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 문화 연구원 [칼럼 13]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와양박물관 Wayang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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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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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역사연구팀 >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와양박물관 Wayang Museum
자카르타역사연구팀장 조은아 (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 와양박물관 – 사진 : 자카르타역사연구팀
바타비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시내’라 할 수 있는 지역은 성으로 쌓고 해자로 둘러싸였던, 오늘날의 해양박물관(Museum Bahari) 부근의 어시장(Pasar ikan)을 포함한 아쎔까(Jl. Asemka) 지역에서부터 돌다리(Jembatan batu) 지역까지를 옛 도시라 할 수 있다.
1618년,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기술자였던 사이먼 스테빈Simon Stevin은 옛 시가지의 정비 계획을 VOC로부터 의뢰 받아 네덜란드와 닮은 ‘이상적인 도시’를 지도에 그려냈다. 폭 약 900미터, 길이 1,300미터의 마을로, 찔리웅강(지금의 깔리버사르Kali Besar)이 그 중심에 흐르고 있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튼튼하게 쌓은 보루와 많은 문이 있는 벽들과 운하가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바타비아의 중심에 지금의 역사박물관인 시청이 있었다.
그 시청을 등지고 서 바라보면 양 날개처럼 자리한, 자카르타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와양박물관(Wayang Museum)과 미술•도자기박물관 (Museum of Fine Arts and Ceramics (Museum Seni Rupa dan Keramik)이 있다. 왼쪽 날개가 바로 와양박물관이다.
호화로웠던 점령자들의 교회
‘Museum Wayang’이라는 새 파란 간판이 새 하얀색 벽과 대비를 이루지 않았더라면 눈에 띄지도않을 허름한 이 건물이 사실, 바타비아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화려했던 건물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건물은 1640년 VOC가 바타비아에 주둔해 있는 네덜란드 군인들과 유럽인들을 위해 세운 De Oude Holandsche Kerk(Old Dutch Church)이라는 교회였다. 1732년에 수리를 하고 De Nieuw Holandsche Kerk(New Dutch Church)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교회는 바타비아에서 가장 높고 시청보다 화려한 건물이었다.
이 교회의 일요일 예배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숙녀들에게 좋은 옷, 값비싼 보석 또는 하인의 수 등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인 사람들의 혼합 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기에 성공한 이들은 그들의 부와 권력을 뽐내기 위한 장으로 사용했다. 교회의 개보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협찬금을 내며 자신들의 부를 과시했다.
때문에 예배는 본연의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당연히 설교자들에겐 불편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신앙을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그들을 비난하고 때때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초기 교회의 모습 (사진 : Mitra Museum Jakarta)
▲초기 교회와 시청의 모습 (사진 – Mitra Museum Jakarta)
1808년 지진으로 교회는 무너졌고 당시 총독이던 디안델Daendels이 교회의 잔해들 마저 허물어버렸다. 1912년 네오르네상스 스타일로 다시 건물을 지어 올렸고, 1934년에 이르러 Geo Wehry Company가 창고,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1936년 8월 14일, 건물은 땅을 포함해 문화유산이 되었다.
1937년 바타비아 예술과학협회Bataviaasch Genootschap van Kunstenen Wetenschappen 가 구입하여 과학과 예술학 연구원으로 사용하면서 자카르타의 역사와 관련된 돌, 가구 및 그림 모음 등을 복원하고 보관하였다. 같은 해 건물을 Stichting oud Batavia기관에 넘기면서 VOC의 사진, 가구, 돌을 전시하는 De oude BataviascheMuseum(Old Batavia Museum)으로 바뀌었다.
1938년에 세워진 뒤쪽 별관 건물들은 교회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 건물이 철거된바닥에 새로 세워진 건물로 식민시대 네덜란드 가옥 모양으로 좁고 길게 지었다.
1939년12월 22일에 총독 Tjarda Van StarkenborchStachouwer가 박물관‘Oude Bataviasche Museum’으로 재개관하였다.
일본 침략기와 인도네시아 독립 혁명 시기에 이 박물관은 방치되었고 1957년 인도네시아 문화부가 이 건물을 관리하게 되면서 ‘오래된 자카르타 박물관Museum Jakarta Lama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0년 8월, 자카르타박물관Museum Jakarta이 되었고 수차례 관리주체가 바뀌다가 1962년 9월 17일 인도네시아 ‘교육•관광부’가 관리하게 되면서 드디어 정부 관리하의 박물관이 되었다가 1968년 6월 23일에는 자카르타 주정부가 맡으면서 박물관은 바로 앞 자카르타역사박물관Museum Sejarah Jakarta로 이전하였다.
