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전기영화 <부야함카 1부(Buya Hamka Vol.1)>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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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영화 <부야함카 1부(Buya Hamka Vol.1)> 후기
배동선 작가
▲<부야함카> 포스터와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한글 완역판
내가 ‘함카’라는 인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19~2020년쯤의 일이다.
당시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동남아시아 문화전집을 내는데 인도네시아편의 의뢰를 받아 함카
작품인 <판데르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n Van Der Wijck)>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은 그의 또 다른 소설 ‘카바의
보호 아래(Di Bawah Lingdungan Ka’bah)’와 함께 함카가 1930년대 수마트라 메단에서 ‘민중의 나침반(Pedoman Masyarakat)’이란 신문사를 운영하던 시절에 쓴 대표작이다. 내가 번역본을 탈고해 한국에 보낸 것이 2020년 5월쯤이었으므로 당연히 그해 안에 책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인도네시아 굴지의 영화사 팔콘픽쳐스(Falcon Pictures)에서 <딜란(Dilan)> 3부작을 연속 히트시켜 3년 내리 로컬영화 흥행순위 1위를 지켰던 파자르 부스토미(Fajar Bustomi) 감독이 함카 전기영화를 찍었다는 보도를 본 것이 그해 9월이었다. 영화를 다 찍고 당시 상영 준비 중이라 하였으므로 인도네시아에서
그의 영화가 상영될 때 한국에서도 그 즈음에 맞춰 그의 작품이 책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며 맹위를 떨치던 시절.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가
창궐하자 대부분의 상영관들이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문을 닫아야 했으므로 영화 <부야함카>의 상영은 기약도 없이 뒤로 밀렸다.
더욱이 영화제작발표가 나오기 며칠 전 영화에서 함카의 오랜 친구 ‘사트리아’ 배역으로 출연했던 아데 피르만 하킴(Ade Firman Hakim) 배우가 코로나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천식과 폐렴으로 사망했으나 코로나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코로나로 사망하면 사후 시신수습과 매장절차가 너무나 성급하고 비인간적으로 진행되어 코로나가 사인임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한국어 번역본 역시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2022년 1월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영화 <부야 함카>는 그보다 1년도 더 늦은 2023년 4월이 되어서야 스크린에 걸렸다. 세상엔 사람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함카
함카의 본명은 압둘 말릭 까림 암룰라(Abdul Malik Karim Amrullah)다. 함카는 그의 이름 앞에 메카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붙이는 칭호인 하지(Haji)를 붙이고 그 이니셜을 모아 H.A.M.K.Amrullah라고 표기한 것이 이후 함카(Hamka)로 굳어진 것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부야(Buya)란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로 연세나 직위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어르신, 아버님 정도로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영화를 이야기하려는 글에서 이미 사설이 길었지만 전기영화인 만큼 함카라는 인물을 먼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1908년 수마트라 딴중라야(Tanjuing Raya)에서 태어난 그는 타왈립(Thawalib)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불과 16세가 되던 1924년 자바에서 1년, 이후 메카에서 7개월을 지내며 아랍어와 이슬람 역사를 공부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동시에 델리의 종교학교 선생으로 일하며 성직자와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남부 술라웨시의 마카사르에서도 4년 여를 보내며 지금은 나들라툴울라마(NU)와 어깨를 견주는 전국단위 이슬람단체 무함마디야 활동확장에 열을 올렸고 1936년 메단에 돌아와 ‘민중의 나침반’이란 신문을 운영했다. 당시 대중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낸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을 쓴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인도네시아가 식민 종주국으로 복귀하려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하자 함카는 게릴라전에 투신해 서부 자카르타의 산악과 정글을 누볐고 인도네시아가 주권을 회복한 후에는 1950년 잠시 자카르타에서 수카르노 정부의 종교부에서 일하지만 곧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55년 총선을 통해 함카는 마슈미당을 대변하는 헌정위원으로 선출되지만 마슈미 당은 수카르노가 내세운 공산주의와 교도민주주의 이념과 정치색이 너무 달라 정권과 대립하다가 1959년 7월 5일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이후 함카는 <민중의 깃발 (Panji Masyarakat)>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지만 필화를 겪으며 곧 폐간당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권의 핍박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함카와 그의 작품들은 좌익문학단체인 레크라(Lekra: Lembaga Kebudayaan Rakyat 민중문화위원회)의 전방위적 공격을 받았고 급기야 국가전복행위 혐의로 1964년에
수카부미 자택에 연금되었다. 그는 거기서 <알-아자르의 해석(Tafsir Al-Azhar)>의 집필을 완료했다. 그후 1965년 수카르노의
9,30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후인 1966년이 되어서야 연금에서 풀려났다.
