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문학상 / 밥 사주는 남자 (특별상 인도네시아 ANGKLUNG 예술가 SAM UDJO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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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7-11-15 11:51 조회 5,465 댓글 0본문
특별상 인도네시아 ANGKLUNG 예술가 SAM UDJO상
이건일 (PT. Cosmax Indonesia)
밥 사주는 남자
어느 날
그가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평범하지만 배려가 묻어나는
흰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는 볼 때마다 밥을 사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낯선 곳에 가서도
늘 지갑을 열어
밥을 사주었다
언제부턴가 그와 먹는 밥이 편안해졌다
밥상에 놓인 수수한 반찬처럼
이 얘기 저 얘기
울고 웃다가
서로에게 밥이 되었다
진수성찬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젊은 날엔
누군가의 밥이 되고 싶지 않아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이젠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주고 싶다
밋밋하고 슴슴하나
따뜻하고 든든한
밥이 되어주고 싶다
오늘
눈부신 적도의 하늘 아래에서
밥 한 숟갈 떠넘기다
그와 먹던 밥이 문득
그립다
시작노트
회사생활한지도 25년이 되어갑니다. 그 시간 속에서 많은 인연을 만났습니다만 유독 마음을 나눴던 분들이 몇몇 있습니다. 오랜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멘토가 되었던 분들을 그리워하며 쓴 시입니다. 한국을 떠나 자카르타에 와 있다 보니 그 분들이 새삼 떠오르고 고마운 마음에 글을 써 보았습니다.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같이 밥을 먹고 담소하고 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지만 또 들어다 보면 그런 행위 안에 우리 인생이 다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특히나 후배들에게 내가 받은 마음을 이젠 나도 되돌려 줘야 되지 않나 해서 써 본 글입니다.
자카르타 일기 이건일 (PT. Cosmax Indonesia)
- 시 쓰는 비즈니스맨
출근길이 바쁘다
오늘은 어떤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나
마음이 먹먹하다
매일 오가는 출근길이 늘 처음 보는 것 같다
뽄독인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들도
제각각 바쁜 얼굴
줄지어 선 나무들도 새삼스럽다
시를 쓰고 싶었던 청년은
머리 희끗한 장년이 되어
자카르타의 새벽을 여는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명치끝을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키면 곧
이슬람 사원의 새벽기도 소리
회사의 하루도 시작된다
지독한 자카르타의 교통체증
삼 십분 거리를 한 시간 너머 달리며
찌뿌리다가 찡그리다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다가
먼 곳을 바라보다가
아들의 문자에 슬몃 웃다 보면
드디어 회사, 반복되는 일상
오후 6시가 지날 때까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하루를 사는 날파리처럼
구만리를 나는 붕새처럼
봄여름가을겨울
하루한달일년백년이
오늘 안에 다 있다
시는 왜 쓰고 싶어 했던가
갈구하고 갈망하는 연어들처럼
비즈니스맨은 이제 막막한 바다에서
떠나온 것을 떠올려본다
나는 원래 무엇이고자 했던가
마음은 허공
시선에 힘이 없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똑같진 않음을 잘 안다
꽃보다 밝아진 하늘
표표히 흐르는 적도의 바람 속으로
출근길 마음에
시를 새긴다
무너지지 않을
마음의 기둥을 세운다
시작노트
자카르타에 2016년 2월초에 왔으니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적도의 땅, 자카르타를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끌어안으려 했던 적응기였습니다. 긴 팔 늘어뜨리게 하는 더위와 느리기 만한 인니 동료들. 반면에 늘 기분을 좋게 하는 하늘과 바람과 꽃들이 서로 뒤엉키며 지나간 먹먹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여기에 와 있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은 “나는 원래 무엇이고자 했는가.” 이었습니다. 이제 힘을 모아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그림을 수 놓아 보고자 스스로 다짐과 격려를 보내봅니다.
수상 소감
우선 부족한 작품을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쁩니다. 적도의 자카르타에 와서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는 막막함을 시로 달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시를 쓰는 일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명상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회사에서는 좋은 멘토가 되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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