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마르니의 웨웨곰벨 이야기(Marni: The Story of Wewe Gom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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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니의 웨웨곰벨 이야기(Marni: The Story of Wewe Gombel)
배동선
웨웨곰벨은 아이를 납치해 가는 숲속 여성형 귀신을 이르는 말이다. 웨웨(Wewe)란 할머니, 곰벨(Gombel)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의미의 겜벨(Gembel)에서
온 말이니 ‘거지처럼 누더기 옷을 걸친 할멈’의 외관을 하고
나타난다는 묘사가 들어맞는다.
웨웨곰벨도 여성성을 가진 귀신이니 어찌 보면 극악의 출산과정에서 숨을 거둬 원귀가 된 순델볼롱(Sundel
Bolong)처럼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귀신을 통칭하는 꾼띨아낙(kuntilanak)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로 분류하는 것은 그 행태가 꾼띨아낙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꾼띨아낙은 임신 및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 여인이 생전 아기를 자기 손으로 안아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발생한 원혼이어서 남의 아기를
노려 빼앗는다는 것이 기본 속성인데 그렇게 뺴앗은 아기를 결코 돌려주지 않는 것에 비해 웨웨곰벨은 해질녘 마그립 아잔이 울라고 어스름이 내린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나 소외되고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들을 데려가 지극정성으로 키운다는 프로필을 갖고 있다. 심지어 부모가 뉘우치면 아이를 돌려주기도 한다. 착한 귀신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를 귀신, 마물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키우니 아이가 귀신을 닮아가다가 결국 마물이
되거나, 설령 집에 돌아온다 해도 저 산 너머 깊은 숲 속의 웨웨곰벨을 정말 엄마라 생각하며 평생을
넋이 나간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웨웨곰벨의 빗나간 사랑을 그린 조코 안와르 감독의 HBO 오리지널 <포크로어: 엄마의
사랑(Folklore: A Mother’s Love)>과 할리우드 영화 중에선 <마마(Mama)>(2013)가 거의 같은 맥락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구출하게 된다 해도 웨웨곰벨이 달아나면서 아이의 몸은 놔두고 혼을 빼 가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품에 돌아온 후에도 평생 넋이 나간 채 살아가게 된다는 설정이 따라붙는다.
또 다른 특징을 그렇게 웨웨곰벨에게 잡혀간 아이를 찾는 독특한 방법이다. 주로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숲 속을 뒤지며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이때 모두 부엌에서 쓰는 주방도구들, 예컨대 야자 과육을 벗기는 도구나 소쿠리 같은 것을 들고서 그것을 득득 긁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소리가 웨웨곰벨의 귀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처럼 들려 기겁을 하고 달아나고 그제서야 웨웨곰벨의 귀기에 휩싸여 보이지 않던 아이의 모습이 마침내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른 전승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런 주방용품으로 내는 소리가 신나는 음악같이 들려 야자나무 위에 있던 웨웨곰벨이 흥에 겨워 춤을 추다가 그 바람에 젖가슴 밑에 숨긴 아기가 밑으로 툭 떨어져 구조된다고도 한다. 취학 전 아이를 숨길 수 있는 거대한 젖가슴이 웨웨곰벨의 가장 특징적인 외관으로 꼽힌다.
▲웨웨곰벨의 이미지. 모두 거대한 젖가슴이 부각된다. 발목에 닿을 정도의 길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이 이 영화 속에 나름 잘 묘사되었다. 단지 여성의 젖가슴을 절대 스크린에 허용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LSF) 탓에 웨웨곰벨의 가장 독특한 외관상 특징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시놉시스
이 영화가 여러 다른 영화들을 오마주하거나 벤치마킹했다고 보이는데 형식적으로는 <파묘>를 일부 따라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파묘>의 전반부가 오컬트 스릴러였다가 후반에서 크리쳐물로 변하는 것처럼 영화가 중간에 나름 장르 변화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마르니: 웨웨곰벨 이야기>도 처음엔
위의 웨웨곰벨의 전통적 묘사를 따라 웨웨곰벨에게 잡혀간 아이가 되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나름 긴장감을 형성하는 호러 스릴러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는
웨웨곰벨 마르니가 아이의 누나에게 빙의해 주변사람들을 마구 해치는 슬래셔 장르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은 <마마>의 결말과 싱크로율이 높다.
때는 바야흐로 1977년. 자바의 숲속 마을. 자무(Jamu-약초주스) 행상을 하는 미모의 마르니는 동네 유지와 몰래 관계를 갖는 등 대체로 자유분방한 타입의 여인이지만 시골 남성
중심의 무슬림 사회가 그런 그녀를 놓아둘 리 없다. 동네 청년들에게 겁탈당한 후 미쳐버린 마르니는 숲
속 거대한 나무 밑에서 아기를 낳은 후 자신을 겁탈한 남성 중 한 명을 살해하지만 결국 창녀와 살인자로 몰려 마을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예의 그 나무에서 사람들에게 목매달려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후 그녀의 원혼이 마을 아이들을 납치해 가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중 간신히 도망쳐 온 이르마(샤리파 다아니시 분)는 반쯤 바보가 되어 마을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살게 된다. 47년 후인 2024년 그 마을에 이사온 라하유
가족. 어머니 라하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늘 일에 쫓기며 살아 자폐증을 앓는 어린 아들 아안(Aan)을 돌보는 것은 장녀 아니사(아만다 리그비 분)의 몫이다.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라하유는 아안이 디자인 인쇄물에 낙서를 하고 심지어 랩톱의 원본 파일까지 망가뜨리자 벌로 문간으로 세워두고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저녁 무렵 아안이 사라지고 라하유와 아니사는
크게 후회하며 아안을 찾아 몇 개월을 헤맨다.
