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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거데 산의 재앙(Petaka Gunung Gede)>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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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02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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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데 산의 재앙(Petaka Gunung Gede)> 관람 후기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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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거데 산의 재앙(Petaka Gunung Gede)>은 최근 본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 중 포스터가 가장 섹시하게 뽑힌 영화다. 로컬관객이 200만 명 넘게 들며 대박을 친 이유의 대략 절반 정도는 이 공포 분위기 넘쳐 흐르는 포스터들 때문인 거라 생각된다.

2 23() 모이(MOI)의 플릭스 영화관에서 오후 4시반 타임을 보았다. 가장 큰 1번 스튜디오에서는 무슨 교회행사를 하는지 생난리가 나고 있었고 엄청난 음향장비 조종판들이 로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혹시 저 난리가 내가 영화를 볼 스튜디오까지 꽝꽝 울리는 거 아닐까 걱정했지만 의외로(사실은 당연하게도) 스튜디오의 방음설비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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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데 산의 재앙>은 올해 로컬영화들 중 첫 200만 관객을 넘은 영화다. 2024년의 경우와 비교하면 연말 기준 흥행순위 8위쯤을 예약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2024 8위 영화는 <스까완 리모(Sekawan Limo)>. 역시 등산을 소재로 한 호러영화였다.

이 영화의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 조금 고민했다. 조금 해설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터여서, 비록 극장 상영은 현재 끝물이지만 나중에 OTT에 올라가면 이 글을 찾아보게 될 이들에게 미리 김을 빼는 셈이 될 것 같아서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도박, 복불복이지, .

거데 산(Gunung Gede)
거데 산은 말 그대로 거대한 산. ‘Gede’라는 단어가 그런 뜻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산들이 인도시아 전역에 한 둘이 아니지만 영화 속 거데 산은 보고르-뿐짝 부근에 걸쳐 있는 거데 빵랑오 산(Gunung Gede Pangrango)을 말한다. 그렇게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산은 그 인상착의가 100% 거데 빵랑오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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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데 빵랑오 산. 영화 속에서도 바로 이 전경이 똑같이 펼쳐진다. 


산 타기를 즐기는 이들에겐 좋은 등반지이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실종되거나 등반사고를 당한 이들에 대한 기사를 그간 수도 없이 보았다. 만만찮은 험 산이란 뜻이다.

인적이 닿기 힘든 깊은 산, 우거진 정글은 예로부터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으니 사람이 아닌 것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인도네시아인들의 기본적인 정서인 것 같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깊은 산 정글 속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그게 서부 깔리만탄 주도인 뽄띠아낙 건설고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꾼띨아낙이 자기 지역을 침범한 인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산에 오르는 인간들 때문에 불편해진 심기를 꾹꾹 참으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굳이 공격하거나 동티를 내진 않는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그래서 산에 오를 이런저런 금기가 있는데 거데 빵랑오 산에도 몇 가지 금기가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는 생리 중인 여성이 산에 오르면 산속 지박령들이나 초자연적 존재들이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의 힘이 달려 쉽게 사고로 이어진다. 또 하나는 함부로 소변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환경오염, 뱀 등을 놀래킬 수 있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숲 속의 어떤 초자연적 존재가 사는 곳을 더럽혀 노여움을 사면 절대 무사할 수 없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거데 빵랑오 산에 에양 수리야끈차나(Eyang Suryakencana)의 전설 속 왕국이 존재하는 신성한 곳이라 믿어지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마야와 이타, 그리고 그들의 오빠와 친구들 다섯 남자가 산에 오르는데 이타가 첫 번째 금기를 깨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등산로 입구의 숙소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그날 밤 이타가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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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의 마야(왼쪽)과 이타 


시놉시스
포스터를 보고 <스까완 리모>처럼 영화 전체가 등산으로 시작해 등산으로 끝나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거데 산의 재앙>은 등산 장면이 절반, 도시 장면이 나머지 절반 정도로 구성된다.

마야는 현지에선 인디고(Indigo)라 부르는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여주인공이다. 오빠와 식구들은 그 사실을 알지만 친구들에겐 들키지 않으려 내색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빠와 친구들을 졸라 절친 이따와 함께 거데 산 등반에 따라 나섰다가 여러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게 된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면 스토리를 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 영화 저변에 깔린 문화적 배경, 무속의 이해를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깊은 산 정글 속의 초자연적 존재들은 무시무시하고 기본적으로 인간과 생존방식이 호환되지 않으니 치명적이지만 자기들을 화나게 하지 않는 한 무해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등반객 거의 대부분이 산속에서 며칠씩 캠핑을 하고서 늘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이다. 포스터 속의 할머니 귀신, 삿갓 쓴 아저씨, 다리 하나뿐인 남자(어느 장면에서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음) 등을 인디고 아가씨는 볼 수 있지만 저들이 딱히 뭔가 해악을 끼치진 않는다.

