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 확장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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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 마을의 대학생 봉사활동> 확장판 리뷰
배동선 작가
프라임비디오에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가 올라와 있어 다시 한번 시간을 내 보았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근 1년 만의 일이다.
2022년 4월에 개봉한 이 영화가 두 달가량 상영하며
920만 관객을 모은 후 그해 12월 말에 감독판 또는 확장판이란 것을 다시 극장 스크린에
올려 천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프라임비디오에 오른 것이 그 확장판이었다. 기억에 없던 장면들이 중간중간에
끼어 있었다.
하지만 확장판을 선전하던 당시 본편 미포함 영상이 20분 가까이 추가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그건 대략 사기 비슷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좀 씁쓸했다. 물론 당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그게 단지
상술에 불과한 술수였음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세우디노> 선전영상
마지막에 쿠키 영상처럼 달린 10분 전후의 영상은 올해 4월
개봉한 호러영화 <세우디노(Sewu Dino)>의
시작 부분이다. 즉 전혀 다른 영화의 홍보 영상이었던 셈이다.
▲세우디노 포스터
해당 쿠키 영상을 보면서 당초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 속편을 2022년 12월에
내려다가 그 대신 확장판을 내기로 한 배경이 무엇인지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MD 픽쳐스는 당초 <세우디노>를 <무용수마을~>의 속편 형식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닿지 않자 <세우디노> 대신 전편의 확장판을 내기로 한 것이라 보인다. 그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물론, <무용수마을~>의 속편이 별도로
있어 그걸 만들려 하다가 여의치 않자 <세우디노>로
방향을 틀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속편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시 MD 픽쳐스는 처음부터 <세우디노>를 대충 <무용수마을~>의
속편이라고 퉁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세우디노>가 480만 명의 관객이 든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영화 자체가
크게 나쁘지도 않았지만 해당 쿠키영상을 보았거나 전해들은 이들이 <세우디노>를 <무용수마을~>의
속편이라 생각하며 큰 기대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편으로서 응당 7백만 관객 전후까지 갈 거라 생각했던 예측에는
크게 못미쳤다. 그건 <세우디노>의 분위기나 배경이 <무용수마을~>의 세계관을 차용한 듯 연상작용을 일으킨 점이 있지만 스토리 자체의 연관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 보인다. 그래도 480만 관객은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에서 대성공에 속하는 수치다.
클리셰 깨기
비단 <무용수마을~>뿐 아니라 많은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이 ‘숲속 주민’들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 속 초반에 등장하는 거대한
어금니를 가진 털복숭이 괴물 건드루어(Genderuwo)나 무용수 다우(Dawuh)의 모습을 한 뱀의 진도 숲속 주민 중 하나다.
사실 많은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은 숲을 배경으로 한다. <세우디노>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1편, <흑마술여왕(Ratu Ilmu
HItam)>, <이바나(Ivanna)> 같은 영화에는 숲속 외딴 가옥이
주 무대가 되고 올해 초 2백만 명 넘는 관객이 든 <황혼
무렵(Waktu Maghrib)>, 2019년 인도네시아 영화제 작품상에 빛나는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 등에서는 <무용수마을~>같은 숲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 배경이
된다. 숲의 존재 자체가 귀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개연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대개 하나의 악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귀신영화들과 달리 복수의 전혀 다른 성격의 귀신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 간의 역학관계를 그린 점에 있다. 앞서 설명한 건드루어의 존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히잡을 쓴 무슬림 여대생 누르(Nur)를 늘 따라다니는 수호령의 존재다.
무슬림들은 신이 보낸 천사가 무슬림들 개개인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숄랏, 즉 이슬람식 기도를 할 때면 기도 말미에 오른쪽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것은 기도할 때 천사들이 좌우에
좌정하고 앉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동작을 하는 숄랏 장면이 이 영화 속에도 나온다. 하지만 누르에게는 광명의 천사 대신 험상궂은 얼굴을 한 할머니의 영이 붙어 다닌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손녀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손녀를 해치려 하는 잡귀들에겐 한없이 냉혹하게 묘사된다.
