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영화 <시신목욕사(Pemandi jenazah)>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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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신목욕사(Pemandi jenazah)> 리뷰
배동선
영어로는 육체도 body, 시신도 body인
반면. 한국어처럼 인도네시아에서 육체는 badan(바단) 또는 raga(라가), 시신은 jenazah(즈나자)로 각각 다른 단어를 쓴다. 그래서 모빌 즈나자(mobil jenazah)는 운구차이고 mandi가 목욕이란 뜻이니 뻐만디 즈나자(Pemandi jenazah)는 ‘시신목욕사’ 정도의 뜻이 된다. 넷플릭스에는 <The Corpse Washer>라는 영문제목이 달려 올라와 있고 아직 한글 자막은 없다.
2024년 2월 22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같은
달에 말레이시아와 부르나이, 싱가포르에서도 개봉되었고 넷플릭스에서는
6월 27일 올라갔으니 스크린에 3주 전후 머물렀다고
보면 OTT로 넘어가 상영되는 홀드백 기간이 3개월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엔 영화 홀드백 기간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최소 4개월을 지켜주는데 이 영화는 조금 빨리 OTT로 넘어간 감이 있다.
이 영화는 164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올해 8월
기준 로컬영화 흥행순위 7위에 올라 있다.
시놉시스
‘시신목욕사’라 하면 한국에서도 괴담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주로 종합병원에서 각종 사인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닦고 목욕시키면서 겪는 온갖 괴담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영화의
초점은 그것과 사뭇 다르다. 시신목욕과 관련한 괴담보다는 복수와 산뗏(santet)
저주술의 이야기다.
시티(제나르 마에사 아유 분)는 마을의 유일한
시신목욕사이고 딸 렐라(아그니니 하끄 분)가 그 일을 가업으로
이어받길 원한다. 그래서 시티는 렐라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에서 상이 나면 가서 시신을 씻어주미나 정작
렐라는 그 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대도시에 나가 다른 기회를 잡기를 원한다.
시신목욕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시신을 덮은 천 위로 머리에서 다리까지 적시는 것으로 시작해 온몸을 씻어주는 것인데 시신목욕사가 뽀쫑
형태로 염까지 하는 것인지(혼자 하기 어려운 과정이어서 아마도 모스크 등에 따로 염습사가 있음), 남성 시신도 이들이 목욕을 시키는지는 영화에 따로 설명이 붙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단의 중년 여성들에게 악령이 찾아오며 한 명씩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꽤 잘사는 집안의 이다 아줌마가 제일 먼저
급사하자 혼자 시신을 씻으러 간 시티가 마치 살이라도 맞은 듯 기진맥진한 채 돌아와 그날 밤 똑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 후에도 계속되는 중년 여인들의 잇단 죽음. 어머니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그 마을의
유일한 시신목욕사가 된 렐라는 어머니의 시신부터 이후 모든 시신들을 도맡아 씻어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렐라는 시신들에서 하나같이 가시철조망의 일부 또는 1미터는 족히 넘는 기다란 철조망이 몸 속 깊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명백한 산뗏 저주술의 증거.
그래서 누가 마을에 저주를 걸었는지 은밀히 조사하는 과정에서 렐라는 과거 마을의 유부남들을 후리고 다니던 한 여성에게 마을 여인들이
몰려가 집단 린치를 가했다는 사실과 그 여인의 딸 리카가 소리소문 없이 그 마을에 신분을 속이고 돌어와 살면서 렐라의 남동생 아리프의 마음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딸이 가해자들의 사이에 숨어들어와
저주를 걸어 그들 모두를 절멸시키려 한다는 플롯은 끼모 쓰땀불 감독의 2019년 리메이크작 <흑마술여왕(Ratu Ilmu Hitam)>을 연상하게
한다.
▲<흑마술 여왕>(2019) 포스터
시놉시스 자체는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리 부드럽지 못하다. 스토리를
무리하게 진행시키면 늘 앞뒤가 안맞거나 뜬금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가장 고질적인 폐단은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스토리가 납작해진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 렐레 라일라(Lele Laila)는
2017년 다누르 유니버스 작품들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했고 2022년에는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 <꼬린>, <이바나> 등 흥행작들 시나리오를 쓰거나 각색한
인물인데 전작엔 살짝 못미친 듯한 느낌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여주 렐라가 왜 갑자기 리카를 구해겠다며 폭도들 사이에 뛰어든 것인지, 거기에
왜 렐라 남동생 아리프까지 뛰어들어 수백 대 맞은 리카와 렐라도 끄떡없는데 머리를 몽둥이로 한번 맞았다고 바로 죽은 듯(진짜 죽었을지도) 늘어져 버리는 것인지 적잖이 당황스럽다.
