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의 내각 라인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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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의 내각 라인업 평가
배동선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를 통치해온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10월 20일 퇴임하고 그와 두 번 대선에서 맞붙어 모두 패배했으나 두 번째 패배 후 곧바로
연정에 참여해 국방장관을 지내며 우여곡절 끝에 후계자로 낙점되어 지난 2월 대선에서 승리한 쁘라보워
수비안토가 마침내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군문에 들어선 후 군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인도네시아가 강점하고 있던 동티모르에서 보내며 반군들을 대상으로 실전경험을
쌓은 그는 우연히 초급장교시절 현지에서도 니콜라스 로바토 동티모르 제2대 대통령을 교전 중 사살한 작전에
기여해 수하르토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급기야 사위가 되어 정권 핵심부에 곧장 뛰어들었다.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특전사령관을 거쳐 과거 수하르토가 1965년 9,30 쿠데타를
진압하며 정권 정상으로 가는 길을 열던 당시 직책인 육군전략예비사령관(중장)까지 진급하지만 1998년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피를 뿌린 민주화
시위와 자카르타 폭동의 혼란 속에 수하르토가 하야하자 그의 군생활도 속절없이 끝나버렸다. 그는 한동안
요르단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얼마 후 인도네시아에 돌아온 그는 정계에 뛰어들어 그린드라당을 창건했고 처음엔 메가와티 수카르노뿌트리의 대통령 재선 선거의 부통령
후보로, 2014년과 2019년엔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선을 치렀으나 모두 낙선했다. 그러다가 수하르토 하야 26년만인
2024년 2월 현직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노골적인 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대선에서 승리해 8개월간의 정권인수 준비를 한 후 지난 10월 자신의 장인이 장기간 차지하고 있던 바로 그 정점에 올랐다.
그는 수하르토의 딸 띠띡 수하르토와 1998년 이혼했으나 디자이너로 성장한 아들 디딧(Didit)을 사이에 두고 전처와 사뭇 오붓하고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쁘라보워는 수하르토 정권 최후의 날까지 장인 편에 섰던 인물이다. 그래서
쁘라보워와 띠띡의 이혼은 수하르토 정권과의 절연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한 ‘위장이혼’이라 보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하르토가 만든 골카르당
당적으로 이미 한 차례 국회의원을 했던 띠띡은 이번엔 전남편의 그린드라당 공천을 받아 지난 10월 1일 두 번째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쁘라보워 수비안토의 대통령 취임은 어떤 이들에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만큼이나 충격적이었고 수하르토 철권통치 시대의
재림이라는 이야기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취임 당일 밤 새 정부 장-차관들 명단을 발표하고 그 주 주말 100명이 넘는 장-차관들을 중부자바 마글랑(Magelang) 소재 육군사관학교로 모두 불러들여 군복을 입히고 3박4일간의 집체교육을 하는, 매우 요란하고도 이색적인 방법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11월 7일(목)에는 장관, 기관장을 비롯해 전국 지자체장 등 5,000명 넘는 사람들 자카르타 남쪽의 센뚤(Sentul) 지역으로 한꺼번에 불러들여 국정기조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 쁘라보워 대통령은 자신의 군대식 성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글랑 육군사관학교에서 군대식 집체교육
받는 새 정부 장차관들 (출처-인도네시아 국무부 포토갤러리)[2]
그렇다고 과거 현역 군인들에게 정부 민간부문 요직을 나누어 주었던 수하르토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할 것 같진 않다. 그는 자신의 후임 국방장관에 군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샤프리 샴수딘 예비역 중장을 기용하는 등 적잖은 군경 장성들은
입각시키며 그 과정에서 일부 현직 장성들을 전역시켰지만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무형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장관으로 기용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에 비해 그가 임명한 48명의 장관들 면면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예를 들어 문화 부분은 관광창조경제부에서 분리된 창의경제부와 교육문화연구기술부에서 분리되어 나온 문화부가 담당하게 되지만 두 부처의
장관 뜨꾸 리프키 하르샤와 파들리 존은 문화 관련 전문성이 없는 정치인들이다. 다만 해당 부처 차관들은
각각 게임회사 CEO와 배우 겸 가수 출신이어서 실무는 차관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48개 부처의 구성을 보면 쁘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새 정부가 어떤 일을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지 그 단초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내각에는 '조정장관'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른바 '장관 위의 장관'들로 그 휘하에 여러 장관부처들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조코 위도도 전대통령 시절에는 쟁쟁한 조정장관들 중에서도 대통령의 민간인
시절 사업파트너였던 예비역 육군대장 루훗 빈사르 빤자이탄 해양투자조정장관이 명실공히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내각과 정국을 주도했다.
