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이슬람 기숙학교 성폭력 문제 다룬 공포영화 <꼬린(Qo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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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기숙학교 성폭력 문제 다룬 공포영화 <꼬린(Qorin)>
배동선 작가
예전엔 꼬린(Korin)이라 하면 무조건
Korea-Indonesia의 줄임말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세워진 한국회사들
이름으로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고 삼성-LG 등 한국 대기업들이 대거 들어오기 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한인 회사였던 꼬린도(Korindo) 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꼬린’은 Qorin으로 표기한다. 철자가 틀리다.
원래의 아랍어 표기는 قرين, 카린(Qarin)으로 읽는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세상을 현혹하는 인간 형태의 악마’라고 설명하며 마치 도플갱어처럼 불러낸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악마가 나타난다.
진 꼬린(Jin Qorin), 즉 악마 꼬린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단어는 천사와
진(악마의 일종)을 모두 가리키는 용어로 ‘인간의 쌍둥이’라고 묘사되며 한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존재들이다. 말하자면 만화에서 오른쪽과 왼쪽 어깨 위에 앉아 끊임없이 뭔가 속삭이는, 우리 얼굴을 닮은 작은 악마와 천사로 묘사되는 존재들인 셈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가르침 속의 꼬린은 무슬림들이 기도를 소홀히 게 만들고, 알꾸란을 읽고
싶은 마음을 게으르게 하며 친구들과 예배에 가거나 선행을 하는 것을 막는 등 궁극적으로 인간을 타락시키고 범죄를 장려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마호멧)를 따라다닌 꼬린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개종했다고 전해지며 영화
속에서도 일단의 꼬린들이 알꾸란을 읽고 알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 꼬린들은
기본적으로 개과천선이 가능한 악마들인 셈이다.
우선 이 정도의 기본지식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꼭 이대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기난띠 로나(Ginanti Rona) 감독 작품이다. 이름만 봐서는 여자임을 눈치채기 어렵지만 사실은 1987년생의 자그마한
여성감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포영화 <다라의 집(Rumah Dara)>, 액션영화 <킬러스(Killers)> 등의 끼모 스땀불 감독, <레이드(Raid)> 시리즈의 액션광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감독
밑에서 상당 기간 조감독으로 영화 현장 실무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런 후 2016년 스릴러 <미드나잇 쇼(Midnight Show)>로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한 후 <끼둘
여왕의 초상화(Lukisan Ratu Kidul)>(2019), <모두 죽어 마땅해(Kalian Pantas Mati)>(2022) 같은 공포영화를 만든 후
<꼬린>을 연출했다.
<꼬린>은 이슬람 기숙학교인 쁘산뜨렌(Pesantren),
그것도 여자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저주와 주술, 빙의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공포영화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교육을 위해 운영되어 마땅한 학교에서 기숙학교 시스템이 가진
폐쇄적인 구조 아래 여학생들이 종교적으로 권력 우위에 있는 교사들, 특히 남성교사들에게 어떻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성적으로 착취당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상황과 심리묘사가 치밀한 것은 여성감독이 가진 강점을
십분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난띠 로나 감독은 아마도 그런 사회성 농후한 테마를 그리고
싶었지만 투자자들의 돈이 들어간 상업영화로서 제작비 회수를 하는 것 역시 감독의 책임이니 그런 무거운 테마를 접근성 좋고 진입 장벽이 낮은 공포영화
프레임 속에 담은 것이라 이해된다.
실제로 <꼬린>은 130만 명 넘는 관객이 들면서 2022년 로컬영화 중 흥행순위 12위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175만 명이 들어 10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판 콘스탄틴
<코드랏(Qodrat)>보다 <꼬린>이 백 배는 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코드랏>엔 <7번방의 선물>을 비롯해 많은 영화의 주연을 했던 피노 바스티안(Vino G.
Bastian)의 높은 네임밸류가 관객들을 어필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다 욕을 했을 것 같다.
나도 이 영화를 나중에 OTT에서 찾아보았지만 따로 시간을 내 리뷰를 쓸 만한 가치를 찾지
못했다.