감독과 배우
이 영화를 감독한 하드라 다엥 라뚜(Hadrah Daeng Ratu)는 전에 리뷰했던 <막뭄(Makmum)>, <시진(Sijjin)> 등을 감독한 1989년생 젊은 여감독이다. 여성 감정묘사에 뛰어나 사실은 호러 장르보다 로맨드 드라마 더 잘 맞는 감독인데 2023년 <172일(172
Dyas)>라는 이슬람 로맨스 영화에 300만 명 넘는 관객이 들어 그해 로컬영화
흥행순위 4위를 차지한 나름 흥행감독이다. 그해 <시잔>도 190만
명이 영화를 봐 9위에 올랐다.
▲왼쪽부터 하드라 다엥 라뚜 감독, 렐라 역의 아그니니 하끄, 아리프 역의 이브라힘 리샤드
렐라의 남동생 아리프 역의 이브라힘 리샤드는 이제 막 30살이 넘은 젊은 배우인데 잘 생긴
얼굴에 비해 필모그래피가 짧고 연기가 너무 판에 박힌 듯 밋밋하고 수동적이다.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아직 많은 훈련이 필요…, 단적으로 말해 이 친구가 나오는 장면마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반면 1997년생 아그니니 하끄는 거의 혼자서 이 영화를 하드캐리 했다. 2018년에 연기를 시작했으니 연기경력은 6년에 불과하지만 자바
무협극 <위로사블렝(Wiro Sableng)>(2018)을
통해 인상적인 데뷔를 한 후 2022년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에서 뱀의 진 바다라우히에게 끝내 사로잡히고
마는 여대상 아유 역을 열연해 이후 <라덴살레 절도작전(Mencurei
Raden Saleh)>(2022), <꼬린(Qorin)>(2022), <모든
지옥의 밤(Malam Para Jahanam)>(2023) 등 후속작들 주연을 꿰어 찼다.
필자가 아그니니 하끄 배우의 팬이 된 것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그녀의 개인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14살이던 2011년에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태권도 신동이었다. 하지만 2016년 19살
때 무릎 부상을 당해 대표팀을 물러나와 스마랑으로 돌아가 절치부심하던 중 2018년 20세기 폭스사와 현지 라이프라이크 픽쳐스의 합작영화인 <위로사블렝>의 출연제의를 받고 연기를 시작하는 특이한 데뷔과정을 거쳤다.
▲태권도 국가대표 아그니니 하끄(왼쪽),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가운데), <위로사블렝>(오른쪽)
털털하고 말괄량이 스타일인 그녀는 사실은 미혼모 어머니 밑에서 그리 유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15살 때
베트남에서의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환승하면서 친부를 잠깐 만났다고 한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그래도 늘 그리워했지만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던 날 모든 환상이 깨지고 아버지가 그저 타인이란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배우 자체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니 그녀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대부분 모두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평론하는
사람이 이러면 안되는데….
영화 속 인도네시아 문화
영화 속에서 아리프는 누나인 렐라를 ‘바(mbak)’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를 부를 때 경칭의 의미로 이름 앞에 붙여서 쓴다. 하지만 자바 사람들은 손위 여자형제를 부를 때에도 mbak라 부른다. 즉 누나라는 뜻이다. 이 호칭의 의미를 모르면 남매라는 아리프가
렐라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바 여성이 오빠를 부를 때 ‘마스(mas)’라고
부른다. 이는 젊은 남성을 부를 때 경칭으로 이름 앞에 붙이는 단어이기도 하고 남편, 남성 애인, 또는 여성이 여동생이나 언니의 남편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게 헷갈리면 영화 속 족보도 꼬인다.
한편 산뗏은 특정 상대, 가문, 지역을 저주하는
주술로 상대방의 사업을 망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병들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주술적 힘을 통해 저주의 타겟이 된 상대방의 몸 속에 못이나 바늘 같은 사금파리들을 넣어 고통을 유발하거나 질명이나 사망을 초래하도록
하는 것이 산뗏 저주술의 전형이다. 물론 영화 <세우디노>에서 본 것처럼 한 가문을 1000일 내에 구성원들을 모두 죽여
절멸시키는 식의 저주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주술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영력을 가진 무당인 두꾼(Dukun)과 그 두꾼이 부릴
귀신 또는 마물에게 바칠 제물(tumbal), 그리고 해당 저주술이 목표한 타겟들에게 정교하게 발동하도록
하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타겟이 된 사람의 손수건이나 지갑 같은 소지품, 머리칼, 손톱 같은 신체의 일부나 혈액이 묻은 붕대나 생리대 같은
것이 목표물을 특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가 된다.