단지 자기 사는 곳이 더럽혀진 물귀신만이 마야의 꿈속에 나타나 엄청나게 분노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쏟아 붓는다. 이 물귀신 누나는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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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귀신 눈나 


하지만 정작 사람을 해하는 것은 거데 산의 재앙적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을 담은 산뗏저주가 구현해 낸 악의에 가득 찬 존재다. 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타가 피를 토하고 머리칼이 뭉텅이로 빠지는 것은 전형적인 산뗏저주의 현상이다. 바나스빠티 같이 치명적인 저주를 담은 악령은 그렇게 야금야금 목표가 된 인간을 갉아먹다가 결국은 그 육신과 영혼마저 소진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록 <거데 산의 재앙>이란 제목을 달았으나 사실은 <산뗏의 악령>이란 제목이 훨씬 어울릴 법한 영화다.

감독과 배우들
1980
년생 감독 아자르 키노이 루비스는 10년 남짓 조감독 시절을 보낸 후 36세가 되던 2016년에 자기 이름을 걸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악한 두꾼을 묘사한 영화 <망꾸지워(Mangkujiwo)> 시리즈로 가능성을 보였고 2023년 꿈도 희망도 없이 악마에게 희생당하는 운명의 여주인공을 그린 <죽음의 문턱에서(Di Ambang Kematian)> 330만 관객을 모으며 그해 로컬흥행 2위를 기록하면서 비로소 만개했다.

하지만 그런 후 2024년엔 아무 작품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사이 작업한 호러영화 세 편이 2025년 초 차례로 개봉되었는데 <거데 산의 재앙>외에 <사탄의 신부(Pengantin Setan)>, <마귀의 신부(Pengantin Iblis)> 등이 있고 세 편이 더 개봉 예정에 있어 잘나가는 감독 대열에 올라섰다.


9f78116ea6f328e1066d515713bf5e5a_1741538188_7166.PNG▲아자르 키노이 루비스 감독의 2025년 개봉작들 


서구적인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마야 아즈카 역의 아를라 알리아니 묵타르는 아랍 혈통으로 2002년생으로 고등학생 연기가 아직 그럴 듯한 젊은 배우. 2022년 데뷔 이후 줄곧 호러영화에만 줄연했다. 연기력을 잘 모르겠지만 서글서글하고 싱그러운 외모가 자칫 축 처지기 쉬었던 이 영화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타 역의 아자나 아셀(Adzana Ashel)은 무려 AKB48 인도네시아 프랜차이즈인 ZKT48 아이돌 출신이다. 2005년생으로 2024년 영화 데뷔. 영화 속 불쌍한 민폐 캐릭터를 기대 이상으로 잘 연기했다. 아이돌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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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와 마야 


다섯 명의 남학생들 중 알레 역의 엔디 아르피안은 조코 안와르 감독의 히트작 <사탄의 숭배자> 1, 2편에 모두 출연했던 친구인데 고등학교 교복이 잘 어울리지 않는 액면가와 달리 2001년생의 젊은 배우로 남자들 팀 연기의 구심점을 이룬다.

이타의 아버지 이르완 역의 뜨꾸 리프누 위카나는 인도네시아 영화 속 대표적 악역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에선 딸 이타가 산뗏저주를 맞고 거기에 더해 거데산 지박령들의 분노를 사게 하는 원흉으로 그려진다.

이타의 엄마 누르마이다 역을 맡은 미크 아말리아는 1993년생으로 이따와 불과 12년 차이 밖에 안나는 30대 초반임에도 너무 급노화한 모습이어서 조금 안타까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한 플롯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무슬림이라는 점이 드러나므로 신성모독을 피하려는 자바 호러가 아님이 분명하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의 활약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 다른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나오는 빙의장면이 등장하지만 여기선 빙의된 여성이 공중에 떠오르거나 손짓 눈짓 한 번으로 상대방을 나가 떨어지게 만드는 염동력 장면이 나오지 않는 점 등이 인도네시아 호러영화가 빠지기 쉬운 몇 개의 함정을 잘 피했다.

그리고 산에서 마주치는 귀신이라 해서 반드시 인간들을 공격하거나 해하지는 않는다는 설정,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의 물귀신(여기서 물귀신은 물에 빠져 죽은 이의 원혼이 아니라 연못과 강에 깃든 초자연적 존재) 같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잘 가던 스토리가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허망해지는 것은 역시 시나리오의 뒷심 부족이라 해야 할까?

내 평점은 7. 아니 7.5?
2025. 2. 24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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