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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인터넷 문학상 / 놓치고 싶은 않은 사랑아 (우수상 KOICA 소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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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265회 작성일 2017-11-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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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아    
                             
                                                   안옥주 (JIKS 12)
 
 
#새벽
잘게 부서진 얼음이라는 별이 차가운 아메리카노 같은 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난다. 그 까맣고 커피처럼 쓴 하늘 아래 나는 온갖 이야기가 뒤섞인 꿈을 꾸고 있어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비몽사몽인 상태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새벽 4시다.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은 보통 새벽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시작된다. 더 자도 되겠다. 나는 부모님이나 동생이 행여 깰까하여 얼른 알람을 끄고 얼른 다시 피곤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잠을 청한지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소리로 인해 잠이 다시 깼다. 이 확성기 소리는 하루라도 날 깨우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 매일 열심히 날 깨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소리가 귀에 익었다. 서서히 잠에 들려고 하는 동시에 부엌에서 엄마와 아빠가 요리하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를 굽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꺼내는 소리, 무어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가 대화하는 소리. 난 잠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4시에 알람을 맞춘 내가 잘못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책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골목
내가 사는 주택 단지 바로 옆에는 한 현지 고등학교가 있다. 내 추측으로는 우리학교와 이 현지 고등학교는 등교 시간이 비슷하다. 나와 동생이 주택단지를 나올 때 즈음이면 길에는 항상 발목까지 오는 교복치마를 입은 여학생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남학생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끔 가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여학생들도 있다. 오토바이를 주차해 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대신 학생들에게 돈을 좀 받는 아주머니들도 종종 보인다. 이런 북적북적한 곳을 몇 대의 차가 지나간다. 하지만 신호등이 없는 이런 골목에서는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도로가 혼잡해 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경비 아저씨나 경찰 아저씨가 빨간 봉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도로를 정리 한다. 아니면 이름 모를 아저씨 혹은 소년이 손짓을 하면서 사람들이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도로 한복판으로 나서기도 한다.
 
 
#여학생들
항상 아침에 차를 타고 창밖을 볼 때 마다 눈 주변에 아이라인을 하고 입술에 틴트도 바른 나와는 다르게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현지 여학생들이 곱고 참해 보인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나와 내 친구들의 쌩얼이 즉 화장 하지 않은 모습이 더 예쁘다고 말할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그 때 당시에는 화장을 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더 예뻐 보였다. 또, 내 피부는 여드름이 잔뜩 나 있어 달처럼 울퉁불퉁하고 내 양쪽 볼은 목성처럼 불그스름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내 피부를 보여주는 것은 상관은 없었지만 굳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가꾼다는 생각으로 피부화장을 매일 하고는 했다. 그런데 고3이 된 지금의 내가 봤을 때, 창 밖에서 스쳐지나가는 여학생들은 자신의 여드름을 가리거나 입술을 빨간 립스틱으로 칠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자체로 예뻤다. 그 나이 때에만 나올 수 있는 순수함과 풋풋함이 학생들의 미모를 더욱 살렸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까무잡잡한 피부가 아름답다. 아니다. 아무 말이 필요 없다. 이유가 없다. 그녀들은 그냥 그 자체로 예쁘다.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은은하게 빛나는 달과 같은 교훈을 하나 배웠다. ‘꾸밈없는 상태가, 가리지 않은 한 사람 그 자체의 모습이 먹구름 사이에서 나오는 화사한 빛처럼, 진흙탕에서 피는 연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사람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웃음이 많다. 나는 가끔 차가 없으면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온다. 그 때마다 현지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단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여유로웠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먼저 다가와 나에게 친구를 하자고 하며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사진찍자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귀여운 모습들을 보면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이 현지인들의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와 관련되어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었다. 이웃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고 있는 도중 아이스크림을 오토바이 위에 올려놓고 파는 한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웃고 지나갔다. 근데 그 때는 너무 어렸던 때라‘저 아저씨 왜 저래?’라는 생각을 했었다. 도리어 난 경계심에 째려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가 참 당황했을 법도 했는데, 아저씨는 그저 흐뭇하게 웃으시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부드럽게 슝 하고 가셨다.
 
#내 삶의 일부 그리고 사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까마득한 어렸을 적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나시고랭과 소마이를 좋아하고 와룽(구멍가게)에 가서 500루피아, 1000루피아 되는 간식을 자주 사먹었다. 오후에는 현지 꼬마 아이들과 함께 옷이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자전거를 탔었다.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진 후 공기가 서늘해지면서 나무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부는 인도네시아 밤을 좋아했다.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부터 시작해 머리에 금요일 정오에는 흰 모자를 쓰거나 띠를 두르고 이슬람 사원으로 걸어가거나 사원에서 기도하는 현지인들까지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환경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부로 스며들어 나의 인생에 굉장히 무지개를 그려 주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인도네시아가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한국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제학교를 다녀서 그랬는지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인도네시아는 그저 내가 자랐던 하나의 ‘장소’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대학도 한국에 있는 대학으로 갈 것인데, 굳이 여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 필요가 있나 하며 등한시 했다. 그런데 난 새벽에 기도소리에 잠에서 깨 일어나고, 오전 6시에 정확히 해가 뜨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덕에 아침에도 현관문을 열면 1년 내내 푸른빛을 뽐내는 나무가 가득 보인다. 학교에 가면 현지 원어민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하교를 해 집으로 돌아오면 도우미 아줌마가 빨래를 개고 있다. 저녁 때 즈음에는 또 기도소리가 나고, 현지 꼬마아이들이 길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그저 머물다 가는 ‘장소’가 아니었다.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반쪽’ 이었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나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이다.
 
 
수상 소감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번 대회를 주최해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경제신문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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