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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인도네시아 영화 <이바나(Ivanna)>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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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111회 작성일 2022-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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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바나(Ivanna)> 리뷰
 
배동선

7월 28일(목) MOI의 Flix 상영관에서 오후 4시에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관객 2백만 명이 넘었다는 뉴스 기사를 2-3일 전에 보고 가서 보고 리뷰를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은 건데 Film Indonesia 사이트에서 확인한 7월 28일 누적 관객수는 186만 명. 이미 며칠째 그 상태였으므로 사이트 측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7월 28일 현재 2022년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 흥행상위 15개 작품 누적 관객수

얼마전 관람하고 대만족했던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을 제작한 MD 픽쳐스 작품이었기 때문에 꽤 큰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7월 14일 개봉해서 보름만에 유료관객 200만 명을 넘겼는데 300만 언저리까지 갈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CG에 있습니다. 목이 없는 몸뚱아리가 움직이는 장면, 영화 속 몇몇 등장인물들의 목이 잘리거나 뽑히는 장면 등 예전 같으면 인도네시아 영화에서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대체로 잔혹한 장면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렇다고 경험없는 시나리오 작가가 붙은 것도 아닙니다. 메인 작가인 렐레 라일라(Lele Laila)와 리사 사라스와티(Risa Saraswati)는 MD 픽쳐스가 자랑하는 <다누르(Danur)> 시리즈 세 편 모두와 그 스핀오프인 <아시(Asih)>1,2편, <황혼(Silam)>, <빙의(Rasuk)> 1-2편 등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쟁쟁한 인물들입니다.

특히 가수이자 작가이며 최근엔 반둥시 관광창조경제부 공무원으로도 일하고 있는 특이한 경력의 1985년생 리사 사라스와티는 직접 귀신을 보고 영과 대화를 나눈다고 알려져 있어 호러영화에 생생함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바나>의 소설 원작자이기도 하고요. 이들 두 사람은 MD 픽쳐스가 이른바 ‘다누르 세계관’을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바나> 역시 다누르 유니버스의 영화로 분류되고 영화 포스터에도 그렇게 박혀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요?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밋밋하고 주인공조차 입체적이지 않아 몰입감을 주지 못하는데도 워낙 쟁쟁한 작가들이어서 제작자나 감독도 주문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약점은 고증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3년으로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고 이바나가 원귀가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50년 전인 1943년 일본군 강점기 시절입니다. 1943년의 장면에서는 네덜란드인과 일본군, 두 종류의 지배자를 만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정통 역사 시각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과 투쟁을 하면서 많은 투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2차대전 직후에는 5년간의 치열한 독립전쟁을 치렀습니다. 네덜란드는 철천지 원수죠. 반면 일본군은 1942년 자바해전과 빨렘방 전투로 대변되는 동인도 침공을 통해 네덜란드군을 비롯한 연합군을 궤멸시키면서 진주해 인도네시아인들로부터 ‘해방군’처럼 환영받았고 수카르노를 비롯한 당시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일본에 부역하며 일본의 힘을 빌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 하죠.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 특히 귀신 이야기가 엮인 부분에서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바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착한 주인, 일본인에게 학살당하는 불쌍한 유럽인, 금발의 아름다운 희생자 등으로 감정이입되는 경우가 많고 일본은 ‘잔혹한 일본군’으로, 그것도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인 귀신들은 스마랑 라왕세우 건물에 밤마다 출몰하는 자살한 네덜란드 여성의 유령, 자카르타만 온러스트 섬을 수백 년 간 배회하는 마리아 판드 벨데(Maria Van De Velde)의 유령처럼 애처롭고 가련한 여성의 이미지인 반면, 인도네시아에서 목격되는 일본군 귀신들은 하나같이 목이 날아가고서도 집단을 이루어 움직이는 행동양태를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민간에서는 일본군이 네덜란드 지배자들보다 더욱 악독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증에 문제를 삼는 이유는 일본군이 자바섬에 상륙한 것이 1942년 3월의 일이고 이 영화의 배경은 1943년(어느 달인지는 표시되지 않음)인데 마치 일본군이 막 진주한 것처럼 저택에서 현지인들을 거느리고 살던 네덜란드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3년이면 네덜란드인을 비롯한 유럽인 전체가(독일인들만 빼고) 모두 강제수용소에 들어가 있을 시기입니다.
 
