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문학상 / 아낙깜뿡 (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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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7-11-10 14:59 조회 5,698 댓글 0본문
아낙 깜뿡
조은아 (House Wife)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고속도로를 진이네 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꽤 상쾌한 바람을 따라 이제야 첫 아잔이 들려옵니다. ‘아낙 깜뿡’ 진이는 잠옷을 입은 채로 카시트에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슴푸레 해가 떠오를 무렵, 차는 자카르타 한·인니 문화연구원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차가 멈춰 서자 진이가 스르르 일어나 눈을 비비며 차창 밖을 내다봅니다.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엄마는 진이를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혀 줍니다.
“엄마, 여기 어디예요? 우리 어디가요?”
“진아, 자카르타야. 오늘 우리 아주 특별한 하이킹을 할 꺼야.”
“한복 입고 하이킹 가?”
“응 진짜 재밌을 거야 기대해”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언니 오빠들도 많이 와 있고 사물놀이패 어른들도 보입니다. 엄마 말씀대로 꽤 재미있을 것도 같습니다.
오늘은 자카르타에서 ‘ASEAN 50주년 기념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입니다.
진이의 별명은 ‘아낙 깜뿡 (Anak Kampung 시골 아이)’입니다. 진이는 자카르타에서 두 시간여 떨어진, 남들은 휴가를 위해 하루 이틀씩 머물다 가는, 고즈넉한 휴양지의 빌라에 삽니다. 쉽게 말해 ‘깜뿡’에 삽니다. 제일 가까운 시내까지도 고속도로를 타야하고, 한국 친구는 하나도 없는 진짜 시골입니다. 진이가 이런 시골에 살아서 ‘아낙 깜뿡’이라 불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엄마 품에서 여권 사진을 찍었고, 간신히 목을 가누고 기대어 앉을 무렵 생애 첫 비행기를 탔습니다. 첫 입 뗀 말도 ‘아빠’가 아닌 ‘Ini apa?(이니 아빠?)’ 였습니다. 한국어보다 순다어를 먼저 배웠고, 수건을 질밥처럼 머리에 동여매고 맨 발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그녀의 가장 주된 일상이었습니다. 말타기와 나무 타기를 잘 하고 곤충과 벌레 채집이 제일 신나는 놀이거리입니다. 찌짝 정도는 우습게 가지고 놀고 한 두 시간 정도의 하이킹은 콧노래를 부르며 걷습니다.
겁도 없는 데다 호기심도 많은 탓에 엄마를 늘 가슴 졸이게 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땅에서 주운 무언가를 입에 넣고 맛을 보다가 입 안에 온통 곰팡이 균이 생겨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울어야 했고, 도마뱀을 쫒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잔디밭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벌레를 관찰하겠다고 만지작거리다 독이 올라 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진이의 얼굴은 늘 시커멓고 팔 다리엔 멍과 흉터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비단 빌라 안 뿐 아니라 진이가 살고 있는 이 인도네시아는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깜뿡 꼬마에게 최고의 낙원입니다. 뿔라우 스리부는 예쁜 물고기가 많아 좋고, 반둥은 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는 게 신기하답니다. 족자카르타의 흰두교 사원에서 ‘야호’를 외쳤고, 롬복의 핑크빛 모래에서 데굴데굴 굴러보기도 했습니다. 딴중 르숭에서 먹었던 이깐 고랭이 제일 맛있었고, 발리의 우붓에서 만났던 원숭이가 너무 귀여웠답니다. 조금 더 크면 ‘보르네오 오랑우탄 투어’와 ‘브로모 화산 트래킹’을 데리고 가주겠다고 아빠가 약속했습니다.
“나는 동물이랑 곤충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 하루 종일 매일매일 마음껏 동물들랑 곤충이랑 같이 놀 수 있잖아요.”
인도네시아는 진이에게 여느 한국 아이들처럼 선생님도, 과학자도, 연예인도 아닌 ‘동물 곤충 의사’라는 조금은 특별한 꿈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40여분 떨어진, 전교생 40여명의 작은 국제 학교 1학년입니다.
어느 날, 진이는 다른 때보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씨에나 엄마는 중국 사람이고, 미씨 아빠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고, 엘레나 엄마는 태국 사람이래요. 근데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둘 다 한국 사람이예요?”
“그러게... 엄마는 왜 결혼 전에 다른 나라 남자를 만나 보지 않았을까?”
“나샤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인도네시아 사람인데요, 그래서 나샤는 어떤 때는 미국 사람이 됐다가 어떤 때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된데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진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싶은 데?”
“인도네시아 사람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왜? 한국 사람인 건 안 좋아?”
