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회 열린강좌 후기] 안미경 문화해설사의 ‘덕수궁이 품은 고종과 대한제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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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4-01-21 14:58 조회 451 댓글 0본문
안미경 문화해설사의 ‘덕수궁이 품은 고종과 대한제국 이야기’
글.박승헌(ACS Jakarta, G9)
2024년 1월 6일,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제85회 열린강좌가 열렸다. ‘덕수궁이 품은 고종과 대한제국 이야기’에 대한 주제로 진행된 이번 열린강좌는 지난해 1월에 진행된 제77회 열린강좌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경복궁 이야기’의 인기에 힘입어 두 번째로 진행된 만큼 많은 한인들이 참여했다.
강의를 진행한 안미경 문화해설사는 서울시도보관광 문화해설사이자, 마인어 관광통역안내사로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국제교류팀의 부원장을 역임 중이다.
강사는 미리 준비한 강의자료를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며 우리나라의 유일한 제국 국가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에 얽힌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일화와 사례를 통해 전달했다.
‘덕수궁’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1592년 임진왜란 후 선조임금 시기부터 대한제국의 시작인 1897년,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1905년, 그리고 1907년 을사늑약의 무효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대한제국의 헤이그 특사가 파견되었지만 실패로 끝나고 이 여파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궁호가 바뀌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어서 1919년 의혹이 많은 고종의 승하로 덕수궁이 실질적으로 문을 닫은 시기까지의 대한제국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세계사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놓였던 현실이 조금은 아프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1897년 고종이 아관에서 돌아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을 시작으로 현재 덕수궁의 정문으로 사용되는 ‘대한문’, 대한제국의 정전과 정전 앞의 문인 ‘중화전과 중화문’, 덕수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단청이 없는 ‘석어당’, 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함녕전’,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우리의 전통적인 한식과 서양건축양식을 절충하여 지은 ‘정관헌’, 황제의 편전과 침전으로 사용되던 ‘준명당과 즉조당’, 덕수궁의 하이라이트 근대식 석조건물인 ‘석조전’과 2023년에 새롭게 문을 연 ‘돈덕전’과 대한제국의 좌절과 국권수호 의지가 동시에 담긴 ‘중명전’을 소개했다.
안미경 문화해설사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말을 인용하며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덕수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문화와 역사를 배제한 경제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열린강좌가 85회에 이르렀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은 쭉 뻗은 직선의 기둥이다. 세련되고 유연한 곡선은 직선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한인니문화연구원을 받쳐주는 안미경 문화해설사의 역량을 평했다.
이틀 뒤, 자카르타 소재 UNAS(Universitas Nasional)에서 진행된 안미경 문화해설사의 경복궁 강좌는 비누스 대학교 학장과 학생 140명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앞에서 촬영한 BTS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면서 강의는 마무리되었고 학생들은 여운이 남는 듯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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