▲영화 속 이바나 판 다이크(Ivanna Van Dijk)를 연기한 소냐 알리사(Sonia Alyssa)

그리고 목잘린 석상의 주인공 이바나가 종군위안부였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저택에서 하인들을 거느리고 일본군 장교를 애인으로 가진 네덜란드 여인이 종군위안부였다는 설정은 시나리오 작가나 이 영화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종군위안부의 의미나 실체를 전혀 몰랐다는 얘기가 되므로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관객들도 종군위안부에 대해 잘 몰랐다면 그들에겐 큰 감점요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1993년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라마단 금식월의 마지막 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암바르(Ambar-카이틀린 할더르만 분)가 어린 남동생과 함께 반둥 지역의 한 저택에 사는 친척들을 찾아갑니다. 암바르는 세상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그 집에 모인 세 명의 노인과 네 명의 선남선녀, 한 명의 어린이, 그리고 나중에 합류하게 되는 경찰관에게 라마단의 마지막 날에서 이둘피트리인 다음날까지 이틀간 겪는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그 저택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도 몰랐던 감춰진 지하실에 목잘린 석상을 발견하는데 그 순간부터 이바나의 원귀가 복수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죠.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시놉시스 설명은 이 정도로 그치지만 시나리오와 연출의 아쉬운 점이 곳곳에 보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CG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이 크게 발전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고증 부분부터 스토리의 전개가 다소 무리한 것이 걸립니다. 얼마든지 시나리오를 각색하거나 설명을 덧붙여 부드럽게 전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103분의 러닝타임으로는 50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충분히 다 설명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역량이 떨어지는 감독도 아닙니다. 모 브라더스(Mo Brothers)로도 알려진 끼모 스땀불(Kimo Stamboel) 감독은 <드레드아웃(Dreadout)>(2019), <흑마술 여왕(Ratu Ilmu Hitam)>(2019), <다라의 집(Rumah Dara)>(2010) 등 호러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꽤 호평을 받은 감독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도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암바르가 자신의 능력을 통해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보는 것은 다른 공포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큰 무리없는 클레셰인데 그녀가 보는 장면들을 다른 사람들도 랜턴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보고 인터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이해하는 건 영화를 너무 쉽게 풀어가려 한 나태한 꼼수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을 배신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원한을 품었다 해도 정작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놔두고 인도네시아인들만 증오하기로 한 이바나의 원한, 정신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이바나의 자바인 애인, 가학적이고 악독하기만 한 일본군 장교 마츠야라는 지독하게 단순한 캐릭터에서는 작가의 게으름 내지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라는 태도조차 느껴집니다.

인도네시아 영화계가 오늘날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 작가의 부재라는 것을 많은 감독들이 오래 전부터 강조하고 있는데 정말로 시나리오의 문제가 크다고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0편 이상의 영화가 매년 만들어지고 이젠 OTT 오리지널 영화들도 대거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뒷받침할 시나리오 작가 풀이 너무 작은 겁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떄로는 영화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각본도 같은 사람들이 만들곤 합니다. <이바나>는 그런 상황에서 무려 유명 작가의 시나리오이니 그냥 갖다가 쓰면서 적잖은 제작비를 소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바나>가 손익분기점을 넘어 선전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코로나 팬데믹 끝물에 사람들이 보복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시대.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관객들 선구안이 더 높아지면 아무리 유명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참여하고 제작비 스폰서가 붙어 자본을 투하한다 해도 좀 더 개연성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되어야만 관객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시대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입니다.

<이바나>에 주는 내 점수는 100점 만점에 69점입니다.
예전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은 95점.
두 영화를 모두 보면 왜 그런 점수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최고흥행 로컬영화였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의 속편이 곧 스크린에 오를 모양인데 아마 그게 다음에 리뷰할 영화가 될 듯합니다. 조코 안와르 감독, 한번 믿어 봅니다.

2022. 7. 28
 
▲<이바나>의 원작은 두 번째 책까지 나왔으니 영화도 속편이 나올지 모릅니다.
 
▲암바르 역의 카이틀린 힐데르만.
그녀의 미모는 네덜란드-미낭까바우 혼혈이란 태생적 산물.
 
 
*배동선 작가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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