“아니, 내가 한국 사람인건 좋은데... 언니가 말해 줬는데요, 우리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아니라서 언젠가는 여기서 살 수 없는 날이 올 거래요. 나는 한국에 가면 친구가 하나도 없고, 내 친구들은 다 여기 있는데, 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이 되면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되잖아요.”
“그럼 진이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아?”
“음... 가고 싶은데... 할머니도 보고 싶은데... 음... 이모네 아파트에선 뛰면 안 되고... 친구도 없고... 내가 제일 제일 좋아하는 사파리도 여기 있고...”
엄마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뭐라도 그녀의 걱정을 덜어 줄 시원한 대답을 해 주고 싶은데 딱히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진이에게 생긴 생애 첫 진지한 고민인데 말입니다.
대사관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다시 함께 버스를 타고 자카르타 북부 모나스 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벌써 뽀얀 아침 햇살이 빌딩들 사이로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꼬마가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일찍 이잖아요!”라고 잠시 짜증을 냈던 진이는 모나스 광장에 모인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넓은 모나스 광장이 비좁도록 꽉 메운 사람들과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군중들로 광장 안과 밖은 벌써 인산인해입니다. 진이는 긴장이 되어 언니 손을 꼭 잡았습니다.
‘ASEAN(동남아국가연합) 창립 50주년 기념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각자의 전통 옷을 한껏 차려입었고 퍼레이드를 위해 화려한 조형물도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심지어 경찰 아저씨들까지도 근사한 인도네시아의 사원과 전통 가옥을 테마로 한 차들을 몰고 왔습니다. 코코넛 나무만큼 키 큰 인형도 있고, 열대 우림을 옮겨 온 듯한 거대한 숲 마차도 있습니다. 진이 또래의 인도네시아 친구들도 예쁘게 화장을 하고 준비 중입니다.
사물놀이패가 악기 놀이를 시작하고 한국 팀으로 이목이 쏠리기 시작하자 덩달아 한복을 입은 작은 꼬마 소녀도 카메라 세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툰 한국 말로 함께 사진 찍자는 수줍은 언니도 있고, 예쁘다며 안아보겠다는 아줌마도 있고, 악수를 하자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언니가 진이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좀 덥긴 한데 우리도 한복 입길 잘했다 그치?” 언니는 기분이 꽤 좋아 보입니다. 진이도 긴장을 풀고 어른들이 주신 태극기를 흔들며 열심히 사진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가 말한 ‘한복 입고 하이킹’이 시작된 겁니다. 진이가 지날 때 마다 양 옆으로 빼곡이 모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꼬레아’를 외칩니다. 홍백기를 주며 태극기를 달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사물놀이 소리가 더 흥겹고 신나게 들립니다. 태권도복을 입은 인도네시아 오빠들이 길거리 공연도 합니다. 아빠 손을 잡고 태극기를 흔들며 진이는 힘차게 걸었습니다. 진짜 언니 말대로 한복을 입길 정말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따라 한복이 스파이더맨의 거미 옷처럼 자랑스럽고 든든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힘들고 짜증이 나야 하는 데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엄마는 이 퍼레이드에 진이를 데려오는 것으로 며칠 전 해주지 못한 대답을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진아, 봐. 멋지지?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잖아. 서로를 좋아하고 함께 기뻐하잖아. 어디서든 언제든 우리가 한국인인 것만 잊지 마. 그리고 너를 사랑해 주는 이 나라 사람들도 잊지 마. 어디에 사는 지는 중요하지 않아. 너의 가슴에 이런 좋은 추억과 사람들을 꼭 기억하고 있으면 돼.’
아직 어린 진이가 이런 엄마의 마음을 다 이해했으리라 엄마는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이가 감사하게도 이렇게 따뜻한 나라에서 자라고 있어서 엄마도 오늘 참 행복하게 걷습니다.
진이도 오늘은 미국인 아빠와 인도네시아 엄마를 둔 나샤가 진짜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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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벌써 일곱 해를 지냈습니다. 5개월, 27개월 된 아기들을 들쳐 엎고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를 탔던 날, 설레면서도 두려웠던 자카르타 공항의 그 뜨겁고 습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출산 전날 까지도 야근을 했을 만큼 치열했고, 늘 바쁜 계획들로 꽉 차있던 저였기에 ‘깜뿡 주부’로서의 생활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고... ‘어디서나 적응력 200%’라고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한국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면 찾아오는 우울함이 한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습니다. 무겁게 왔으나 오히려 가벼워진 곳입니다. 힘들게 왔으나 오히려 쉬워진 곳입니다. 걱정하며 왔으나 오히려 홀가분해진 바로 이곳, 인도네시아입니다.
이 상을 주신 분들과 저를 이곳에 데려와 준 우리 남편과 제 글의 소재가 되어준 씩씩한 두 공주들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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