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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인도네시아 호러 영화 <황혼 무렵(Waktu Maghrib)>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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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19회 작성일 202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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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호러 영화 <황혼 무렵(Waktu Maghrib)> 리뷰

 

배동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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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 포스터 


인도네시아는 요즘 호러영화 시대다.
물론 걸출한 드라마나 코미디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러영화의 약진이 2017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1편부터 시작해 매우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러영화에 있어서는 라삐 필름(Rapi Film)이 전통적 강자인데 최근엔 MD픽쳐스가 <다누르(Danur)> 3연작을 위시해 연이어 내놓은 관련 스핀오프 작품들이 대부분 흥행순위 상위에 오르면서 이른바다누르 유니버스라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흔치 않은호러영화 세계관까지 만들어 냈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의 약진
호러영화로 인도네시아에서 첫 1,000만 관객 영화를 낸 곳 역시 MD 픽쳐스다. 2022 3월 개봉한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의 성적은 원래 920만 명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극장 상영된 모든 국내외 영화들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크게 고무된 MD 픽쳐스는 여세를 몰아 2022 12월에 속편을 내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1편에 920만 관객이 들었으니 2편은 내용이 별로라도 최소 600만 관객 정도는 쉽게 넘볼 수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졸속 제작으로 속편은 졸작이 될 것을 크게 우려했다.

다행히도 제작사는 속편보다는 연말에 임박해 원작의감독 확장판을 재개봉하는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1월까지 계속 스크린에 머문 이 영화는 80만 명 가까이 더 극장으로 불러들여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 최초천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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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의 최초개봉 성적(왼쪽)과 확장판 재개봉 성적 비교


2023
년에도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호러 장르의 <황혼 무렵(Waktu Maghrib)>이다. 2 9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 달 만에 200만에 이른 것인데 증가세가 누그러졌지만 아직 대부분 XXI 상영관에서 하루 4회 이상 상영되고 있어 최종적으로는 300만 전후까지 가게 될 듯 보인다. 리뷰를 위해 3 10() 인근 XXI 영화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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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 200만 돌파


위의 표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것들은 호러영화들이다. 2023 3월 현재 흥행상위 15편 중 호러영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러영화의 약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아직 관객수 10만에도 미치지 못한 영화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이 표에는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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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Waktu Maghrib)>
호러영화의 전통적 강자로 조코 안와르 감독을 기용해 <사탄의 숭배자>를 만들며 기염을 토한 라삐필름의 이번 영화 <황혼 무렵(Waktu Maghrib)>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이 영화는 아디(Adi), 사만(Saman), 아유(Ayu) 세 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들은 초등학교 6학년쯤으로 어린 친구들인데 중부자바의 깊은 숲속 자티자자르(Jatijajar)라는 마을에 살면서 숲을 한참 지나야 나오는 학교에 다닌다


그 숲속 어둠에 깃들어 사는 어떤 존재가 예전에도 황혼 무렵 숲에서 놀던 아이들을 공격해 둘이 죽고 한 남자 아이는 손가락을 하나 잃었는데 그 존재는 30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나 또 다시 이 아이들을 노린다.

스포일러를 피해 설명하면 시놉시스는 이 정도로 짧아진다. 사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이 그렇다. 헐리우드 영화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나이트메어> 같은 공포영화들의 시놉시스는 이보다 더 짧을 터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공포영화들이 매력적인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B급 슬래시 영화를 추구하는 데에 비해 훨씬 어린 학생들을 기용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어린이들이 귀신이나 좀비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공포영화들이 적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인도네시아 아역배우들도 만만찮은 연기실력을 보여준다. 특히 아디(Adi) 역의 알리 피크리(Ali Fikri)는 사뭇 인상적이다. 2008년생인 알리는 2015년부터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중엔 호러영화도 꽤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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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피크리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건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 클립에서동명의 유튜브 단편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감독의 말에서도 살짝 엿보이는데 6년 전에 업로드된 10분짜리 단편영화 <Waktu Maghrib>은 어느 도시의 외진 구석에서 황혼 무렵 차량이 고장나 오토바이 택시 고젝(Gojek)을 불러 퇴근하는 젊은 여성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곳을 맴돌며 뒤따라오는 귀신에게 쫓긴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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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단편영화 <Waktu Maghrib> 링크


여담이지만 귀신까지 만나는 위기를 겪고서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 고젝 기사가 주인공 여성손님을 내려주며 다음엔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쿨하게 말하고 떠나는 장면에 웃음이 터졌다.

