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인도네시아 토지 소유권 복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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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조성한 아파트 단지의 유닛 한 개를 목돈을 들여 구입했는데 나중에 발급된 증서를 보니 내 소유권이 20년쯤 후에 만료 또는 소멸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그걸 과연 내 소유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의 소유권 제도는 한국과 사뭇 다른 듯하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토지는 기본적으로 국유지와 사유지로 구분되는데 인도네시아의 국유지는 정부 각 부처들이 나누어 관리책임을 맡고
개발계획이 있는 지역에는 이를 관리할 기관(BLU)을 설치해 해당 토지의 관리권(HPL)을 부여한다. 한편 사유지에는 한국의 토지소유권과 별반 차이
없는, 매매와 상속이 자유로운 일반 소유권(HM)이 설정된다.
만약 기업이 창고나 공장을 짓거나 플랜테이션을 만들려면 HM 소유권이 설정된 사유지를 매입하여 HM을 인수하거나 토지 소유권자와 공동투자계약 같은 것을 맺어 그 토지 위에 건축권(HGB)이나 사용권(HP) 같은 것을 설정하게 된다. 토지 소유주가 땅을 대고 투자자가 자본을 투입해 해당 토지에 건물을 올리거나 공장을 짓는 등 개발한 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하는 식이다.
여기서 문제는 자본이 투입되어 건물이 올라가거나 플랜테이션이 완성될 즈음 어떤 개인 또는 일단의 사람들이 또 다른 소유권 증서를 들고
나와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해당 사업의 지분을 달라고 막무가내를 부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그들이 걸어온 소송에 시달려 피폐해지거나 급기야 투자금을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이런 일은 1945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식민지 시대의 토지소유권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애매해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무 관청의 행정오류나 부정부패로 동일 토지에 복수에 소유권 증서가 발급되거나 필지간 경계가 겹치는 등 다양한 사유로 인해
발생한다. 의도적으로 토지분쟁을 일으켜 돈을 뜯거나 토지를 빼앗는 이른바 ‘토지 마피아’들도 기승을 부린다.
이는 소유권 증서를 발급하고 검증하는 농지공간계획부/국토부(Kementerian ATR/BPN – 이하 국토부)가 그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업이나 개인이 HM 소유권
상태의 사유지를 매입할 때엔 혹시라도 벌어질지 모를 소유권 분쟁 가능성을 면밀히 짚어 보아야 한다.
그나마 조코 위도도 대통령 재선임기 후반에 들어 전 통합군사령관(우리로 치면 합참의장급) 출신 하디 짜햔토(Hadi Tjahjanto) 장군이 2022년 6월 국토부 장관에 오르면서 대대적으로 토지 소유권 정리작업을
시작했고 수실로 밤방 유도요도 전대통령의 장남 아구스 하리무르티 유도요도 민주당 당대표가 올해 2월
후임 국토부 장관에 올라 전임자의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수만 건의 토지 소유권을 정리하고 새로 발급해 토지 마피아들로 인한 토지분쟁
소지를 줄였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구스 하리무르티 유도요노 현 국토부 장관(왼쪽)과 하디 짜햔토 전 국토부 장관
국유지의 경우엔 토지 마피아들이 발호할 위험성이 현저히 적다. 감히 국가 공권력에 도전할
범죄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가나 투자자들은 국유지 관리기관(BLU)과
계약을 맺어 관리권(HPL) 상대의 토지를 떠오고 그 위에 건축권(HGB),
경작권(HGU) 또는 사용권(HP) 형태의 소유권을
증서로 발급받아 아파트나 공장, 호텔을 짓거나 플랜테이션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토지 마피아들과의 소유권 분쟁문제는 벌어지지 않는 대신 국유지라는 토지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 주정부가 관리하는 국유지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한국처럼 당국과 민간기업이 개발에 합의하여
특별목적법인(SPC)를 세워 사업을 시작할 때 토지의 셩격도 국유지에서 사유지로 풀리는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의
경우 한번 국유지는 영원한 국유지. 그러니 그 국유지 위에 지은 아파트 유닛을 살 경우 그 아파트는
과연 내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것인가?
