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영화 <칸잡(Khanzab)>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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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7일(일) 프라임비디오에 올라온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칸잡(Khanzab)>은 116만 명의 관객이 들어 8월말 기준 로컬영화 흥행순위 6위를 달리고 있다.
흥행순위 상위 15편 중 11편이 호러영화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영화팬들의 편식이 좀 심한 편인데 그만큼 많은 호러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함량 미달의 호러영화들이 우글거린다. 1,2위를 달리는 <세우디노(Sewu Dino)>와 <황혼 무렵(Waktu Maghrib)>의 시나리오 전개는
괜찮은 편이지만 <칸잡>의 경우는 실망스럽다. 던져 놓은 떡밥들을 다 회수하지 못했다.
시놉시스
주인공 라하유(Rahayu)의 아버지는 꽤 능력있는 두꾼,
즉 귀신을 부리는 무당이다. 기본적으로 산뗏(Santet)
저주를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지만 그 방법은 주술로 귀신을 부려 상대편 귀신을 물리치는 식이다.
그 결과 한번은 유력한 재력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 대가로 값나가는 부동산을 비롯해 재산과 명성을 얻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가 1998년 5월 국가적으로 혼란스럽던
시절 그들이 살던 반유왕이에서 수많은 두꾼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라하유의 아버지도 괴한에게 목이 잘린다.
살아남은 라하유는 어머니 누닝(Nuning)과 함께 고향인 족자의 제티스(Jetis)로 이사하지만 두꾼의 가족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인근에서 불가해한 사고가 벌어지면 라하휴 모자가 부당하게
그 책임을 뒤집어쓰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8년 5월의 피바람의 여파가 아직도 선명하던
2000년의 어느 날이다.
아버지가 부렸던 악령이 라하유에게 빙의하여 그들을 괴롭히던 사람, 손해를 입힌 이들을 공격한다. 문제는 거기 그치지 않고 어머니와 동생을 공격하고 심지어 그녀를 돕던 주변 사람들마저 해친다. 일단 스토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그런데 제목이 무슬림들의 기도인 ‘숄랏’을 방해하는 <칸잡>인 것처럼 이 영화에는 작은 기도소인 무숄라(Musholla)에서 등장인물들이 혼자 기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도하는 사람의 등 뒤로 귀신들, 즉 칸잡들이 나타난다.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수 있는 스토리와 아이디어인데 연출은 그 디테일을 살리지 못했다. 심지어 이 사단을
일으켰던 가장 나쁜 놈은 다른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다 죽는 와중에서도 끝내 살아남는데 혹시 감독이 그 인물의 뒷처리를 까먹은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는 초반부터 많은 복선이 깔리지만 그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다 풀리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0% 이상이 무슬림인 환경에서 숄랏 중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꽤
호응을 받는 편이다. 낮에 기도를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새벽과 해질녘에 드리는 기도도 있고,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단체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골방에서 혼자 기도 드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기도 말미에 좌우를 돌아보며 자신의 등 뒤 양쪽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부분도 있다.
혼자 기도하다가 좌우를 돌아볼 때 거기에 천사 대신 끔찍한 귀신이 노려보고 있다면 얼마나 소름 끼칠까? 그런 장면들이 <사탄의 숭배자 2: 커뮤니언>, <막뭄>
1, 2편, <코린> 등 많은 영화에
등장한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이 무슬림들의 암묵적 공감대를 건드리기 때문에 의외로 상당한 호응을 불러
일으키고 그게 관객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116만 명이 그 한계였다. 난삽한
스토리가 결국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개연성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역사적 배경
앞서 언급한 반유왕이에서 흑마술사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자카르타
폭동이 터지고 수하르토 대통령이 34년의 철권 통치 끝에 하야하던
1998년 5월부터 1999년까지 동부자바에서
검은 옷에 마스크를 쓴 일단의 사람들이 주로 두꾼들을 공격해 목을 베거나 배를 갈라 살해한 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닌자’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사회혼란을 노린 어떤 세력의 잘 훈련된 특수부대 같은 느낌이었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 자료에 따르면 당시 반유왕이에서만 194명이 그런 식으로 닌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의 범인이나
배경 등 진상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 속 라하유의 아버지 역시 그 시기에 목숨을 잃은 흑마술사
중 한 명으로 묘사된다.
