27)도 종이책을 들고 있어야 실제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그 안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전자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는 종이책을 읽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언박싱(포장을 뜯는 것)의 흥분부터, 페이지를 넘기는 감촉, 책이 쌓여 있는 모습이 주는 행복감까지 모든 것이 전자책으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독서시간이 줄어들어 데빈은 이제 책을 일년에 2-3권 정도 읽는 게 고작이다. 예전엔 더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는 핸드폰 액정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만 책을 볼 때는 왠지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충실한 독서인들마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물결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파트타임 도서 편집자 와휴 N 짜효(Wahyu N Cahyo)는 요즘 아마존의 킨들(Kindle) 같이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한 애플리케이션으로 다양한 전자책에 접근할 수 있지만 역시 그것으로는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전자책을 읽는 것은 대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지만 끌라텐이나 족자 같은 지방도시에서는 아직도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인터넷 신호가 잘 닿지 않는 곳이 많은 인도네시아를 전자책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미래의 얘기다.
아직 높은 인기 구가하는 종이책들
관광창조경제부(Kemenparekraf)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 산업은 2020년 국내총생산(GDP)에 69조700억 루피아(약 57조 원), 즉 7%를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 기여도는 2020년 3월 코로나가 상륙하면서 다른 산업들이 거의 멈춰버린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한편 2021년 출판 부문에 종사한 인원은 57만여 명이다.
이처럼 도서 산업이 경제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부분인데도 해당 산업에 대한 관심은 그 중요성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부미 악사라 그룹(PT Bumi Aksara Group)의 CEO 루시야 안담 데위(Lucya Andam Dewi)는 도서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도서 유통량이 상당히 줄어들었는데 전자책 판매는 그리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만약 도서 소비형태가 인쇄물에서 전자책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사실이라면 종이책 소비가 줄어든 만큼 전자책 판매량이 그만큼 늘어나야 하나 그런 움직임은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급 학교나 대학교 등 교육기관들이 도서관용 전자책을 구매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속도나 정도가 괄목할 만하다 말하긴 어렵다.
지금도 동화책과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들이 종이책 판매를 주도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종이책 유통량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20~30% 감소했다. 루시야는 독서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점도 이런 상황이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요즘은 많은 이들이 검색엔진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쉽게 찾아 읽게 되면서 이해력 역시 단순화, 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팬데믹 이전에는 출판사에서 연간 한 타이틀 당 3,000~5,000부를 인쇄했다. 하지만 이젠 그게 너무 많은 양이 되어 버렸다. 이 정도 숫자의 책을 팔려면 대체로 1년 이상이 걸린다. 물론 1년 걸려도 다 팔린다는 보장은 누구도 못한다.
책 유통량도 줄었고 한 번에 인쇄하는 부수도 줄었다. 대량 생산이 안되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쇄부수의 감소는 결과적으로 책의 단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출판사들은 보다 많은 타이틀의 책들을 내고 싶어하지만 이를 위해 자본효율성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지금은 보통 초판 인쇄 부수가 1,000~2,000권 정도다. 그중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동화책의 매출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그라메디아(Gramedia) KPG 출판부문의 사업개발 담당인 에스텔라 예넷(Esthela Yeanette)은 종이책 판매량이 여전히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이 매출을 이끌고 있지만 사회과학, 자연과학, 자기계발서 등 논픽션 도서의 수요도 증가 추세에 있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만화를 포함한 여러 장르의 도서들의 경우 판매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만화의 경우 독자들이 디지털 만화 및 웹툰으로 선회하면서 판매량이 실제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전자책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종이책의 판매량을 따라잡은 것은 아니다.
비판적 사고
인도네시아 출판협회 아리스 힐만 누그라하 회장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가 전국 평균적으로 책에 접근하는 것이 아직 용이하지 않아 독서습관이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라 인식하고 있다.
2022년 OECD가 실시한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시험결과에도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읽기 능력 점수가 다른 나라들의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고 이는 20여년 전인 2000년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 회장은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이 낮아 조금만 복잡한 문장이 주어져도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평가했다. 이는 문해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는 최근 출판사들의 도서 출판부수 감소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과거 초판 인쇄부수가 5,000부까지도 갔던 것이 3,000부로 줄었다가 이제 1,000부만 인쇄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결과 서점 서가에 진열되는 책의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책의 판매부진이 더 심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하지만 최근 서점과 출판사들이 속속 문을 닫는 현상은 인도네시아 출판업계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는 점과 출판산업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아리스 회장은 강변했다.
그는 이제 인도네시아인들의 구매력도 상당히 커졌지만 주로 육체적 발달을 위한 부문에 치중된 지출이 개인의 인문학적 정신 발달을 위해서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시야는 출판사들이 출판할 책을 선정하고 인쇄를 진행할 때 더욱 신중하고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책의 콘텐츠는 물론 종이의 규격, 무게까지 고려해 책의 품질을 높여 읽기 편안한 책이 되도록 물리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출판의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개선
도서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도서산업의 업스트림뿐만 아니라 다운스트림까지 전방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게 책을 구입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그렇게 지원된 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효율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한 방편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일정 기간에 어떤 종류의 책을 몇 권 이상 읽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학습자료가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하지 않고 실제 종이책을 읽어야 얻을 수 있는 과제를 고안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도 아이들의 독서를 권장하고 지원해야 한다.
한편 출판인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 역시 필요하다.
아리스 회장은 수업 시작 전 15분간 독서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제안했다. 이때 읽는 책들은 성적과 관계없는 책, 신문, 잡지 등을 망라하며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독서하는 습관, 책을 사랑하는 버릇을 키우는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 인도네시아인들 전반의 독서습관이 제고되면 출판사들 역시 인쇄부수를 늘리고 도서 품질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논리다.
인도네시아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열띤 캠페인을 벌이는 이웃국가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정부는 출판사들에게 특별한 공간을 제공해 연간 많은 행사가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는데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국가행사도 거기 포함된다. 2022년 팜민친(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와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n) 말레이시아 총리의 회담이 베트남 하노이 도서거리(book street)에서 열린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2024년에 들어선 인도네시아 도서산업은 아직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그림자를 벗어나 다시 활력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번엔 정부 이에 부응해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정책들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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