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출신 네덜란드 입양아들의 험난한 뿌리 찾기 > 자유기고란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유기고란 인도네시아 출신 네덜란드 입양아들의 험난한 뿌리 찾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488회 작성일 2021-03-22 00:00

본문

인도네시아 출신 네덜란드 입양아들의 험난한 뿌리 찾기
 
버드 위처스(Bud Wichers-왼쪽)가 형 릭(Rik), 부모님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부모는 자카르타에서 버드를, 수라바야에서 릭을 입양했다. (Courtesy /Bud Wichers)

사진/비디오 저널리스트인 버드 위처스(Bud Wichers)는 시리아, 가자지구, 리비아,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이나 내전이 벌어진 곳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사진작가가 된 이유는 사회적 정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입양아가 아니었다면 그런 감정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버드는 1973년부터 1983년 사이 네덜란드인들에게 입양된 3,040명 중 한 명이다. 네달란드 양부모가 보다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준 것을 인정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자카르타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의 입양서류 상 인적사항엔 자신의 본명이 부디만(Budiman)으로 되어 있고 1977년생으로 부모는 중부 자카르타 따나아방 지역 두꾸 삥기르 거리 다섯 번째 골목(Gang V of Jl. Dukuh Pinggir in Tanah Abang, Central Jakarta)에 사는 루스디(Rusdi)와 무스티아(Mustiah)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의 양부보는 1978년 자카르타 근교의 까시분다 고아원(Kasih Bunda orphanage) – 지금은 로카까시(Loka Kasih)로 개명 – 에서 그를 입양했다고 한다. 버드는 그 두 곳을 모두 방문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지난 해 11월 20일 그는 입양서류에 기재된 두꾸 삥끼르 거리의 낳아준 부모의 주소지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곳은 호텔 인도네시아 로터리 가까이에 세워진 고급스러운 쇼핑몰들 뒤편에 위치한 빈민촌이었다. 거기서 에스니(Esni)라는 나이 지긋한 여인이 버드의 어머니 무스티아가 거기 살았던 것은 맞지만 여러 해 전에 딸과 함게 반뜬 주 땅그랑으로 이사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버드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그 희망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몇 주 후 그와 똑 같은 친부모 이름이 입양서류에 적힌 또 다른 입양아와 연락이 닿은 것이다. DNA 검사를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혈연관계도 발견되지 않았다.
 
“내 생각에……, 내 입양서류는 짜집기된 것 같습니다. 그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네요.” 그는 목소리엔 한탄이 섞여 나왔다.
 
 1978년 네덜란드인 부부에게 입양되기 전 반뜬 주 땅그랑 소재 분다 까시 고아원 (지금은 로카 까시로 이름 바뀜)에 있던 버디 위쳐 (Courtesy/Bud Wichers)

너무 늦어버린 사과
거짓으로 작성된 입양서류는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많은 인도네시아 출신 입양아들은 중대한 걸림돌이 된다.
 
메인 루츠 재단(Mijn Roots Foundation)의 공동설립자인 마리아 반 발렌은 위조된 서류가 제출되었다는 것은 입양 자체가 비합법적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메인 루츠 재단은 지금까지 38명의 인도네시아 출신 입양아들이 그들의 친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지금도 87명의 또 다른 입양아들을 돕고 있다.
 
“우린 지금까지 38명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얘기가 서류 상 기재된 내용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결코 아기를 내어주지 않으려 했던 사람도 있어요. 내 경우엔 어머니가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요. 어머니는 자카르타에 가서 일하는 동안 나를 돌봐 달라고 어떤 여자에게 부탁했는데 자카르타에서 돌아와 보니 내가 없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관련 입양서류를 찾아보니 당신이 입양에 허락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합니다.” 아나는 그래도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났다.
 
