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한글 표기 인도네시아 라면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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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미 양파 닭고기 맛>
인도미는 현지 수많은 라면 브랜드들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냥 1위가 아니다. 현지에서는
빅3 브랜드인 인도미, 수퍼미(Supermi), 사리미(Sarimi)가 전체 라면시장의 81%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중 인도미 혼자서 72%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 매출에 우리 교민들도 분명히 한몫을 했다.
인도네시아 라면들의 특징은 대부분 닭고기 베이스의 흰색이 감도는 말간 국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1년 당시 KBS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서 이경규가 개발해 팔도라면에서 상품화한 ‘꼬꼬면’이 현지 한국 슈퍼마켓에 풀린 것을 맛본 교민들은 누구나 꼬꼬면이 인도네시아 라면, 특히 인도미 양파 닭고기 맛을 벤치마킹한 것이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말하자면
인도네시아 라면 맛이 한국에 진출한 것인데 그때는 아무도 이를 대놓고 언급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명실상부 라면왕국이 된 것은 예전부터 발달한 현지 국수문화에 태평양전쟁 이후 이번엔 경제적으로 인도네시아를 장악하던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이 촉매제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현재 수많은 현지 라면들 속에서 일본 니신(Nissin) 브랜드가 지금도 현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그간 많은 현지 기업들이 일본 라면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다가 현지 라면 애호가들이 한국라면에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 한국 식품유통업체들을 통해 제한적으로 들어오던 삼양식품의 붉닭볶음면이 현지 시장에 핵폭탄급 호응을 일으키면서부터다. 이후 시골 불닭볶음면은 오지의 슈퍼마켓에 가도 찾아볼 수 있게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불닭볶음면을 제대로 읽거나 발음할 길이 없었던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 이 라면은 지금도 ‘삼양’이란 대명사로 불러 삼양식품의 인지도를 현지에서 크게 제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라면의 탈을 쓴 인도네시아 라면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현지 라면시장을 선도하는 인도미가 무려
뉴진스를 광고 전면에 내세워 신상품 ‘한국라면’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한국라면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타 브랜드의 마케팅 방식을 따르지 않고 대놓고 ‘인도푸드가 만든 한국라면’이라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맛본 인도미의 국물 베이스 파란색 포장의 ‘한국라면’은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인도네시아산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국라면의 풍미를 그대로 풍겼다. 단지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라면에서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 특유의 매운 맛이 우리들이 즐기는 일반 한국라면보다 3-4배 정도 증폭되어 있다.
‘한국라면’은 국물라면 말고도 빨간색 포장의 매운 치킨 맛 볶음라면, 분홍색 포장의 K-로제 볶음라면 등 세 종류가 출시되었다. 포장지에 한글 표기가 선명하다. 심지어 국물라면은 국물도 신라면
급 빨간 색을 띈다.
그런데 한글 표기 포장지를 사용한 현지 라면은 이번 인도미의 ‘한국라면’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에 나온 미스답(Mie Sedaap)의 ‘한국 양념 닭갈비 맛’의 코리아 스파이시 치킨 볶음면도 한글 표기를 담고 있었다.
▲<미스답의 한국양념닭갈비 맛 볶음면 >
그런데 2020년 자카르타 타마(PT. Jakarta
Tama)에서 내놓은 콤포트 푸드(Comford Food) 브랜드의 아리랑(Arirang) 라면이 그보다 좀 더 빨랐다. 외관만 봐서는 현지
교민들도 한국에서 수입한 브랜드로 착각하게 되는 아리랑 라면은 매년 그 종류를 더해 이젠 슈퍼마켓 라면 코너의 한 매대를 완전히 차지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한국사람도 속을 정도이니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리랑 라면을 한국에서 수입한 라면이라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렇게 많은 종류의 아리랑 라면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도저히 현지 로컬 제품이란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포장지를 잘 들여다보면 현지 생산회사가 착실히 기재되어 있다. 아리랑
라면은 실제로 대부분 원산지 한국라면들과 비슷한 맛이고 매운 김치 국수, 사골 국수, 맛있는 닭고기, 인삼 닭고기 국수,
비빔면 등 여러 선택지를 출시했다.
최근엔 마마수카(Mama Suka) 브랜드에서도 한글표기를 포장에 채용한 라면이 나왔다. 상품명은 미 핫 라바(Mie Hot Lava-뜨거운 용암라면)이지만 그 옆에 ‘한국 매운라면’이란
표기가 되어 있다. 분홍색 포장은 불닭 매운맛, 노란색은
매운 치즈맛이다.
▲<마마수카(Mama Suka) 브랜드의 ‘한국 매운라면’ >
인도미의 ‘한국라면’은 분명한 정체성 광고로
당연히 현지 라면 매대에 올라와 있는 반면 아리랑 라면과 마마수카의 ‘한국 매운라면’은 매장에 따라 ‘한국 수입식품’ 코너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경우도 발견된다.
▲<한국수입식품 코너에 쌓여 있는 아리랑라면과
마마수카의 한국 매운라면 >
인도네시아 기업들이 앞다퉈 한글표기를 넣은 제품들이 현지 상점들에 넘쳐나는 것은 한국 소프트파워가 음식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유사 한국라면들이 잔뜩 쌓인 매대 앞을 지날 때마다 새삼 국뽕이 차오른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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