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 문화 연구원 사리나 쇼핑몰,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도네시아의 자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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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나 쇼핑몰,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도네시아의 자랑이 되다
박준영(한인니문화연구원 팀장/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요 도로인 수디르만 장군로(Jl. Jendral Sudirman)와 탐린로(Jl. M.H. Thamrin)에는 자카르타의 주요 건물과 상징물들이 줄지어 위치한다. 이중에서도 중심은 호텔 인도네시아 회전교차로(Bundaran HI)라고 할 수 있는데, 호텔 인도네시아는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며 지은 선수촌 건물이다. 이 교차로에는 당시 아시안게임에 참석하는 선수들과 관객을 환영하는 의미를 담은 환영 동상(Selamat datang(welcome) monument)이 있다.
한편 이 곳은 2019년 개통한 자카르타 지하철(MRT) 첫 노선(첫 번째 노선의 1차 개통 구간)의 종착역으로 정해지며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장소가 됐다.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회전교차로 인근과 전망대는 이곳을 찾은 방문객으로 붐빈다. 호텔 인도네시아 회전교차로에서 탐린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600미터 걸어가면 오른쪽에 사리나 쇼핑몰(Gedung Sarinah)이 위치한다.
이 곳에는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건물과 상징물들이 많다. 이 중에서도 사리나 쇼핑몰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그러나 1966년 개장한 사리나 쇼핑몰은 한동안 주변의 현대적 쇼핑몰과 호텔, 사무실 건물 사이에서 다소 낙후된 쇼핑몰로 여겨졌다. 그러다 사리나 쇼핑몰은 2020년 7월 재건축을 시작해 약 2년 후인 2022년 3월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장했다.
이 기간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 기간으로 쇼핑몰의 수익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사리나 쇼핑몰은 이 기간을 전략적으로 재건축에 활용했다.
▲사리나 쇼핑몰 전경과 내부
사리나 쇼핑몰의 운영 기업인 공기업 사리나 그룹의 사명은 특별한 사람의 이름에서 기원한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Sukarno)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에서 일한 가사노동자인 사리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수카르노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녀는 수카르노의 유년 시절 그의 집에서 노동하는 가사노동자이자 유년기 수카르노의 육아돌봄 노동자였다. 당시 수카르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지만, 당시 인도네시아의 농촌에서는 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입주 가사노동자로 고용하여 함께 생활하는 전통에 따라 사리나를 가사노동자로 고용했다.
수카르노는 사리나로부터 사랑에 기반한 인본주의를 배웠다고 표현한다. 사리나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반복적으로 강조했고, 이는 이후 수카르노의 통치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수카르노가 성장한 이후에도 그는 사리나를 계속 그리워했으며, 깊은 존경심을 간직했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여전히 존경받는 지도자이며, 그의 정신을 계승한 정당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그는 그의 이름보다 친근한 별명인 붕카르노(Bungkarno, 친구, 형제 등을 의미하는 친근한 표현인 Bung과 Sukarno를 합성한 표현)로 불린다. 1962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 이름은 Gelora Bungkarno이다.
이처럼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친근한 인식은 사리나로부터 배운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이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마음에 와닿은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리나에 대한 수카르노 대통령의 발언 (사리나 쇼핑몰 내부)
“그녀(사리나)는 나에게 사랑을 알도록 가르쳤고, 인민, 대중, 서민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1962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 이후 자신감을 얻은 수카르노 정부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국가의 경제적, 산업적 성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0년대에 인도네시아의 전통 상품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 수출하는 국영 기업을 만들었다. 이 기업이 바로 사리나 그룹이다.
당시는 인도네시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인도네시아를 재침략한 네덜란드와 독립 전쟁을 치른 이후 불과 약 10여년 지났을 때였다.
사리나 그룹은 1962년 8월 17일에 국영기업으로 창립했고, 사리나 쇼핑몰은 1966년 8월 15일 개장했다. 사리나 그룹에서 생산, 관리하는 인도네시아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쇼핑몰이 사리나 쇼핑몰이다. 즉, 사리나 쇼핑몰은 인도네시아판 ‘물산장려운동’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건물의 건축 비용은 일본의 인도네시아 점령 기간에 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충당했다(인도네시아는 약 3년의 일본군 점령 기간을 ‘식민지배’가 아닌 ‘점령’으로 해석).
사리나 쇼핑몰은 온, 오프라인 홍보물에서 스스로를 ‘인도네시아의 창’, ‘인도네시아의 위대함을 표현하는 무대’ 등으로 소개한다.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이 곳을 방문해보면 이러한 표현이 ‘근거 있는 자신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초대 정부와는 차별화된 개방적 근대화를 내세운 2대 정부가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이 기업의 목적과 운영은 유지됐다. 이로 인해 사리나 그룹과 사리나 쇼핑몰은 현재까지도 건재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리나 쇼핑몰에는 공산품 판매점 이외에도 다양한 식당과 카페, 그리고 전시 공간이 위치한다.