그 사이 라하유는 절절히 뉘우치며 기도에 몰두하고 아니사는 몇 번이나 그 웨웨곰벨의 나무를 찾아가 화를 내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면서
동생을 돌려달라 요청한다. 그곳에서 이상한 체험을 한 아니사는 마을 청년 타마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에 돌아와 드러눕는데 그 후 아안이 거짓말처럼 집에 돌아오지만 그가 혼자 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땐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니사 역시 어딘가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넘지 못한 고비
웨웨곰벨의 스토리를 영화 속에 녹여보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게 녹녹치 않았다. 웨웨곰벨과
같은 종류의 귀신들은 서부자바에서는 산데깔라(Sandekala) 등 전국 각지에서 등장하지만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아마 옛날에는 산짐승들이 내려와 어스름녁에 아이들을 물어가는 경우가 좋종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 부모들은 자녀가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웨웨곰벨에게 납치되었고 어쩌면 다시 찾을 수도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싶었던 것이 웨웨곰벨 전승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웨웨곰벨을 미지의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대신 특정 인물의 원혼으로 그린 지점에서 이미 재미가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죽은 원혼이 당연히 복수하러 다니겠지. 이후 이야기가 너무
뻔해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이 귀신들을 태고적부터 울창한 정글 속에 존재해온 난해하고도 불길하며, 인간과는
어떤 점에서도 호환이 불가능한 치명적 존재로 보는 시각도 있고 단순히 누군가 죽어서 생긴 원혼이라 여기는 경우로 나뉘는데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나 <황혼무렵<Menjelang Maghrib)>, <세우디노(Sewu Dino)>같은 영화들은 전자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로 이슬람을 배제한 자바 호러를 그렸고
그중 상당수가 흥행에 성공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정말 무엇인지 모를 때 그 공포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인 것같다.
하지만 <마르니~>는 숄랏 장면, 무슬림이 기도로 귀신을 쫓는 장면 등 전형적인 이슬람 호러를 지향하면서도 ‘사람이
죽어 원혼이 된다’는 지극히 비이슬람적 개념을 웨웨곰벨 스토리에 무리하게 접목시켰으니 그 이어 붙인
가지에 꽃이 필 리 없다. 뭐, 가끔 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서는 피지 않았다.
특히 아니사의 빙의 장면은 인도네시아의 거의 모든 호러영화들이 답습하는 방식의 반복이어서 식상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절친 뽀삐(Poppy)는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었지만
너무 뒤늦게 등장한 탓인지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스토리를 전혀 수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설득력 없는 결말을 낸 후에 뜬금없이 후속작을 시사하는 듯한 쿠키 영상을 이어 붙인 것을 보면 정말 속편을 만들 만큼
관객을 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엔딩 크레딧 영상은 모든 배우들과 감독이 나와 대성공을 거둔
작품의 커튼콜을 하듯 축제의 분위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글을 쓴 사람이 자기 글의 오타나
잘못된 맥락을 못잡아 내는 것처럼 영화를 만든 당사자들은 그 영화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감독과 배우
그렇다고 아주 허접한 영화라는 건 아니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를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나름 이 영화를 신선하게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빌리 크리스띠안(Billy Christian) 감독은 그간 만든 영화들
면면을 보면 이름과 달리 기독교 쪽 인물은 아닌 게 분명하다. 1983년생으로 스무 살을 갓 넘긴 2005년부터 5-6년 간 단편영화들을 만들며 경력을 쌓은 후 2012년부터 장편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2015년 <좀비마을(Kampung Zombie)>을 시작으로 본격
호러영화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관객들이
10-15만 명 사이를 기록해 거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는데도 계속 일감이 들어왔다. 타율이
형편없이 낮은데 그런 감독을 계속 기용하는 영화사들이 있다는 게 일단 놀랍다.
어쨌든 <마르니: 웨웨곰벨 이야기>는 2024년 7월에
개봉해 43명의 관객이 들어 손익분기점을 살짝 넘긴 것으로 보이는데 이게 빌리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하지만 여주인공 아니사를 연기한 아만다 리그비(Amanda Rigby)의 연기는 힘겹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1993년생 여배우로
2009년부터 TV 드라마에 아역으로 출연했고 영화 데뷔는 2018년으로 몇 편 출연작이 없지만 엄청난 미녀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고혹적인 분위기의 매력적인 여배우다. 물론 저 위의 빙의 분장은 아무래도 영 아니었다 싶지만.
▲아만다 리그비
웨웨곰벨 마르니를 연기한 이스미 멀린다(Ismi Melinda)는 꽤 짱짱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지만 선구안이 그리 좋지 않은지 크게 흥행한 영화는 거의 없다. 특히 <발렌타인(Valentine)>(2017), <사트리아
데와: 가똣까챠> 등 폭망한 수퍼히어로 영화 두 편에
여지없이 출연했다. 또 다른 폭망 수퍼히어로 영화는 <피르고와
스파클링스(Virgo & Sparklings)>인데 세 편 중 두 편에 출연했으니 시나리오를
선택한 손이 똥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마을 남자들을 후리고 다니는 미모의 자무 행상으로는 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난 최종평은 영화가 끝난 후 여주만 기억난다는 점에서 오래 전 <어미>로 번역되었던 공포영화 <이낭(Inang)>의 후기와 비슷하다.
<마르니: 웨웨곰벨 이야기(Marni: The
Story of Wewe Gombel)>은 현재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고 한국어 자막은 아직 없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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