영화 말미의 이슬람 선생 끼야이(Kyai)가 말하길 그 할머니의 이름은 바독(mbah Dok)이라 하며 누르의 오른쪽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느낄 때는 수호령인 할머니가 손녀를 지키기 위해
악령과 싸우고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중부자바인 만큼 이슬람과 토착신앙이 어우러진 ‘이슬람 끄자웬(Islam Kejawen)’의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두꾼의 등장도 자연스럽다. 작년에 쓴 리뷰에서도 이 영화에서 두꾼 바 부윳(mbah buyut)을 연기한 디딩 보넹(Diding Boneng)의
신뢰감 넘치는 연기를 호평한 바 있는데 호칭 자체가 매우 두꾼스럽다. 바(Mbah)란 우리로 치면 도사, 도인 등 무당을 부르는 경칭이고 부윳이란
외가쪽 증조할아버지, 즉 매우 나이 많은 어르신을 뜻한다.
대개의 영화 속 두꾼들이 약간 정신이 나간 듯 신기(神氣)를 보이며 음흉한 표정으로 음산한 장소에서 신성모독적 행동을 하는데 제물을 바치고 점을 치거나 귀신을 부르고
때로는 귀신들을 부리거나 물리치기도 한다. 심지어 올해 초에 개봉한
<기적의 아기(Bayi Ajaib)>란 영화에서는 두꾼이 원숭이의 뇌를 파먹기도
한다. 이 영화는 <악령의 얼굴을 한 아이>라는 한글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기적의
아기(Bayi Ajaib)>에 등장하는 악한 두꾼 도르만(Dorman)
하지만 <무용수마을~>의 바부윳은
어딘가 코믹하면서도 중후하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면서도 어쩌면 사람이 아닌 듯 신비로운 면모도 보인다. 특히
경계를 넘어 ‘따빡 낄라스(Tapak Kilas)라 부르는
숲속 주민들의 세계에 고립된 여주인공 중 한 명 위디아를 구하기 위해 큰 개로 변신해 달려가는 장면은 사뭇 신선했고, 그래서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경계선
숲속 마을과 그 바깥 마물들의 세계 사이에 경계선이 있듯 도시 사람들과 숲속 마을 사람들 사이에도 심리적, 종교적 경계선이 있다.
마을의 경계선에는 사람들이 신으로 모시는 숲속 마물들에게 올리는 사젠(sajen)이란 이름의
공물들이 놓인다. 그것을 묻는 도시 대학생들에게 마을 촌장은 마을에선 아직도 ‘전통적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영화 속 도시 출신 무슬림 대학생들은 물론 이 영화를 보는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관객 대부분에게 경계선
밖 따빡 낄라스는 물론 숲 속 마을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인 셈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따빡 낄라스에는 예전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이 적지 않은데 숲속 존재들을 위해 사람들이 가믈란을
연주하며 무용공연을 했던 무대가 남아 있다.
숲속 마을 사람들은 귀신들에게 공물도 바치고 음악과 무용까지 바쳤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아 결국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래서 마을 무덤엔 10살이 채 되지 않아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
그리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무덤마다 검은 천이 둘러져 있다. 그런 관행을 일삼은 결과 마을은 젊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노인들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즉, 이 영화
속 배경이 된 마을은 소멸되는 과정에 놓여 있던 곳이다.
그런 곳에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KKN)을 와 쓰이다가 물이 말라버린 마을의 수원지를 수리하는 작업을 한 것은 사실 부질없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 리뷰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프라임비디오에 아직 한국어 자막은 없고 인니어와 영어 자막만 있으므로 자막 읽는
속도가 느린 사람들에게는 조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무용수마을~>의 속편
MD 픽쳐스 측은 이 영화의 속편을 언급했으나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인 ‘@심플만’이란 필명의 작가 소설 자체가 속편이 없어 당장은 제작이 되기 어렵고 더욱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속편을 만든다면 그것은 정말 허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세우디노> 역시 @심플만 작가의 원작이란 점에서 MD 픽쳐스가 말한 속편이란 <세우디노>를 얘기했던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럼 올해 크게 기대했던 영화 한 편이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네ㅠㅠ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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