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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코로나 폭발과 함께 찾아온 이둘피트리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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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44회 작성일 202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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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폭발과 함께 찾아온 이둘피트리 명절
 
배동선/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중세로부터 천문학이 크게 발달한 이슬람권은 요즘도 라마단 금식월의 시작과 그 종료를 기념하는 이둘피트리 축제의 서막을 천문관측으로 연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히삽(hisab) 방식과 달의 물리적 움직임을 직접 관측하는 루캿(Rukyat) 방식을 함께 사용해 가끔은 반나절 내지 하루 정도 차이지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인도네시아 전역에 80개 천문관측소를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종교부와 주요 이슬람단체들은 다행히 올해 이둘피트리가 5월 24일(일) 시작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13세기경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처음 도래한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진 이둘피트리의 전통은 아침 일찍부터 선조들과 성인들의 묘지를 참배하는 지아라(ziarah)와, 부모와 친지를 찾아 고향으로 떠나는 대규모 귀성 무딕(mudik)으로 대변된다. 그때 모두 새 옷을 입고 선물을 들고 나서기 때문에 금식월 끝물엔 몰과 재래시장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올해 이런 전통이 정부의 제재와 국가적 우려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3월 2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3월 중순 국가보건 긴급사태가 발표되고 4월 10일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대규모 사회적 규제조치(PSBB)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등 방역강도가 크게 높아진 상태다. 감염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4월 초 항만과 공항에 사실상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같은 달 21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직접 전국민의 무딕 금지를 발표했다. 그것은 사실상 전국적 이동제한명령으로 3월 중순 이후 해고되거나 무급휴가자로 밀려나 생계가 끊긴 수백만 명이 이둘피트리 전 일찌감치 귀성하려다가 발목을 잡혔다. 허가없이 수도권 경계를 넘으려던 차량들을 대대적 단속을 펴고 있는 경찰들이 가차없이 돌려세웠고 덩달아 공장 자재트럭들과 지방에서 수도권 생산공장으로 출퇴근하는 한국인 관리자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
 

소셜미디에에 돌고 있는 인니인들의 자조 섞인 그래프. 맨 위는 코로나를 거의
극복한 국가로 말레이시아, 이태리, 독일을,
가운데줄은 이미 코로나를 극복한 나라로 태국, 한국, 홍콩을 꼽으면서
인도네시아는 미국, 싱가포르와 함께 위기절정에 있고 그나마 그래프로
표시하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라는 정서를 반영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누적확진자 수치를 보면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치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브라질 등 대규모 감염국가들에 가려졌지만 인도네시아도 가파른 감염증가추세를 보여 5월 초에 한국 누적감염자 수치를 넘어섰고 지난 21일엔 2만 명 선도 넘었다. 문제는 줄곧 하루 300~400명 대에 머물던 신규확진자 숫자가 5월 중순부터 500~600명 선으로 증가하더니 20일 이후부터는 630~970명 선으로 폭발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늘 8.6% 전후였던 치명률이 현재 6.2% 선으로 낮아진 것은 중증환자 외에도 좀 더 광범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PCR 검사가 이루어진다는 반증이고 실제로 최근 귀국한 인도네시아 해외노동자들이 코로나 격리병동으로 개조된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에 대거 격리되어 전수검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지 방역당국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수치다
 
그런 상황에서 당초 한 차례 연장되어 5월 22일까지였던 자카르타의 PSBB는 6월 4일까지 2주 더 연장되어 학교와 기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지역간 이동제한 조치도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정부도, 인도네시아 국민들도 한계에 다다른 것은 매한가지다. 마치 세상이 종말이라도 맞은 것처럼 인적이 뜸하던 자카르타 도로들이 라마단 금식월을 절반쯤 지나면서 다시 붐비기 시작했고 5월 14일엔 이동금지 와중에도 놀라운 수완을 발휘해 비행기 티켓과 이동허가를 얻은 이들이 자카르타의 관문인 수카르노-하타 공항 터미널이 터져 나가도록 장사진을 이뤘다.
 
일부 시민들은 오직 포장판매만 허락된 식당 뒷편에 몰래 자리잡아 지인들과 함께 금식 후 첫 저녁식사를 하는 부까뿌아사(Bika Puasa)의 전통을 끝내 지키려 하고, 예전 최신식 백화점이었으나 시대에 밀려 구식이 되어버린 탐린 거리의 유서 깊은 사리나 백화점 맥도널드 본점이 29년만에 폐점하게 되자 그곳에 추억을 가진 수많은 인파가 밤늦게 모여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사리나 백화점은 전통적 핫스팟으로 몇 년 전엔 테러집단이 그 앞 도로에서 폭탄을 터뜨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가장 분명한 실망감을 드러낸 집단은 코로나와 싸우고 있던 의료진들이다. 그들은 앞다투어 ‘Indonesia??? Terserah!!!’라는 손팻말을 든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인도네시아? 니 멋대로 하세요!’라는 의미다.
 