수하르토의 신질서 시대에 그는 아궁 알-아자르 사원과
RRI(인도네시아 국영라디오), TVRI(인도네시아 국영
TV)에서 설교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는 1975년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의원회(MUI)의
수장으로 선출되었고 6년 후인 1981년 5월 19일 그 직을 내려놓은 후 그해 7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자카르타 따나꾸시르 공동묘지에 묻혔다.
영화 속으로
<부야함카>가 극장에 걸린 것은 2023년 4월의 일이지만 난 8월 중순 넷플릭스를 통해 비로소 이 영화를 접했다. 상영 당시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나 내가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은 이유는 원래 로컬영화의 극장 관람 기준으로 정했던 200만 관객에 한참 미치지 못했거니와 내 취향이 원래 호러영화 쪽이기 때문이었으니…. 일단 반성한다.
<부야함카>는 130만 명 가까운 관객이 들어 8월 기준 흥행순위 5위를 달리고 있다. 작년에 비해 대형 흥행작이 잘 나오지 않는 올해의 전반적 추세를 보면 연말까지도 10위권 안에 머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초반에 함카의 노년과 청년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전체적으로는 인도네시아가 독립선언을 한 후 네덜란드의 재침공이 시작되는 1945년까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제가 <Buya Hamka Vol,1>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후속편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 3부작으로 기획되어 있는데 이미 만들어 두었을 2부와 3부가 언제 나올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영화는 함카가 수감되어 있던 1964년경에서 시작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마카사르에서 생활하던 1930년대의 20대 중반부터 인도네시아가 해방되던 1945년 그의 30대 중반까지를 다룬다. 주인공을 맡은 피노 G 바스티안(Vino G Bastian)이 1982년생으로 영화를 찍을 당시 30대 후반이었으니 20대 연기는 좀 무리였지만 함카가 그 나이에 이미 무함마디야에서 요직을 맡아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니 배우의 중후한 연기가 오히려 설득력을 낳은 경우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독립전쟁 당시 공화국군 총사령관 수디르만 장군, 여성교육의 선구자 까르티니(Kartini) 등의 전기영화들이 나왔지만 3부작까지 나온 전기영화는 하비비 전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그린 <하비비와 아이눈(Habibie & Aninun)>밖에 없다.
<하비비와 아이눈>은 첫 영화가 2012년에 나온 후 2부가 2016년, 3부가 2019년에 나왔고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3편의 경우는 영화가 상영되기 몇 개월 전에 하비비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224만 명이 극장에 들어 그해 로컬영화들 중 흥행성적 5위에 올랐다.
<부야함카>는 <하비비와 아이눈> 트리올로지를 벤치마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비비와 아이눈>의 1부와 2부 사이 4년의
공백은 첫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후속작을 찍을 계획이 없었음을 뜻하는데 <부야함카>의 경우엔 1부 후반부에 2부와 3부 소개영상이 포함되어 있어 촬영이 전부 끝났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미 촬영된 필름을 세 편의 영화로 어떻게 나누어 편집하느냐에 완성도와 성패가 갈리게 되는데 <부야함카 1부>는 시대를 섞어 모자이크 식으로 편집하기보다는 대체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갔다.