사리나 쇼핑몰은 총 7층 규모(지하 1층, 지상 6층)의 규모이며, 그 위로는 사무용 건물이 존재한다. 2022년 3월 재개장한 사리나 쇼핑몰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공산품과 식품, 그리고 전통을 모티브로 한 현대적 공산품과 식품 등을 주로 판매한다.
다른 국가의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자카르타의 여러 현대적 쇼핑몰 속에서도 사리나 쇼핑몰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전통 공예품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양, 기법, 상품 등을 통칭하여 부르는 바틱(Batik) 문양을 적용한 현대적 의류, 악세사리, 장식품 등을 판매한다.
사리나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여느 관광지에서 판매하는 허술한 기념품 수준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전문가의 감각과 기술이 느껴지는 수준급의 상품이었다. 4층에는 면세점도 있는데, 이곳에서도 주로 인도네시아의 전통 공산품과 식품을 위주로 판매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양각의 돌 조각품이 눈에 띈다. 이 조각품은 이 건물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있던 작품이며, 1960년대 당시의 인도네시아 상인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재건축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 보존됐다.
이 조각품 옆에는 사리나 쇼핑몰의 역사를 설명하는 작은 전시도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1980년대 한국의 수출품 전시가 이곳에서 열린 기록에 대한 사진도 크게 걸려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1층에서 2층으로(한국 건물의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사이에는 당시 사용했던 에스컬레이터를 보존해뒀다. 1966년 건물의 준공과 함께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당시 인도네시아 최초의 에스컬레이터였다.
뿐만 아니라, 사리나 쇼핑몰은 개장 당시 인도네시아 쇼핑몰 최초의 에어컨, 현금자동인출기 (ATM)를 갖춘 쇼핑몰이었다. 이는 사리나 쇼핑몰이 당시 인도네시아의 최초이자 한동안 최대 현대적 쇼핑몰로 자리매김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사리나 쇼핑몰 입구의 돌 조각품과 건물 역사 전시
올해(2023년) 6월까지 6층의 전시장에서는 자카르타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입장료는 약 4500원(50,000Rp) 정도이며, 다양한 그림과 설치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꽤 규모가 큰 전시였다.
인도네시아어 설명만 제공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어를 이해할 수 없는 외국인들이 이 전시를 관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자세한 설명 없이도 인도네시아 전통 예술의 현대적 재해석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사리나 쇼핑몰의 재개관을 홍보하기 위한 전시로, 사리나 쇼핑몰에서의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한다.
▲사리나 쇼핑몰 6층의 전시
2023년 1월 첫째주 평일 오전에 사리나 쇼핑몰을 방문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쇼핑몰에 방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사리나 쇼핑몰에서 소비하고 사리나 쇼핑몰 그 자체와 이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를 관람했다. 사리나 쇼핑몰의 상징적인 장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보아 사리나 쇼핑몰의 역사와 장소성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듯 했다. 점심 시간에는 사리나 쇼핑몰의 식당과 카페의 자리가 거의 가득 찰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사리나 쇼핑몰에 자신의 유년 시절 가사노동자인 사리나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사리나 쇼핑몰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인도네시아 생산 상품의 제작과 소비로 재해석했다.
자국 물건 소비 실천에서 ‘이웃’은 국민 국가의 범주로 제한되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해방 이후 자립(경제 발전)이 절실했던 당시에는 필요한 ‘사랑의 실천’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약 57년이 지난 현재, 시대의 변화와 조화하며 유지되고 있다.
이제 사리나 쇼핑몰은 단순히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과 실천을 넘어 현대 인도네시아의 역동성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장소가 됐다. 이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오랜 시간 누적된 사리나 쇼핑몰은 이제 인도네시아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창이자 무대가 됐다.
사리나 쇼핑몰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근대화, 산업화, 탈식민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역사를 지나 현재에 다다른 인도네시아의 자신감도 느낄 수 있다. 이 자신감은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상징하기도 한다.
2010년 이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중국에 이어 제2의 교역 대상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실시했고, 현재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아세안과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서도 핵심 교역 국가이다. 2021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아세안 교역액의 약 11%, 대 아세안 투자액의 약 20%를 차지한다. 한국은 인도네시아 및 아세안과 경제적 협력을 넘어 사회문화, 정치외교적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아세안은 한국에게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사리나 쇼핑몰은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측면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리나 쇼핑몰 방문은 인도네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정성스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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