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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 / 조명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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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437회 작성일 2020-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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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건강을!
 
조명선 박사
 
 
“이곳에서 30여년 가까이 사업하다 보니 그들이 너무 아무것도 아닌 질병으로 사망하는 걸 자주 보았습니다. 병원만 가까이 있어도 그들이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죠”
 
내가 파푸아에 도착해 던진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파푸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8년 10월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코린도라는 기업이 협력해 파푸아주 보벤디굴군 자이르면 아시끼리에 지은 병원 운영에 대한 컨설팅 의뢰가 그 시작이다. 한국국제협력단은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대한민국 개발협력 대표기관이다.
 
코린도는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깔리만딴과 자카르타 근교에서 합판, 제지, 조림 사업 등을 하면서 파푸아에는 1993년에 첫 진출을 했다. 이 기업은 파푸아 진출 초기에는 합판 공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팜 농장까지 운영하며 막대한 고용 창출을 하고 있다. 잠깐 소개한 바와 같이 코린도그룹의 다양한 사업분야 중에 보건의료 관련 사업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아시끼 지역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취지로 병원을 세운 것이다. 현재 한국국제협력단과의 공동사업은 종료되었고, 2025년까지는 코린도그룹이 비용과 운영을 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후부터 지방정부와 예산을 분담하다 2030년 이후 100%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코린도는 병원 운영을 통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후 지방정부에 헌납할 병원 운영에 왜 그렇게 열정적인가’였다. 나의 의문에 대해 클리닉 아시키의 Dr. Firman Jayawijaya는 “병원은 단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고 주민들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여 스스로 자립하고 자신의 삶의 살아가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자카르타를 거쳐 만 36시간을 비행기로 차로 여행한 뒤 숲 속 한가운데서 만난 클리닉 아시끼는 진료를 받는데 불편함이 없이 기본적인 시설 장비가 잘 갖춰진 현대식 건물이었다. 이러한 광경에 기업이 지역 사업에 참여할 때 이익 추구를 우선시 할 것이란 나의 고정관념은 무너졌다.
 
파푸아는 지리적으로도 매우 낙후되어 있지만, 특히 보건 의료 분야에서는 많은 돌봄이 필요한 곳이다. 보벤디굴군 보건지소의 2016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역의 영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115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의 3.5배 수준에 달했고, 또한 신생아 사망률 1,000명당 54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임산부의 병원 방문 비율 또한 22% 수준으로 인도네시아 평균인 87%에 크게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파푸아는 전통적으로 지역 주민이 현대의학보다는 민간요법을 더 신뢰하고 의존하는 편이다. 또한 아시끼 지역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은 육로로 2시간 거리에 있었고, 중증 환자와 응급 수술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은 육로로 6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으로, 파푸아의 지역 보건의료의 상황은 좋지 않았고, 이를 오랫동안 지켜 봐왔던 기업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단순히 병원 건물을 짓고, 의료장비를 설치해 지역 사회에 희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코린도는 의사, 약사, 간호사 등 현지 의료인력을 교육시켜서 보건부의 정책에 따라 지역 보건의료의 틀을 세우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는 중이다.
 
 
현재 보벤디굴군 자이르면 아시끼리에 위치한 클리닉 아시끼는 1차 진료 기관으로 무엇보다 예방과 보건의료에 대한 인식과 행위 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병원 진료를 꺼리는 산모들을 위한 산모 교실을 열어 산전·후 검사의 중요성과 안전한 출산에 대한 교육과 산전·후 관리를 통해 건강한 임신과 분만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 고위험 주민들에게 맞춤형 보건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병원에 오기 힘든 숲 속, 골짜기 마을을 정기적으로 직접 찾아가서 예방접종, 투약 등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중보건정책의 일환으로 통합적인 일차보건의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시끼와 같이 지리적으로 소외된 지역까지 지방정부의 손길이 미치기엔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끼는 일차 보건의료의 사각지대에 있었고 당연히 지역주민의 누려야 할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에 제약이 있었다. 클리닉 아시끼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공중보건정책의 기조 하에 필수 보건의료서비스를 소외된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보완적으로 지방정부의 지역보건의료 시스템에 기여하고 있다.
 
코린도그룹은 이번 COVID-19 사태에도 의료, 보호 장비가 부족한 파푸아 지역 사회에 마스크나 방호복 등을 기증해 주민들과 의료진들의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민간기업은 이처럼 지역사회에 보이지 않는 손길을 펼치고 있다. 파푸아의 이웃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 하나만을 바라보고 말이다.
 
<이동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클리닉 아시끼의 의료진을 배웅하는Kapoho주민들>
 
파푸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일차보건의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978년 알마아타 선언에서 “모든 이에게 건강을”이란 목표를 내걸었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이렇듯 인도네시아 정부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코린도와 같이 비록 보건의료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업도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클리닉 아시끼를 일궈냈고, 이곳을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지역단위의 노력이 언젠가는 이러한 거대한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클리닉 아시끼의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지방정부 관계자, 클리닉 아시끼의 직원들 그리고 클리닉에서 만난 지역주민들 모두 클리닉 아시끼를 “우리 클리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클리닉이 아시끼 지역의 것인 것처럼 건강도 언젠가는 이들의 협력과 노력으로 “우리”의 것이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클리닉 아시끼에서는 환자를 진료하고 보건교육을 시키고, 중증 환자를 응급처치를 해서 상급병원으로 후송시키고 찾아오지 않는 주민들을 찾아서 마을 순회진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항상 든든히 지키는 지역의 맏형 같은 코린도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클리닉 아시끼는 한국 정부-인도네시아 기업-인도네시아 지방정부간 협력의 우수사례이다.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지역사회의 보물같이 클리닉 아시끼를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유지, 관리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현재의 수준으로 클리닉 아시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과 의약품, 시설 운영비 등 최소한의 재정이 담보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클리닉 아시끼가 지방 보건당국으로 이관됐을 때도 꾸준히 유지될 수 있도록 병원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민간기업 코린도가 쏟은 정성과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보건당국의 노력이 만나 협력하면 난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곳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진료를 받으러 온 주민들의 감사 인사와 클리닉 직원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앞으로도 클리닉 아시끼는 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부담없이 찾아 와서 의지할 수 있고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오래 유지되길 바란다.
파푸아의 모든 이들에게 건강을! 나는 오늘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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