하지만 위에 이미 설명한 함카의 일생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하지(Haji) 호칭을 받게 되는 메카 순례 등 이전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고 게릴라전에 투신하고 정치에 입문해 공산당과 싸우다 투옥되는 등 성직자이자 정치가로서 살았던 이야기도 남아 있어 이를 어떻게 편집해 진행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 이렇게 세 편으로 나누어야 할 정도였나 생각하게 한다. 함카의 삶이
세 편에 담을 만큼의 가치가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속도감 있게 편집한다면 1부의 러닝타임 106분에 모두 담지 못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 러닝타임을 늘리면 모두 포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재료비는 이미 다 들어갔으니 빵 한 개를 세 개로 만들어 파는 게 당연히 이익이란 계산일까?
부역에 대하여
1942년 태평양전쟁 중 일본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당시의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던 시기,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다시 네덜란드가 돌아오기 직전의 공백기에 현지 지식인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수백 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서양의 식민주의자들을 몰아낸 것은 일본제국 군대였는데 그들의 수탈과 압제는 네덜란드를 능히 능가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던 많은 지사들이 일본을 통해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제국주의에
부역했다.
일본은 일본대로 현지인들을 동원하고 이용하기 위해 현지 유력인사들을 회유했다. 함카도 그
시기에 그런 상황을 맞았다. 그들의 취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제국군을
도와 동포를 로무샤(강제징용)와 종군위안부로 내모는 일에도
동원되었다.
이 영화는 함카의 그런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 변명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 맞서 싸우려
했고 민족과 이슬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으나 결국 역시 민족과 이슬람을 위해 일본에 어쩔 수 없이 부역했노라고.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었다고 짚고 넘어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같은 서사가 수카르노의 전기영화 <수카르노(Sokarno)>(2013)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는 민족을 위해 일본군에 부역했고 일본천황으로부터 훈장도 받았지만 수많은 동포를
로뮤샤와 종군위안부로 내몬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했거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함카
역시 수카르노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당시의 시대상과 턱 밑에 들어온 압제자들의 총칼을 감안하면 후세의 우리가 너희들도 목숨을 걸었어야 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공화국 1대 총리 수탄 샤리르, 2대
총리 아미르 샤리푸딘 같은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과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총칼을 들고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들의 존재가 일본이 패망한 후 수카르노와 함카 같이 일본에 부역했던 민족지도자, 종교지도자들을
더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감독과 배우
이 영화를 만든 파자르 부스토미 감독은 <딜란>
3부작이 크게 흥행하고 그 다음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마리포사(Mariposa)>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으며 스크린에서 내려오는 불운을 겪지만 아무튼 인도네시아
멜로 영화의 대가라 불리기 손색이 없다. <부야함카>는
그가 처음으로 만든 전기영화다.
함카 역을 맡은 주연 피노 G 바스티안은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전성기 시절의 안성기
배우를 떠올리게 한다. 인상도 그렇고 그가 소화하는 배역들도 그렇다.
2004년에 데뷔해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연기의 스펙트럼이 대단하다. <부야함카>에서는 작가이자 성직자, 정치가로 분했고 2022년 <7번방의 선물>
리메이크에서는 정신지체 주인공 류승범 역, 인도네시아판 콘스탄틴이 <코드랏(Qodrat)>에서는 이슬람 퇴마사, <과속스캔들> 리메이크인 <스캔들 메이커>에서는 차태현 역을 맡았다.
나가는 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함카의 인생을 어느 정도 숙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그 외에도 이슬람 용어들을 알아 두는 것도 유용하다. 함카가 성직자 우스탓이고 독실한 이슬람 신앙을 바닥에 깔고 있으므로 인샬라(신의 뜻대로), 알함두릴라(신께 찬양을), 아샬라무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같은 이슬람 용어를 일부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문화의 이해를 위해 한 번쯤 봐둘 만한 영화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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