인도네시아에서 아파트를 사면 소정의 수속을 통해 국토부가 발행하는 SHMSRS 또는 SHM 사루순(SHM
Sarusun)이란 이름의 아파트 유닛 소유권 증명서를 발급받게 된다.
SHMSRS는 유닛에 대한 것이며 토지 소유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가 만약 일반소유권(HM) 토지 위에 세워졌을 경우 유닛이 개인 소유인 것과 달리 아파트가 올라선 토지는 공동소유의 성격을 갖는다.
토지 소유권자가 개발업자와 공동사업으로 아파트를 지으면 토지 소유권자의 일반 소유권(HM)은 개인에게 영속되는 권리이니 연장할 필요가 없지만 그 위에 공동사업법인이 설정된 건축권(HGB)은 기한이 정해진 소유권이며, 그 HGB를 기반해 발급된 유닛 구매자의 SHRSRS는 HGB 기간만큼만 유효하다. 즉
HGB가 연장되지 않으면 SHMSRS는 HGB의
유효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효력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아파트가 지어지고 나면 해당 HGB를 입주자들 모임인 주민협의회가 관리하게
되므로 일반소유권 기반 토지에 세워진 아파트 유닛 구매자들이 소유권 만료로 쫓겨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 국유지 기반의 관리권(HPL) 토지 위에 세워진 아파트의 경우는 어떨까? 기업이 HPL 토지 위에 받은 건축권(HGB)의 유효기간은 30년이다. 유효기간
만료 시 토지와 아파트 상태가 소정의 조건을 충족하면 HGB 기간은 관리기관과 국토부의 승인 하에 20년 연장, 그 후에 다시 30년
갱신이 가능하다.
즉 HGB 형태의 소유권이 한 텀을 완전히
도는 데에 80년이 걸린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80년이 지난 후엔 아마도 다시 연장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아직 인도네시아엔 80년 된 아파트들도 없고 인도네시아 자체가 2024년에 독립 79주년을 맞았을 뿐이다. HGB 80년은 아직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영역이고 그 이후를 규정한 딱 부러지는 법령도 없다.
그래서 어떤 기업이 HPL 관리기관과 계약을 통해 토지를 확보했지만 어차피 소유권 기간이 30년이니 바로 개발을 시작하지 않고 5년쯤 묵힌 후 공사를 시작해
일년에 한 개씩 타워를 올려 다섯 동짜리 아파트 단지를 5년만에 준공했다고 치자. 선분양으로 유닛을 매입한 주민들이 속속 입주하고서 빠르면 1-2년, 길면 3-5년 사이에 국토부로부터 문제의 아파트 유닛 소유증인 SHMSRS를 발급받게 되는데 아파트 개발 시행기업이 처음 HGB를
받은 지 이미 10년도 더 지난 시점이므로 해당 증서에 적힌 소유권 유효기간은 20년도 채 남지 않을 터다.
이론적으로는 HGB를 연장하고 갱신해서 유효기간보다 50년을
더 살 수도 있지만 이는 토지와 건물이 당초 목적에 부합한 기능을 하는 등 소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고 이를 당국이 판단해
승인하는 방식이므로 반드시 연장 및 갱신이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최근 발생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술탄호텔(Sultan Hotel)의 경우다. 국가사무처(Kemensetneg) 관할의 국유지에 세워진 술탄호텔은 인도네시아가 1962년
아시아게임을 개최할 당시 메인 스타디움으로 만들어진 글로라 붕까르노(Gelora Bung Karno – 이하 GBK) 단지 안에 위치한다. 예전엔 힐튼호텔이었던 곳이다.