1974년, 당시 자카르타 주지사 알리 사디낀Ali Sadikin은 바로 앞 시청 건물의 역사박물관으로 정식 오픈을 앞두고 이 건물을 와양박물관으로 설립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와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위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그리고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수집된 4000여점의 와양 관련 전시물들과 함께 1975년 8월 13일, 알리 사디낀은 와양박물관 개관을 선포한다. 파란만장했던 이 교회는 그렇게 와양박물관으로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자바인들의 혼 ‘와양’
와양은 자바지역의 전통 인형극으로 달랑Dalang이라 불리는 변사가 그림자막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며 구술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와양은 인형의 모양이나 형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인형이 아닌 두루마리에 그려진 그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와양 베버Beber, 화려하게 옷을 입힌 나무 인형을 긴 나무 막대에 매달아 조종하는 와양 골렉Golek, 동물의 가죽을 얇게 펴서 조각하고 색을 입혀 만든 와양 꿀릿Kulit, 와양 골렉의 몸에 와양 꿀릿과 같은 형태의 얇은 나무판으로 얼굴을 조각해 정교하게 채색하고 관객 앞에서 직접 공연하는 와양 끌리띡Klitik 등이 있다. 또 사람이 직접 분장하고 연기하는 것을 와양 오랑Wayang Orang이라 한다.
▲와양박물관 내부 (사진 : Museum Wayang 제공)
▲와양꿀릿
바타비아가 있는 자바를 대표하는 와양은 ‘와양 꿀릿’을 행해지는 그림자극이다. 하얀 스크린을 붙이고 그 뒷면에 램프를 비춘다. 스크린과 램프 사이에 와양 인형을 변사인 달랑이 여러 인형을 스크린 가까이에서 조종한다. 관객은 램프와 인형의 반대편에서 그림자극을 감상한다. 전통 음악인 가믈란 반주에 맞춰 인형을 움직이고 직접 효과음을 내며 스토리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스크린에서 멀게 하면 그림자가 커지고 희미해 지고 진다. 지금은 전기 램프를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코코넛 램프를 켜고 극을 진행했다.
아주 전통적인 와양 꿀릿 제작 방법은 염소나 물소가죽을 얇게 펴고 말려 만드는 데, 다 큰 염소 한 마리로 고작 2개의 와양만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관절이 마주하는 곳마다 구멍을 내어 연결해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그림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검은 그림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인형은 아주 다채로운 색으로 덧입혀져 있다.
원래 와양 공연은 조상의 영혼을 인형의 그림자에 머물게 해 섬기고, 현세의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림자가 보이는 앞쪽의 흑백 그림자 와양은 현세의 모습을 뜻하고 스크린 뒷면에서 움직이는 화려한 색감의 와양은 내세를 뜻한다. 전설과 신화가 가득한 인도네시아에서 그 옛날 자바인들의 정서와 혼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아름다운 전통극이다.
왜 하필 와양이었을까?
와양박물관의 본관에서 별관으로 이어지는 중간, 옛 교회의 마당에는 야외 무덤들이 있다. 왼편으로는 거기에 묻힌 9개의 네덜란드인 주지사들의 비문이 적혀있고, 오른편으로는 바타비아를 제2의 네덜란드로 세운, 악명 높은 얀 피터스존 쿤(Jan Pieterszoon Coen)의 무덤과 비문이 웅장하게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곳에는 쿤과 함께 네덜란드 총독 18명과 고위층 관리과 가족들의 돌무덤들도 자리하고 있다.
▲와양박물관 중간 마당 벽을 가득 채운 얀 피터스존 쿤(Jan Pieterszoon Coen)의 비문
바타비아를 피로 건설한 쿤의 묘지가 자바인들의 혼이 깃든 와양박물관 안에 그대로 보존 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화려한 색채의 와양꿀릿과 빛 뒤에서 보이는 그림자, 화려했던 지배자들과 착취당했던 토착인들의 혼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와양박물관이다.
쿤은 아직도 그들의 영혼적 지배를 꿈꾸고 있을까. 와양 인형들이 열대의 네덜란드를 꿈꾸는 자들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감수: 사공경
참고문헌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 사공경(2005)
[Historical sites of Jakarta] A.Heuken SJ
[Jakarta sejarah 400 tahun] Susan Blackburn
[Kehidupan Sosial di Batavia] Jean Gelman Taylor
Mitra Museum Jak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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