닥터 에피 리스마와티 데위의 5월 16일자  인스타그램 계정 캡쳐
 
 
코로나 방역 최전선에서 이미 7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의료진들로서는 날로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 확산 와중에 방종하는 시민들과 그런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의 어정쩡한 조치에 실망스러워 환멸을 느낄 법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정부도, 경찰도, 매체와 소셜미디어도, 국회의원들도, 기업 마피아들도 모두 니 멋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것이 꽤 아팠는지 보사부는 앞서 손팻말 시위 대신 국민들에게 방역참여를 촉구하는 의료진들 사진을  5월 22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며 상황을 수습했다.
 
보사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의 의료진들은 ‘인도네시아, 맘대로 하지 마시고
힘을 합쳐 코로나-19 방역 프로토콜을 따릅시다’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보사부 인스타그램 캡쳐)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도 코로나 확산이 두려워 언제까지나 경제활동을 정지시켜 둘 수는 없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초 405.1조 루피아(33.9조 원 상당)로 책정했던 코로나 방역과 경제회복비용을 641.7조 루피아(53.7조 원 상당)로 대폭 확대 편성하여 올해 1,020조 루피아(85.4조 원 상당) 이상의 재정적자를 각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375.6조 루피아(31.4조 원 상당)의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미 발행했고 올해 연말까지 697.3조 루피아(58.4조 원 상당)의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것이라고 수아하실 나자라 재무부 차관이 지난 수요일 화상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중앙정부는 당초 코로나가 인도네시아에서 5~6월에 정점을 맞고 7~8월에는 정상 생활로 복귀한다는 시간계획을 가지고 이둘피트리 기간 동안만큼은 수도권 내에서는 주경계 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서서히 규제를 완화하며 출구전략을 짜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엔 코로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시점에 경제논리에 떠밀려 부득이 경제를 전면 재가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뉴노멀’ 환경에서 시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5월 15일 발언은 어딘가 섬뜩하다.
물론 조코위 대통령은 평화로운 공존이란 우리가 두 손을 든다는 뜻이 아니라 적응해 간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상황에서 누구나 고통받고 있지만 가장 고민이 큰 이들은 영세상공인들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던 비정규직들이다. 한국에서는 상당수가 이미 재난지원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에 배정하여 코로나 피해가구들에게 최대 3개월 간 월 60만 루피아(약 5만원) 상당을 주기로 한 지원금은 받았다는 사람을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수입감소로 지출을 줄일 때 자선과 기부항목이 가장 먼저 줄어드는 만큼 도시빈민들과 고아원 등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대목에서 한인들의 빈민구제활동이 부각된다. 코로나 사태로 직접적인 구호활동이 중단된 후에도 교회와 봉사단체 등 한인단체들과 개인 독지가들이 빈민지역에 정기적으로 생필품과 마스크를 보내는 활동으로 문제 그대로 해당 마을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땅거랑 지역 한인주부들로 구성된 헤븐스멤버는 한센촌 시타날라 마을에
가정당 쌀 5kgs씩을 매주 공급해 왔다. 월간 쌀 2톤이 넘는 물량이다.
현재 89개 가정을 돕고 있는 해븐스멤버는 2005년 이후 단 한 주도 활동을
쉬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토요일(5월 16일) 생필품 배포 장면)
 
하지만 팬데믹에 피해를 입은 것은 한국기업들과 한인가정들도 매한가지다. 미국과 유럽의 주거래선들이 발주를 중단하면서 한인 공장들도 두 달 넘게 공전했지만 인건비는 물론 법으로 정해진 이둘피트리 보너스까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입은 전혀 없고 지출만 유지되는 구조가 지속되지만 한인기업들로서는 인니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현지 한인가정들은 본국 정부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교부대상조차 아니다.
 
아직 외국인 입국금지 상황이지만 이미 입국해 있는 외국인들은 정부의 팬데믹 종료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딱히 비자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도 1개월씩 체제비자가 자동 연장된다. 어차피 이민국을 비롯한 정부 민원창구들도 이미 두 달째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출국하면 인도네시아 재입국은 당분간 기약하기 어렵다. 1년짜리 인도네시아 근로비자(ITAS) 이상 소지자는 입국금지대상이 아니지만 한국을 다녀올 경우 양쪽 국가에서 각각 14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인도네시아 입국 전 PCR 검사 음성판정결과를 명시한 건강증명서 등 소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포사회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어느 때보다도 국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갖게 된 이유는 현 정부의 성공적인 방역활동 뿐 아니라 물품사재기도 없고 마스크 쓰라는 상대방에게 총을 쏘는 이도 없는, 분별력과 염치에 기반한 한국인들의 시민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가 아직도 코로나 청정지역이라며 자화자찬하던 시절 한국에서 코로나가 들불처럼 퍼지고 있을 때, 현지 한인들 중 확진자가 먼저 나오면 천하의 역적이 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는, 잘 생각해 보면 한인사회가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는, 최소한 우리가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집단적 ‘염치’의 발로였던 것 같다. 2007년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켰을 당시 한국인 전체가 미국에 깊은 조의와 미안함을 품었던 것처럼.
 
5월 23일 현재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누적확진자는 21,745명, 사망자는 1,351명인 가운데 다행히 한인사회 코로나 감염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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