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인도네시아 영화팬들의 탈 할리우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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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영화팬들의 탈 할리우드화
배동선
<영화처럼
사랑에 빠지다>
2023년에 개봉한 <영화처럼 사랑에 빠지다(Jatuh
Cinta Seperti Film-Film)>는 얀디 로렌스(Yandy Laurens)이
각본과 감독을 맡아 2024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4)에서
여러 부문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인도네시아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나 공포 영화도 아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엔 비할 바 안된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넘어가기 전 상영관에서는 65만 명 가량 관객이 들어 제작비는 충분히 뽑았다.
물론 2024년 천만 관객 가까이 든 영화도 있고 100만
관객 이상 든 영화가 21편이나 있는데 2023년 개봉한
영화, 그것도 65만 관객이 든 영화에 상을 몰아준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게 아니니 넘어가자.
기존의 영화 틀을 벗어났음에도 좋은 영화여서 호응은 받았지만 아주 크게 흥행하진 못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로컬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런 영화들의
약진은 인도네시아 영화팬들의 취향이 예전과 달라져 할리우드 영화에서 로컬영화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케이스라 평가할 수 있을까?
블록버스터 영화를 넘어
CJ Cinemas는 CGV Indonesia와 영화 수입배급사인 CBI Pictures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CBI Pictures는
미국영화협회(MPA) 작품이 아닌 <기생충>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수입배급한 주체다.
서구권 영화들,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은 MPA에
속한 영화사들이 제작한다. 거기 포함된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소니 픽쳐스 등의 영화들은 영화검열위원회(LDF)의 검열을 통과할
정도의 내용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인도네시아 스크린에 오를 프리패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CJ Cinemas Indonesia의 콘텐츠 마케팅 및 유통 책임자인 난드라(A. Nandra)는 MPA에 속하지 않은 해외 영화제작사들의 영화를 인도네시아의 국내 극장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CBI Pictures의 실적 또한 증가하고
있다. CBI Pictures가 인도네시아에 수입, 배급한
영화는 2023년의 65, 2024년엔 69개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물론 미국 MPA 소속 영화제작사 제품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외에 일본, 한국, 태국, 베트남 작품들도 이름을 올렸다. 물론 한국 회사인 만큼 비 MPA 영화들 중 상당수가 한국영화들이다.
▲태국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 되는 법>, 비
MPA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CBI 픽쳐스는 2024년 팔콘 픽쳐스(Falcon
Pictures)와 협력해 태국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 되는 법(How to Make Millions Before Grandma Dies)을 수입했는데 3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며 대박을 쳤다. 난드라는 이것이 인도네시아
영화 관객들이 다른 나라의 독특하고 인상적인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그런다.
선호도의 변화
난드라의 팀은 어떤 영화를 수입할 지 결정할 때 기준의 상당부분은 배우나
감독 또는 특정 장르의 팬덤, 영화 커뮤니티의 소셜미디어 활동 등을 주요 판단자료로 삼는다. 특정 영화의 수요를 측정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팬덤과 교류하는 것은 수입배급사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판단한 수요와
실제 관객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시네타리즈(Cinetariz)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영화 블로거 따우피구르 리잘(Taufiqur Rizal)은 접근성이 좋고 광범위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나 클릭필름(Klik Film)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으로 영화관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평소 스크린에서 접하지 못했던
제3국 영화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접하고 취향을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인기 있는 영화 전문 소셜미디어 계정 ‘Film Indo Source’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영화팬들의 영화소비 패턴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무료한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다양한 영화를
탐험할 시간이 생겼고, 특별한 영화 애호가들은 서로 소개를 통해 인상깊은 독립영화들까지 섭렵하며 이들
영화 속 주제에 공감할 기회를 누렸다는 것이다.
▲로컬 OTT 클릭필름의 홈페이지
리잘은 각종 영화제 소식이 영화팬들의 관심을 끈 측면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족자-넷팩 아시아 영화제(JAFF)는
2023년 21,000명, 2022년 16,000명에서 2024년
24,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했다.