영화는 쁘산트렌에 율란다(Yolanda)라는 털털한 불량학생 분위기의 여학생이 전학오면서
시작된다. 매사에 냉소적이면서도 적극적인 그녀는 반장이자 모범생 자흐라(Zahra), 지지(Jiji)라는 고양이를 가족처럼 끔찍이 아끼는
겐디스(Gendhis), 기숙학교 밖의 다소 폭력적인 애인을 잊지 못한 이차(Icha) 등 세 명의 룸메이트들과 교류하면서 학교에 이상한 기류가 감도는 것을 감지하고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이슬람 교사인 자엘라니(Jaelani)가 우스탓(Ustad)이란 교사 신분을 이용해 여학생들 상당수를 가스라이팅하고 심지어 습관적으로 겁탈한 것을 알게 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엘라니는 아직 종교적으로 방어능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진 꼬린을 소환하는 강령술을 강요해
악령의 빙의를 겪는 학생들도 발생한다. 이는 흑마술에 심취한 자엘라니가 악령을 통해 쁘산트렌과 여학생들의
육체와 영혼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이 사태를 바로잡을 능력을 가진 쁘란스렌의 무스타파 교장은 이미 살해되었고 욜란다의 룸메이트 중 자흐라와 이차가 이미 겁탈당한
상태. 여기에 강요된 강령술을 행한 학생들도 자신을 닮은 모습을 한 악마 꼬린에게 속속 사로잡히게 된다.
결국 학생들을 지배하려는 우스탓 자엘라니와 쁘산트렌을 탈출하려는 학생들과 여교사들의 대결이 필연적으로 벌어지는데 존경받는 이슬람 교사 우스탓이 사실은 악마를 숭배하는 흑마술사이고 연약하고 늘 주저하기만 하던 여인들이 신앙심으로 힘을 합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최근 계속 터져나오는 쁘산트렌 우스탓들이 복수의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검거된 사건들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작년 초에는 여학생 13명을 강간하여 일부는 임신, 출산까지 시킨 후 검거되어 이후 재판에서 사형선고가 확정된 반둥 소재 쁘산트렌 교사 사건이 있었고, 2023년 4월에는 중부자바 바땅 지역에서 역시 또 다른 쁘산트렌 교사가 여학생 22명을 겁탈하고 성추행한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세상과 단절된 이슬람 기숙학교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 남성교사 우스탓이 여학생들을 가스라이팅하여 지배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도 흔한 일인 듯하다.
바땅 쁘산트렌 사건의 범인은 스스로 이슬람 큰 선생인 끼아이(Kiai)를 자처하며 아침부터
여학생을 교내의 인적 없는 곳으로 데려가 카로마(Karomah), 즉 깊은 신앙심으로 신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만 겪는 신비한 경험을 갖게 해주겠다며 속여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성폭행에 앞서 마치 중요한 의식인
것처럼 이잡 까불(ijab Kabul) 즉 정식 부부가 되는 서약식 같은 것을 하면서 자신이 범하는
성범죄를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포장했고 순진한 여학생들은 원치 않았지만 권위에 짓눌려 저항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수 천 개의 쁘산트렌들이 있고 거기서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미성년자 대상 신성모독적 성범죄는 이미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기난띠
로나 감독은 사실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쁘산트렌의 구조와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왜 그런 성범죄가 빈발하는지 여학생들이 처한 환경과 심리상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유용한 창문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꼬린>은 기본적으로 자흐라 역의 줄파 마하라니(Zulfa Maharani), 욜란다 역의 아그니니 하끄(Aghniny
Haque), 우스탓 자엘라니 역의 오마르 다니엘(Omar Daniel) 세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1999년생 줄파 마하라니는 2014년 영화에 데뷔했는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줄곧 로컬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한 <딜란(Dilan)> 시리즈 3부작에 ‘라니’ 역으로 출연하면서 주연급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1995년생 오마르 다니엘은 외모에서 풍기는 것처럼 아랍, 네덜란드, 자바의 피가 섞인 혼혈로 큰 눈과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다. 2016년부터 다양한 TV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영화에는 2021년에야 데뷔했다. 잘생긴 외모는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에 최적화되었으므로 <꼬린>과 거의 같은 시기인 2022년 12월에 개봉한 <마왕을 위한 제물(Tumbal Kanjeng Iblis)>이 그의 첫 호러영화 출연이었다.
방글라데시 혼혈 배우 겸 가수인 1997년생 아그니니 하끄는 과거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로 세계 6위까지 오른 전력이 있다. 손발이 길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녀에겐 2022년이 어쩌면 최고의 한 해였을 것 같다.
태권도 실력을 바탕으로 2018년 코디미 무협사극 <위로사블렝(Wiro Sableng)>의 여전사로 영화계에 처음 데뷔한 그녀는 2022년에 폭망한 수퍼히어로물 <사뜨리아 데와: 가똣까차>에 출연한 흑역사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 235만 관객의 범죄스릴러 <라덴살레 절도작전(Mencuri Raden Saleh)>, 그리고 <꼬린>에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흥행상위 15개 영화 중 3개를 아우른 것이다. 그녀의 연기력과 티켓파워가 증명된 셈이다.
<꼬린>이 공포영화로 분류되고 말았지만 사실은 쁘산트렌 여학생들이 가스라이팅과 성폭행에 얼마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 고발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가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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