지난 2월 대선에 투쟁민주당(PDIP) 대통령
후보 간자르 쁘라노워의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나섰던 마흐푸드 MD도 법무부, 내무부 등을 총괄하는 정치사법치안보 조정장관으로
내각의 또 다른 축을 이뤘다.
이번 쁘라보워 정부의 내각에서는 지난 정권보다 둘 늘어난 일곱 개의 조정장관 부처를 두었다. 그외에도
굳이 '조정장관'이란 타이틀을 붙이진 않았지만 조정장관과
같은 정도의 권한을 가진 독립 부처로 재무부와 국무부가 있고 국가경영실무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행정개선관료개혁부,
국가개발기획부 등이 라인업되어 있다.
지난 정권 10년간 재무장관을 맡았던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전 세계은행 총재는 이번 정권에서도
재무장관을 맡았지만 그 밑에 쁘라보워의 조카를 포함한 3명의 차관,
2명 증가된 청장급 국장 9명의 보좌를 받는 구도는 좀 지나치다 싶다. 그런 보좌진 없이도 꼿꼿하게 재무장관직을 수행해온 스리 물야니를 자기 사람들로 꽁꽁 에워싼 쁘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사가 국가 재무를 맡아야 한다'고
말해 왔는데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재무장관이 원칙을 꺾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므로 스리 물야니 장관을 에워싼 차관과 청장들의 역할은
원칙주의자 장관을 '유연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라 추정된다.
한편 국무부는 조코위 대통령의 모교인 가자마자 대학교 총장 출신 쁘라띡노가 지난 10년간
그 자리에서 대통령의 왼팔 역할을 했다. 국무부는 대통령 입 안의 혀처럼 굴며 긴밀하게 소통하는 부처여서
일각에서는 '장관들의 장관'이라 불리기도 했다.
쁘라띡노는 이번 정권에서도 인간개발문화조정장관으로 영전하여 내각에 남았다. 후임
국무장관으로 입각한 쁘라스티요 하디(Prastyo Hadi)는 원래 장관부처급이었던 내각 사무처를 흡수해
그 덩치와 위상을 더욱 키웠고 내각 전체를 아우르며 대통령의 의지를 내각을 통해 구현하는 창구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린드라당 소속 45세의 젊은 쁘라스티요 국무장관은 쁘라보워 대통령의
더욱 잘 드는 왼팔이 될 것이다.
이번 내각은 이렇게 7개의 조정장관들 밑에, 예의 4개 독립 부처들을 제외한 나머지 37개 부처들이 각각 소속되는데
그 구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일각에서는 쁘라보워 대통령이 방대한 내각을 꾸린 것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이른바 선진인도네시아연대(KIM) 정당연합 소속 정당들인 그린드라당, 골카르당, 국민수권당(PAN), 민주당을 비롯해 대선 당시 상대 진영이었지만
정국 안정을 위해 연정에 끌어들인 대부분의 원내 정당들에게 골고루 요직을 나누어 주기 위해 자리를 늘린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9명으로 되어 있던 대통령 자문위원회도 인원제한이
풀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 공을 세우고서 아직 자리를 받지 못한 인사들이 넘쳐나 대선 이후부터 시작된 공기업 대표와 임원직의
승자독식 낙하산 인사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장관부처들의 숫자를 전 정권의 34개에서 이번에
48개로 늘린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해당 부처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내각 효율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부처 증가는 없던 부처를 신설한 것보다 전 정권의 9개 부처를 21개로 분리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부처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업무를 수행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조코위 정부 말기 부처간 충돌과 반목이 많은 문제를 낳았다.