영화 <황혼 무렵>은 그 무대를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의 배경과 유사한 자바의 깊은 산속 마을로 바꾼 것이다. 물론 스토리도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영화 제목으로 같은 이름을 쓴 이유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또 하나 유사점은 영화 속 공포의 존재가숲속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불길하고 적대적인 어떤 것이란 점이다. <무용수 마을~>에 등장하는 뱀의 진(dzinn)도 그런 존재다

누군가가 죽어서 발생한 원귀나 전설 속 마물의 현신이 아니라 정글 속에 사는, 그러나 인간의 존재 방식과는 호환이 되지 않는, 그래서 그와 마주치는 인간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미지의 존재. <무용수 마을~>의 성공 요인은 그런 존재의 신비함이 한 몫 했는데 <황혼 무렵>도 그 부분을 벤치마킹했다.

그리고 최근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트랜드 하나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대개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준 후 현대에서 벌어지는 메인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공포영화의 일반적인 전개인데 2022년작 <사탄의 숭배자> <이바나> 등에서 그런 것처럼 <황혼 무렵> 메인 스토리의 시대적 배경도 현대가 아니다


정확히 언제라고 나오진 않지만 영화 속 창고의 벽면에 걸쳐진 낡은 현수막에 2000년이란 연도가 박혀 있다. 대략 그 언저리인 2000년대 초반, 즉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 이 영화의현재이고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30년 전은, 그러니까 1970년 전후, 즉 수하르토가 수카르노를 쫓아내고 인도네시아의 권력을 잡던 시기란 얘기다


요즘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은 왜 이런 식의 시점을 잡는 게 트랜드가 된 것일까? 영화 속현재는 왜 우리들의 오늘이 아닐까?

팽팽한 긴장감, 그러나 시나리오의 한계
어린 배우들의 연기가 실감나는 이 영화는 초반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영화들, 특히 호러영화들은 스토리가 억지스럽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곤 하는데 <황혼 무렵> 역시 그런 부분들이 엿보인다. 속편을 계획하고 있어서 다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역시 막판 엔딩이 매우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왜 그존재가 뜬금없이 나타나 마을에 공포감을 조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시작되는 이 사건은 갑자기 닥치는 자연재해와 비슷한데 어쩌면 그런 배경 이야기가 속편을 전개해 나갈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흥미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또 다른 부분은 그 존재의현신빙의. 이건 물론 영적인 귀신을 스크린에 묘사하기 어려우니 이를 배우의 연기로 치환하는 영화적 기법이기도 하지만 CG보다 적당한 특수분장에 투자해 비용을 너무 아낀 것 아닌가 싶은 인상이 강하다. 30년 전에 죽은 여자아이의 장성한 모습으로 현신한 그 존재가 인간계의 학생들을 말로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상상력의 한계를 심하게 드러낸다.

힌두불교 배경을 이름에서부터 강하게 드러내는 싯다르타 따타(Sidharta Tata) 감독은 2015 <성탄절(Natalan)>이란 단편영화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데뷔했는데 2020 <격리생활 이야기(Quarantine Tales)>라는 단편 다섯 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의 에피소드 한 개를 맡아 또 상을 탔지만 이번 <황혼 무렵>이 사실상 그의 첫 장편영화 감독작인 셈이다. 그는 다른 세 명의 작가들과 함께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영화의 완성도를 담보할 만큼 시나리오의 허점을 모두 메우진 못했다.