영화에 대해 조사하고 관련 리뷰를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어서 영화 자체가 훌륭하고, OTT 플랫폼에 올라와 있거나 상영관이 가깝고 가격이 저렴한 등
접근성이 좋으면, 그리고 적절한 홍보가 이루어진다면 인도네시아 영화관객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리잘은 주장했다.
Film Indo Source는 사용자가 다양한 국가의 새로운 영화를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소셜 영화 카탈로그 플랫폼 Letterboxd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음을 강조했다.
▲Letterboxd 페이지
박스오피스
Bicara Box Office 사이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직 공포영화가 유행이다. 2024년
로컬영화 흥행순위 상위 세 편이 <조금 달라(Agak
Laen)>, <피나, 이레가 지나기 전(Vina:
Sebelum 7 Hari)>, <깡막(Kang Mak from Pee Mak)> 등
모두 공포영화였다.
수입 영화들까지 모두 합친 흥행순위에서도 상위 4~7위 영화도 모두 인도네시아 영화였고, 앞서 언급한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은 10위 안에 포함되었다.
흥행순위 상위 10편 중 포함된 MPA 영화는
워너 브라더스의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Godzilla x Kong: The New
Empire)>와 디즈니의 <데드풀 울버린(Deadpool
& Wolverine)이었다.
이런 2024년 상황을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볼 수 있다. 2019년 흥행상위 10편
중 9편이 MPA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주만지: 넥스트
레벨>과 같은 영화가 극장을 장악했다. 그해 10위 안에 든 인도네시아 영화는 <딜란 1991(Dilan 1991) 한 편뿐이었다.
물론 인도네시아 영화팬들의 선호도 변화는 하루 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변화해 왔다.
2019년에 총 1억 5,200만 장의 티켓
판매 중 5,100만 장이 로컬 영화였는데 2023년 업계가
팬데믹에서 회복되면서 총 입장객 수는 1억 1,450만 명으로
감소했지만 로컬영화 관객 수는 5,330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런 다음 2024년에는 로컬영화가 강세를 띄며 총 1억 2,589만 명의 관객 중 8,021만 명이 로컬영화를 봐 전체 관객의 65%에 달하는 인상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물론 이는 2025년 3월 초 기준 아직 공식적인 확정수치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영화 관객들의 선호도가 틈새 시장의 영화들로
압도적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로컬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MPA 블록버스터는 예전만큼
잘 팔리지 않고 있다. 오스카에서 수상한 화제의 영화들보다 오스카에 후보작으로도 명함 한 번 내밀지
못한 다른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번창하고 있다 할 것이다.
로컬영화들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주로 100만
관객 이상이 든 영화들에 스포트라이트가 몰리지만 사실은 100만 관객에 미치지 못한 영화들 중에서도
맨 앞에 소개한 <영화처럼 사랑에 빠지다>처럼
나름 좋은 호응을 이끌어낸 로컬영화들이 적지 않다.
마침 <영화처럼 사랑의 빠지다>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얀디 로렌스가 만든 <형 한 명과 조카 일곱 명(1 Kakak 7 Ponakan)>이 3월 초 기준 132만 관객이 들며 2025년 세 번째 100관 관객 돌파 영화가 되었다.
좋은 영화엔 반드시 관객들이 들기 마련이고 그게 꼭 MPA 스튜디오 영화가 아니더라도 제3국 영화, 아시아 영화, 그리고
인도네시아 로컬영화들도 종종 할리우드 영화를 넘어서는 성적을 내며 기염을 토하곤 한다.
한국영화가 더 이상 스크린쿼터를 언급할 필요 없을 정도로 수입영화에 비해 더 높은 경쟁력과 선호도를 챙긴 것처럼 이제 로컬영화로 돌아선
인도네시아 영화관객들의 취향도 당분간 그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 갈 것으로 보인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 다음글<거데 산의 재앙(Petaka Gunung Gede)> 관람 후기 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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