한편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속 두꾼들은 대개 산뗏 저주술을 시전하는 악랄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라하유의 아버지 스메디(Semedi)는 병을 고치는 주술사의 성격이 강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저주술을 사용하는 흑마술사에 비해 이를 막고 치유하는 쪽인 백마술사에 가깝다. 그러니까 귀신을 쓰긴
하지만 아주 나쁜 놈은 아니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슬람 분위기를 강력하게 띄고 있는 이 영화에서는 그런 스메디 역시 신성모독을 저지른 죄인이며 스메디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가혹한 운명 속에서 그 대가를 치른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저주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라하유의 어머니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숨빠뽀쫑(Sumpah Pocong)”이라는 의식이다. ‘뽀쫑의 맹세’ 또는 ‘뽀쫑
상태로 하는 맹세’라는 뜻이다.
뽀쫑이란 이슬람 장례규범에 따라 시신을 흰 천으로 감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6-7군데를 묶어 염습한 상태를 말한다. 무슬림에게는 죽음이 가장 시각화된 상태라 하겠다.
숨빠뽀쫑, 즉 뽀쫑의 맹세는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거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어떤 사실을 강변하기 위해 취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스스로 뽀쫑으로 염습된 상태에서 증언하는 것이다. 거짓을 말하면 신의 노여움을 사 당장 죽게 될 것이라는 맹세도 뒤따른다.
거짓을 말하면 그 자리에서 죽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살 것이라는 게 숨빠뽀쫑의 기본 개념인데, 사실은 그걸 하겠다는 사람도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 숨빠뽀쫑 증언의 신빙성은 사실 그리 높은 편이 아닐 듯하다.
감독과 배우
이 영화를 만든 1980년생 앙기 움바라(Anggy Umbara) 감독은 24살이 되던 2004년에 감독에 데뷔하여 2014<코믹 8(Comic 8)>이란 유쾌한 액션코미디 3부작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16년에 <와르꼽 DKI의 부활: 귀뚜라미 대장 1부(Warkop DKI Reborn: Jangkrik Boss! Part 1)>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흥행감독의 반열의 올랐다.
하지만 늘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8년 <수잔나는 무덤 속에서 숨쉰다(Suzzanna: Bernafas Dalam Kubur)>, 2020년 <참아! 이건 시험이야(Sabar Ini Ujian) 등 주목받을 만한 영화들이 있지만 지나치다 싶게 많이 만든 영화들 상당수가 성공하지 못했다.
여주인공 라하유 역의 야사민 자셈(Yasamin Jasem)은 2004년생으로 다섯 살때부터 TV 드라마에 아역을 출연했고 영화에는 2019년 <쯔마라 가족(Keluarga Cemara)>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누닝 역의 띠카 브라파니(Tika Bravani)는 1990년생으로 라하유의 엄마로 나오기엔 너무 젊어 설득력이 좀 떨어졌다. 2013년 영화 <수카르노>에서 수카르노의 어린 세 번째 부인 파트마와티로 출연했는데 역 비중이 큰 편이 아니었고 그 전후의 10여편의 영화에서도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물설정이 입체적이지 못했다. 인물설정이 납득되지 않으면 감정이입을 할 수 없고 결국 영화를 보면서 내내 왜들 저럴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욕은 감독이 먹어야 한다.
▲왼쪽부터 앙기 움바라 감독, 야사민 자셈, 띠카 브라파니
숄랏을 할 때 귀신이 나오는 장면이 무슬림들에게는 얼마나 공포스럽고 짜릿한지 몰라도, 그래서
난 외국인이라 그런지 몰라고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마이 뭇다 아이가.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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