이 호텔 역시 HPL 기반의 HGB 소유권을
받아 건설되었는데 이미 해당 HGB가 처음 발급된 후 50년이란
세월이 지나 처음 해당 증서를 받았던 사업가는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인 뽄쪼 수또워(Pontjo Sutowo)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호텔이 그저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가 2023년 10월 GBK 토지관리기관에게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GBK에는 야구장, 경륜장, 테니스 경기장, 농구장 등 각종 스포츠시설들이 갖춰져 아직도 많은 경기가 벌어지며 큰 콘서트도 자주 열리는데 작년 3월에는 블랙핑크도 이 곳에서 콘서트를 열어 대성황을 이뤘다. 해당
단지 안엔 각종 국제 박람회와 전시회가 분주하게 열리는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도 있다. 그래서 술탄호텔은 꽤 오래된 5성급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성업했다.
▲술탄호텔 전경 (홈페이지 캡쳐 - https://sultanjakarta.com/id/)
하지만 뽄쪼의 회사와 GBK 관리기관 사이의 토지이용계약은 기본적으로 BOT. 계약이 종료되면 토지를 원상태로 복원시켜 국가에 반납하는 조건이다. 과연 GBK 관리기관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는 객실이 없을 정도로 성업하던 호텔을
BOT 계약에 입각해 해체하라 명령할 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호텔 진입로를 모두 막아 더 이상 영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뽄쪼
측이 여러 건의 이의신청을 법원에 제기하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당국에서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지만 2024년 2월 대선과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토지소유권 문제에 민감한 기업들이나
부자들의 동요를 피하고, 더 나아가 임기 만료 전 어떻게든 신수도에 민간과 해외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던 조코 위도도 대통령으로서는 50년 전 투자했던 민간 투자자의 말로를 하필 그 시점에
만방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술탄호텔은 기본 30년 HGB 유효기간 만료
후 20년 연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후 다시 30년 갱신에는
실패한 경우다. 호텔이어서 토지계약 만료로 호텔 소유주인 뽄쪼 측만 소유권을 상실하여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되겠지만 아파트였다면 유닛 매입자 전원이 심각한 재산상 손실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아파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자카르타 폭동을 겪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보다 안전한 주거형태로 인식하면서부터다. 그러니 HPL 토지
위에 세워진 아파트들이 얼마나 많은 지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당시 지어져 이제 HGB 30년에
도래하는 아파트들이 조만간 속속 나오기 시작할 것이고 옛 자카르타 공항이 있던 북부 자카르타 끄마요란 지역 국유지에 세워진 아파트들은 대부분 2040년대에 30년차를 맞게 된다.
부동산 개발이나 아파트 단지 개발을 한다며 들어온 한국기업들이 그동안에도 꽤 있었지만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런 환경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누산타라(대통령궁 사무처 유투브 캡쳐)
그래서 수도를 동깔리만탄으로 이전하려는 정부가 민간기업들에게 투자를 종용할 때 기업들은 건축권(HGB)
80년, 경작권(HGU) 95년을 처음부터 일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HGU의 경우 기본 유효기간 35년, 연장 25년, 갱신 35년으로 한 텀 도는 것이 95년 걸린다. 기업의 토지 소유권 기한을 처음부터 80-95년으로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술탄호텔과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그 요구를 받고 조금 더 나갔다. 한 텀이 아니라 아예 두
텀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즉 HGB는 80년씩 두 텀인 160년, HGU는 95년씩 두 텀 190년을 주겠다는 것인데 물론 새로운 텀을 다시
시작할 때 소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임기를 몇 개월 남기지 않은 대통령이 내놓은, 인간의 수명을 훌쩍 넘는 기간에 대한 약속을 기업이나 해외투자자들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데 반면 일부 국민들은
과거 아편전쟁 후 중국이 영국에 뺏기듯 내어 준 홍콩, 마카오의 조차기간을 훌쩍 넘는 160~190년 동안 국유지의 민간 소유권 인정 정책은 국토를 팔아먹는 것과 다름 아니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신수도 누산타라 투자의 경우에 한한다. 그 외의 지역에 투자하려는
기업들과 외국인들은 여전히 창궐하는 토지 마피아들과 HGB 유효기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예방하거나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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