때로는 저주가 절대 그 개인이나 집안을 빗겨 나가지 않도록 개인의 소지품에 뭔가를 몰래 끼워 넣거나(부적처럼) 집안 구석 어딘가에 주술이 담긴 무언가를 파묻어 벼락을 끌어당기는 피뢰침처럼 저주를 품고 찾아오는 귀신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 속에서는 피해자들의 사진들이 매개체로 쓰였는데 사진을 산쩻 주술의 매개체로 쓰는 일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물론 그게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2024년 3월 땅그랑에서 산뗏 저주술의 증거물로 경찰이 압수한 실제 사진 증거물들.
범인은 바늘로 사진 속 인물의 얼굴 등에 구멍을 뚫으며 저주를 기도했다.
아쉬운 디테일과 마무리
나름 범인을 찾아내는 스릴러이기도 하니 쉽게 범인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범인을 너무 피해가다 보니 범인이 너무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과거에 마을에서 그 ‘남성을 후리고 다니던 여성’이
실제로 어떤 일을 했던 것인지, 그 모녀가 어떻게 그 마을을 떠났는지,
그 딸이 어떻게 그곳에 다시 스며들게 되었는지, 당시의 가해자들을 하나씩 가혹한 죽음으로
몰고가는 산뗏 저주술은 절대 간단한 것이 아닐 텐데 범인은 그런 주술적 기술을 언제 어떻게 익혔는지, 그
주술을 발동시키기 위해 어떤 제물을 바쳤는지 등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진을 얻어 그 사진을
칼로 긁고 바늘로 찌르는 것만으로 사진 속 인물을 죽일 수 없는데 말이다.
시신을 목욕시키는 장면은 얼마 전에 리뷰한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에서도 제법 소상히 묘사된 바 있지만 ‘시신목욕사’란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서도 시신목욕과 별 관계없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어떤 면에서는 늘 히잡을 쓰고 다니는 젊고 독실한
여성감독이 금기를 넘지 못해 망설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최근 호러영화의 이슬람 관련 장면에 대해 현지 이슬람단제들은 물론 영화검열 당국에서도 문제를 삼으면서 감독들의 운신의 폭이 크게 줄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 색체를 전혀 띄지 않는 호러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시신목욕사> 역시 그런 트랜드를 따르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히잡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이슬람공동체 마을에서 살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영화
속 등장하는 뽀쫑(Pocong) 귀신들은 그 형태 자체가 이슬람식 염을 한 상태이므로 무슬림들의 시신임을
시사하지만 노골적으로 이슬람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모스크나 이슬람 교사 우스탓
같은 이들이 등장하지 않고 종교적 뉘앙스의 대사 역시 말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하려 했던 이슬람 호러 <끼블랏(Kiblat)>이 이슬람 단체들의 비토를 받고 영화검열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여파가 크다. <끼블랏>은 결국 한동안의 재편집을 통해 문제의 장면들을
삭제하고 <타굿(Thaghut)>이란 제목으로
바뀌어 재개봉을 시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은 종교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데 특히 호러 영화에서는 종교 부분은 완전히 배제하거나 미화해야 한다는 점은 자연스럽고
공감가는 방식의 스토리전개를 어렵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시신목욕사> 역시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영화는 또 다른 시신을 닦던 렐라가 시신의 몸에서 이번엔 철조망이 아닌 새끼손가락 길이의 얇은 금침을 뽑아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그런 금침은 여성들이 운이나 미모를 얻기 위해 주술을 담아 몸 안에 넣는 수숙(Susuk)이라는 것인데 이는 이제까지의 전개가 산뗏 저주술의 이야기였다면 혹시 앞으로 나올지도 모를 속편은
수숙을 포함한 뻴렛 주술의 이야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 수퍼히어로 영화들도 최근작들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후속작 제작이 불투명해진 상태인데 그래도 인도네시아 호러 장르 영화들은
귀신이 좀 나와 주면 100만 관객 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니
<무용수마을!>이나 <사탄의
숭배자> 또는 다누르 유니버스의 프랜차이즈 연작들처럼 이
<시신목욕사>도 속편이 나올 수 있을까?
그건 좀 힘들지 싶다. (끝)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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