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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인도네시아 이야기>학생부 대상 /발바닥이 뜨거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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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10-25 15:29 조회 16,48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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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인도네시아 이야기>학생부 대상 주ASEAN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소설)
 
발바닥이 뜨거운 아이
(Novel) AnakBertelapak Kaki Panas
 
성유림(JIKS, 12학년)
 
 
“유독 하늘이 맑네. 그 시절처럼.”
호준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곧 의자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가서 즐겨 마시는 Sari Wangi 홍차와 인도네시아 전통차인 메르모 차를 타서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늘따라 유독 어머니가 그립네요. 잘 지내시나요.”
이 말과 함께 호준이는 아주 어릴 적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마시고 있는 메르모 차가 자신을 과거 여행으로 이끄는 것처럼.
 
나는 친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내가 4살 때 함께 놀이공원을 가던 중 교통사고로 인해 두 분이 돌아가셨다. 어려서 뭘 잘 몰랐던 건지, 아니면 잊고 싶은 기억이어서인지 그 당시 외롭고 쓸쓸했던 기억이 없다. 다만, 그 순간 나에게 어머니가 영웅처럼 나타나던 순간은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내 친부모님의 친구 분이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셨다. 피부색이 달랐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맨발로 이른 아침부터 엄마를 쫓아다니며 다른 집의 일손을 거들었다. 점차 따가운 태양의 눈초리에 어머니와 피부색이 비슷해졌다. 어머니를 닮아가는 게 참 좋았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학교에 가는 대신 신문 배달, 빨래, 세차 등 그 나이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뜨거워진 발바닥만큼이나 고단했지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께 많은 것들을 배울 생각에 종일 들떠있었다.
 
잠들기 전, 어머니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사칙연산, 그리고 수많은 위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황홀함에 잠겼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붉게 타올라서 두근거리고 온몸이 따뜻해져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어머 세상에, 어린 애가 신발도 안 신고 대낮에 왜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래. 학교는 안 가나?”
“얘, 쟤 걔잖아. 4살 때 엄마, 아빠 죽은 그 애. 저기 저 아줌마가 자식처럼 키운다잖아. 꼬질꼬질하다 정말. 역시 친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자식이란.”
“쉿.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래도 애가 참 착하고 영특하고 바르게 잘 자랐던데.”
“그래도 고아는 고아지. 우리 애가 저런 애한테 물들까 봐 걱정이다.”
“얘, 말해 뭐하니. 당연히 걱정이지. 우리 동네 품격도 떨어진다니까.”
 
그래, 맞다. 우리 동네의 사람들은 우리를 아니꼽게 쳐다봤다. 어린 애라고 귀가 없는 것은 아닌데 다 들리게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나를 흔들지 못했다. 나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어머니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13살이 되었다. 나는 13번째 생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준아, 이리 와서 앉아 봐. 우리 호준이 케이크 먹고 싶다고 했는데 케이크는 못 사줘서 엄마가 미안. 가게 문이 닫혀 있더라고. 대신 엄마가 우리 호준이한테 아주 멋진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 상자 한 번 열어볼래?”
 
통장들이었다. 어머니가 번 돈을 모아 마련한 나의 대학 등록금이 들어있는. 순간 눈앞이 뿌예졌다. 입술을 꾹 물어서 참아봤지만,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볼이 화끈거렸다. 끅끅거리며 끓는 눈물을 삼켰더니 목이 부어올라 타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믿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받고 나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 되어서 어머니께 효를 다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밤낮으로 초등과정을 익힌 나는 마침내 14살에 중학교에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가 입학식을 마쳤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살았다.
 
시간이 흘러 18살이 되었을 때 햇빛만이 비출 것 같던 나의 인생에도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다.
 
“야! 호삥아! 너 고아라며? 으, 징그러워서 어떻게 생판 남이랑 같이 사냐? 소름 끼친다. 야, 그렇지 않냐 수영아?”
“하하…. 그렇지. 너 엄마 그거, 네 진짜 엄마랑 아는 사이도 아니야. 알고 있었냐?”
 
그때다 싶었는지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나를 놀렸다. 머릿속이 온통 새까매졌고 끝없이 혼란스러웠다. 잠시 생각한 후에 깨달았다. 그래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었다. 서로 말하지 않더라도 잘 느껴졌다. 여느 가족들과 다른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래. 어머니께서 나 말로는 표현 못 할 정도로 따뜻하게 사랑해주신다는 거, 당연히 잘 알지. 말 안 해도 곁에만 가도 어머니의 온기 덕분에 발바닥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소름 끼친 적 단 한 번도 없고 남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진짜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셔.”
“하, 참. 기도 안 차서. 뻣뻣하게 고개 치켜들고 큰소리치는 것 봐. 눈은 또 왜 저렇게 뜬다니.”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역시 뭔가 있는 게 틀림없네.”
 