부품 국산화율(TKDN)이나 공산품품질표준(SNI) 등의
문제로 산업부와 무역부가 충돌하며 두 부처의 알력으로 자카르타 딴중쁘리옥과 수라바야 딴중뼤락 등 전국 주요 항구에 수만 개의 컨테이너들이 적체되었던
사건은 부처 간 서로 다른 이해가 충돌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전정권 법무인권부 산하 이민국이 외국인들의 대규모 투자를 조건은 5~10년 체류를 허가하는
세컨드홈 비자, 골든 비자 등을 속속 출시하다가 급기야 체류기간 2년을
일괄 허가하는 투자자 비자 조건인 최소 투자액 10억 루피아(약 8,700만 원)를 일방적으로
100억 루피아(약 8억7,000만 원)로 인상하며 애당초 투자부/투자조정청(BKPM)이 외국인 최소 투자액을 10억 루피아로 정해 발리에서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영세기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비난한 사건은 부처간 경쟁과 알력이
심지어 외국인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체류 허가를 놓고 외국인들을 압박해 새로운
국고수입을 창출한 실미 까림 이민국장은 정권의 눈에 들어 이민교정국 차관으로 영전했다.
앞서 언급한 창의경제부와 문화부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창의경제부는 조코위 정권 초창기인 2015년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진 창조경제위원회(Bekraf)를
모체로 하는데 이후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이 신수도 이전 등 토건 분야에 집중하자 문화 정책이 소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축소되어 관광부에 흡수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분리 독립해 장관부처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그간
교육문화연구기술부로 넘어갔던 16개 문화부문 정책수립기능 대부분을 되찾아오는 것이 우선 과제다.
한편 과거 교육문화연구기술부의 문화부문이 창조경제위원회와 별로 충돌하지 않았던 이유는 해당 부처의 문화부문이 교육과 엮여 예를 들어
영화 부문은 영화 콘텐츠 제작보다 영화인력 교육 및 육성에, 출판 부문은 상업 문예 도서보다 교과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교육문화연구기술부가 세 개의 장관부처로 분리되면서 온전히 문화부문만
가지고 독립한 문화부는 창의경제부와 겹치는 부분이 많이 두 부처가 긴밀히 협력해야 하지만 서로 정보공유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장관부처들의
공직문화를 감안하면 협력하기보다는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두 부처는 소속 조정장관부조차 다르다.
이제 막 출범한 쁘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새 정부는 6개월마다 장관부처들을 평가해 재편, 경질하는 식으로 개선하라는 투쟁민주당의 요구를 공식 거부한 것이 무색하게 바로 직후 장관들의 업무 능력과 실적을
주기적으로 감독, 평가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래서 대통령은 각 장관들에게 취임 첫 100일간 성과를 내라고 요구했고 모든 장관들이 속속 관련 기획을 발표하고 있다. 오직 인권부의 나탈리우스 삐가이 장관 만이 자기 부처에 배정된 쥐꼬리 만한 예산을 30배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100일 계획이 아니라 5년 계획을 세웠다'고 반발하는 등, 임명된 지 3주도 안된 시점에 장관들 중 최초로 대통령에게 어깃장을 세웠다. 이 사람 아슬아슬하다.
▲나탈리우스 삐가이 인권부 장관 (출처-TvOnenews.com)[3]
기왕에 대통령이 장관들의 전문성과 능력을 강조한 상황이므로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대통령에게 맞서는 장관들은 파리 목숨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욱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은 국회 최대의석 정당인 투쟁민주당(PDIP)이 조만간 연정참여로
선회할 경우 그보다 의석이 적은 골카르당이 8개의 장관직을 가져간 만큼 그 이상의 장관직을 요구할 터여서
이를 충족시키니 위한 대폭적인 장관 물갈이 개각이 어쩌면 매우 일찍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첫 100일 동안 장관들이 각각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쁘라보워 대통령이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투쟁민주당이 과연 뒤늦게 연정에 참여할 것인지 우선은 잠자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끝)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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