하지만 200만 명이란 관객수가 시사하듯이 싯다르타 감독의 첫 장편으로는 분명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문화적 배경
가뜩이나 언어도 바하사 인도네시아 표준어가 아닌 자바어가 주종을 이뤄 인도네시아인들도 자막을 봐야 하는데 라삐필름은 영어 자막을 같이 달아주는 센스가 없어 외국인들, 특히 인니어가 서툴어 하루 속히 넷플릭스나 프라임비디오 같은 OTT로 넘어가 한글 자막이 달리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에겐 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감상하는 데에 제약이 있다.

그래도 이 영화에 깔린 문화적 배경을 조금 이해하면 상황은 상당히 호전될 것이다. 귀신이 나타났는데 쟤를 왜 무서워해야 하는지 모르면 공포영화 감상이 제대로 안될 테니 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숲(정글)과 밤(어둠)을 두려워한다.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숲이란 공간적 개념, 밤은 시간적 개념인데 <무용수 마을~>은 인간과 마물의 세계를 마을을 표지석으로 둘러 공간적 경계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에 반해 <황혼 무렵>황혼이란 시간적 경계선을 활용한다. , 똑같은 장소라도 낮엔 인간들이 지배하고 밤엔 미지의 존재들이 지배하는 곳이 된다는 뜻이다.

마그립(maghrib)은 저녁, 황혼을 뜻하는 말로 이슬람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 중 하나다.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선 태양이 완전히 지고 황혼이 찾아오는 시점, 태양을 삼킨 지평선이나 수평선의 선명한 노을을 어스름이 침식하기 시작할 때아잔(adjan)을 스피커 최대 출력으로 내보내며 온동네에 기도 시간을 알린다


<왁뚜 마그립(waktu maghrib)>, 직역하자면 <마그립 기도 시간> <황혼 무렵>으로 번역한 이유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납치 당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어서 그와 관련된 전설이나 동화들이 많은데 당연히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우리의망태 할아버지같은 존재들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관련 전설들은 아마도 산짐승들에게 물려가거나 인신매매 집단에게 아이들이 납치되는 사건들이 속출하면서 생긴 것이라 추정되는데 집에서 학대 받는 아이들을 납치해 대신 귀신으로 키워준다는 웨웨 곰벨(Wewe Gombel), 아이들을 노리개로 삼는 거대한 박쥐할멈 웨웨깔롱(Wewe Kalong),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적 없지만 마그립 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여전히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홀려서 잡아간다는 귀신 산데깔라(Sandekala) 전설이 영화 <황혼 무렵>의 간접적인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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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데깔라웨웨곰벨 등을 다룬 영화와 만화들도 있다.


짐승이나 납치범에 당한 아이들이 귀신이 잡아간 것이라 애써 여기며 비록 존재 방식은 달라졌더라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전설일 것 같다.

황혼 무렵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노는 아이의 뜻은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이슬람 기도시간을 지키지 않아 신의 가르침을 저버린 아이라는 종교적 의미와 결합되어 아이의 실종 또는 그로 인한 파국이 꼭 귀신이나 마지의 존재 탓이 아니라 아이 자신의 방종, 이를 방치한 부모의 잘못 때문이란 의미도 어느 정도 내포한다.

웨웨깔롱의 전설에는 시구루룽(Sigururung)이란 존재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웨웨깔롱에게 잡혀간 아이들로 황혼 무렵 마을의 다른 아이들에게 나타나 다른 곳에서 더 놀자고 유혹한다. 이 영화에서도 시구루룽을 떠올리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자바의 전설과 이슬람 전통을 조금 이해하면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부쩍 올라간다.

맺는 글
영화 리뷰를 하나 쓴다면서 결국 논문 비슷한 딱딱한 글을 쓰는 건 정말 고쳐야 할 버릇이다.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영화만을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관심있는 소수에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겠지 싶은 생각에 시간을 투자해인도네시아 (호러)영화 평론가란 독특한 위치에 스스로를 포지셔닝 해본다^^

<
황혼 무렵>에 대한 내 점수는 60.
나쁘진 않지만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은 큰 기대도 하지 않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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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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