아이들은 내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듯이 저희끼리 마저 수군거렸다.
어디에서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니 수많은 감정이 막을 수 없이 밀려 들어와서 나를 덮어버렸다. 결국, 그 날 학교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깊은 밤 불도 없는 깜깜한 숲 속에서 굳세어 보이는 나무에 기대어 생각했다. 나도 이 숲처럼 울창하게 이 나무처럼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때 마음을 먹었다. 나의 어머니가 어느 분이든 간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내가 반 친구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 대로라고. 그때의 나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차가운 아픔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 잠잠해진 폭풍이 다시 휘몰아칠 것만 같은 예감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도 어머니께서 활짝 웃으면서 대문을 열어주셨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듯했다. 포근하고도 따뜻한 어머니 냄새에 하염없이 안기고 싶었다. 그래서 얼른 문 앞에 신발을 벗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에게 어릴 적의 나처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가서 품에 와락 안겼다. 왠지 그날따라 내가 이럴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토닥여 주시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이상했다. 당황스러웠다. 정적이 흘렀다. 한참 뒤에 어머니께서 입을 떼셨다.
 
“호준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호준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먹먹해져 있었다. 나는 몸이 떨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사랑하는 아들, 엄마가 할 얘기가 좀 있는데 들어주겠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병원에 좀 다녀왔어. 요즈음 숨이 좀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싶었어. 그러다가 요 며칠 동안에는 기침이 너무 나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병원을 갔다 왔는데 호준아…… 엄마가, 엄마가 우리 호준이랑 같이 이렇게 있을 시간이 3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네?”
 
어머니는 애써 입 꼬리를 떨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볼에 눈물이, 아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에 아주 크고도 뜨거운 석탄이 턱하고 가로막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강하기만 한 줄 알았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호준아. 엄마가 옛날부터 하나 말할 게 있었는데, 이제 말하게 되었네. 너무 늦은 것 같아 미안하다, 호준아. 엄마는 너희 부모님을 몰라.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그냥, 사고 났을 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야. 119 부르려고 차 가까이 다가가서 의식이 있는지 확인하려 한 거였는데, 우리 호준이 잘 부탁한다고 너희 부모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 사랑한다고, 아껴달라고. 나름 최선을 다 해왔는데 아무래도 부모의 사랑에 견주어 본다면 많이 부족하겠지? 우리 남은 시간 더욱 행복하게 보낼래? 엄마는 치료받으면서 시간 보내는 것보다 우리 호준이 옆에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은데…… 괜찮을까, 우리 아들?”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잊지 못할 거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음속에서 증오나 배신감이 피어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스러웠고 덕분에 삶을 선물 받은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지쳐 잠들면서 나는 결심했다. 꼭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위인들의 이야기와 본인의 행동으로 한 평생 내내 보여준 봉사, 사랑, 배려를 나도 나의 삶이 다할 때까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홀로 꿋꿋이 버텨오는 그들을 위해 살아가야겠다고. 그들에게 나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누구보다 빛나던 나의 어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슬퍼서 한동안 나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힘들 때면 이제는 여기에 없는 어머니가 생각나서 괴로운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내가 이렇게 축 처져서 무기력하게 일상을 보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을 내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직도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며 살아 계신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나의 곁에서 언제나 묵묵히 힘이 되어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삶 속 곳곳에 어머니가 녹아 있었기에 나는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치열한 20대를 보낸 나는 본격적으로 꿈에 그리던 유엔난민기구 소속으로 일하기 위해 더 뜨겁게 30대의 초·중반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이곳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따뜻해진 흙을 온 발로 느끼며 어린 시절부터 나의 모든 추억이 담겨 있는 뜨거운 발바닥으로 서 있다. 아이들의 눈부신 미소를 보면 나의 마음마저 밝아지는 듯하고 사랑과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듯하다. 행복하다. 눈물이 날 듯 행복해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Jun, come on! Aren’t you done with your tea? Ayo, berangkat!”
창밖에서 나의 동료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하루도 어머니께서 주신 따스함을 세상에 나누며 뜨겁게 살아가자고 다짐을 한다. 으레 아침마다 해오던 나만의 의식 같은 다짐이었으나, 오랜만에 예전의 일이 많이 떠올라 유독 느낌이 싱숭생숭했다.
 
‘오늘도 살아낼 수 있는 이 따스함이 어머니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유산이 아닐까?’
오늘도 아이들과 적도의 나라에서 맨발로 뜨겁게 뛰어다닌다.
 
<수상소감 / 성유림(JIKS, 12학년)>
먼저, 저는 ‘발바닥이 따뜻한 아이’라는 소설을 작성하면서 즐거웠습니다.
여름 방학에 한국에서 우연히 발리 산골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 인도네시아 국제커플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닭볶음면을 처음 맛 본 시골 아이들과 함께 발리 산골마을의 일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발리로 친구들과,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은 많지만, 흔히 아는 관광 명소만 방문했을 뿐 발리 산골마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흥미로웠습니다. 발리 산골마을만의 소위 '생일빵’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고, 장작을 직접 모아다가 불을 피우는 소소한 모습까지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 영상에서 아이들은 모두 맨발이었으나, 뜨거워 보이는 땅바닥 위를 뛰어다니며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답게 늘 에너지 넘치고, 걷기보다는 계속해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저에겐 인상 깊었습니다.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보니 제 마음까지 따뜻해졌습니다.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늘 행복하고 활기 넘치게 뛰어다니는 모습. 성인의 해를 앞둔 저의 어린 시절을 짚어보며 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이런 정겨운 모습을 소설로 풀어내 사람들과 인도네시아의 따뜻함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잠시 생각에 잠겨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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