아나 마리아 판팔렌(Ana Maria van Valen)은 18세가 되었을 때 서부자바 보고르에서 친어머니와 재회했다. 아나와 또 다른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 입양아 크리스틴 베르하겐(Christine Verhaagen)과 함께 입양아들을 그들의 친부모와 재회하도록 주선하는 메인 루츠 재단(Mijn Roots Foundation)을 2014년에 설립했다. (Courtesy/Ana Maria van Valen)

1983년 고아원, 출산 클리닉, 조산소 등이 연루된 수많은 불법입양사건들이 드러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후 해외 입양을 금지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가 이러한 불법적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데에는 40년이 걸렸다. 여러 해 동안 인도네시아, 브라질,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들로부터 입양된 이들이 네덜란드 정부에게 이러한 문제점 많은 입양절차를 조사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해 왔다. 1967년부터 1998년 사이에  이브라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로부터의 입양 케이스들을 정부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마친 후인 지난 2월 8일에야 너무나도 늦은 사과가 마침내 나왔다.
 
위원회는 일부 아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부모에게서 팔려왔거나 입양과정에 모종의 사기가 개입된 경우들을 찾아냈다. 네덜란드 관리들이 위조서류들을 간과한 점, 협잡과 부패 등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형태의 구조적 폐해들도 함께 밝혀냈다. 이러한 조사결과들이 알려지자 네덜란드 정부는 외국으로부터의 입양을 전격 중지시켰다."

“과거에 벌어진 실수들에 대해 입양아들에게 관련 내용이 통지되어야 하며 그들이 우리들에게 현재 가용한 모든 도움과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 2월 네덜란드 법무장관 산더 데커(Sander Dekker)는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발언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모든 입양아들이 국립 전문가센터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모든 단계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사회심리 상담서비스와 법률 지원도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나와 버드는 이러한 변화를 반겼다. “네덜란드 정부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큰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버드의 말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여러 나라들로부터의 입양아들을 지원하기 위해 120만 유로 (약 143만 달러)를 책정했다. “그러나 이 재원은 뿌리를 찾는 개인들이 아니라 이들 입양아들을 지원하는 조직들에게 배정된 재원입니다. 그래서 우린 개인적 지원문제를 이미 제기했고 현재 관련부처들이 협의하고 있습니다. 입양아가 개인적으로 뿌리를 찾아 나서려면 비행기 티켓부터 시작해 숙소, 조사, 멘탈을 지키기 위한 보건 측면에서의 관리, DNA 검사를 비롯한 비용으로 수천 유로가 듭니다.” 아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늘 해피엔딩은 아니다.
메인 루츠 재단의 아나와 그녀의 팀은 입양아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상당수 인도네시아 입양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면서 결과적으로 우울증을 겪거나 다른 정신건강 문제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아나도 실감하고 있다.
 
두 살 반 때 입양된 아나 자신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매우 특별한 관계여야 할 생물학적 어머니와의 단절은 반드시 트라우마를 남기는 경험입니다. 그것이 입양아들 중 상당수가 극복하기 매우 어려워하는 문제이고요. 우린 다른 문화적 배경을 타고 태어나 입양되었고 원래의 가족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인 취급을 받지만 인도네시아에 오면 내가 네덜란드인이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아나는 자신이 정체성 혼란을 그렇게 설명했다.
 
입양아가 친부모를 만나게 되어도 꼭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입양아들은 대개 친부모 가족들의 문화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현실적이지 못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때때로 친부모의 가족들은 입양아가 매우 부유하다고 생각해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며 손을 내미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입양아들이 품었던 기대가 큰 만큼 친부모 측의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반응에 환멸을 느껴 아예 친부모와 영영 절연하는 경우도 간혹 벌어진다고 아나는 말한다.
 
버드 역시 친부모와 만나게 된다고 해서 요정들 나오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가족들의 행복한 재결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입양서류가 가짜 정보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도네시아의 친부모를 찾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난 내 양부모님이 나에게 허락해 준 모든 기회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를 양육할 기회를 영영 잃고 만 친부모님을 생각하면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어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1991년 고 최진실 주연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생각났다. 한때 입양아 수출국의 오명을 썼던 한국으로서 인도네시아에 뿌리를 찾으러 오는 네덜란드 입양아의 이야기가 남의 얘기 같지 않다.
 
 
 
*기사제공 : 배동선 /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기사 출처: https://www.thejakartapost.com/news/2021/03/17/fake-documents-hamper-dutch-indonesian-adoptees-search-for-birth-parents.htm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