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회 문화탐방 후기] 잘란잘란 글로독 -바타비아 차이나타운 > 한인니 문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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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326회 문화탐방 후기] 잘란잘란 글로독 -바타비아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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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323회 작성일 2019-04-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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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제326회 문화탐방
 
잘란잘란 글로독 -바타비아 차이나타운
                  
   정윤희 (한인니문화연구원 부원장)
 
 
거기, 동네 물소리 글로독 글로독 나는 있잖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1602-1945) 이였을 1688년에 구눙 살락 화산 대폭발이 있었다. 화산 재로 인해 찔리웅 강이 오염되었을 때 네덜란드인 들이 모여 살던 바타비아 지역 또한 콜레라와 이질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유독 글로독 지역에 모여 살던 중국인들 대부분은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 글로독 지역의 수질이 좋아서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믿었던 바타비아 지역 사람들은 2키로 미터 가량 떨어진 글로독에서 바타비아 (지금의 꼬따뚜아)까지 굵은 파이프를 설치하여 물을 끌어다 사용했다고 한다. 'Glodok'이라는 용어는 현재 자카르타 역사박물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1743년 경에 지어진 작은 팔각형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의 소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글로독에서 바타비아로 이어지는 수관 물소리를 흉내 내어 글로독 지명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2019년 3월 23일 토요일. 내가 속해 있는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글로독 문화탐방(이하 문탐)을 주최하였다. 거주지와 거리가 멀기도 하고 특별히 글로독에 갈 일이 없었던 나는 17년 인니 생활 중에 처음으로 자카르타 차이나타운을 방문하게 되어 나름 설레었다. 그것도 잘란잘란이라니.
 
세 명의 아이를 데리고 참가하는 나는 326회 문탐 단톡방에 공지된 대로 나름 철저한 준비를 하였다.  날씨는 덥고 길은 좁아서 힘이 들 수 있으나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운동화, 모자, 선글라스와 물, 간단한 간식을 준비한 배낭을 하나씩 매고 출발했다.
 
번째 탐방지, 문화유산 Candra Naya
아침 8시 집결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우리는 미리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앞쪽에 호텔이 위치하고 문화유산인 Candra Naya가 중간에 있으며 뒤쪽에는 복합 구조 상가와 아파트가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노보텔을 지으며 Candra Naya 문화유산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그 분위기에 맞추었다는 것을 올려다 본 2층 호텔 복도에서 알 수 있었다.
 
1800년대 중국 부유층인 Khouw Kim An의 자택 이였던 곳을 1946년 땅그랑 폭동 희생자를 돕기 위해 신명회(Hui Ming Shin)에서 빌려 갈 곳 없던 중국인들을 보호하며 거주하게 했었고, 1992년까지 거주 공간뿐 아니라 재단 사무실, 스포츠 연습공간, 학교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찬드라 나야 뒤 뜰 작은 연못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가 살고 있었고 건물 한 켠에는 불상을 섬기는 작은 방도 있었다.  불자인 나는 반가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살며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오늘 문화탐방에 오신 모든 분들과 인도네시아 문화를 즐기도록 해 주셔서 감사하고 모두들 아무 탈없이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번째 탐방지, Klenteng Jin De Yuan 불교사원 금덕원
1650년에 지어진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골목 사이사이에 있어서 우리 같은 외국인은 개인적으로는 찾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온통 빨강세상인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보았던 광경은 30센치 정도 길이의 굵은 향 3개를 들고 촛불에서 불씨를 옮겨 담고 있는 불자였다. 연기가 많이 나서 몇 년 전 라식 수술을 했던 나에게 눈의 따가움의 선사 하였지만 졸졸 따라 다니며 사진 찍는 내게 싫은 내색 안 하시고 열심히 기도만 드린 분께 감사 드린다. 
 
 
빨강연등 사이로 피라미드 같이 돌돌 말아 감겨있는 향이 보여  현지 관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전통 중국 향으로 한번 불을 붙이면 15일동안 탄다고 알려주었다. 한국 불교는 작고 얇은 향을 향꽃이에 꽂고 조심스레 기도드리는 반면 이 절은 긴 향으로 팔 동작을 크게 휘두르며 기도를 드린다.  향을 들고 기도할때 가까이에 있으면 안되겠다싶어 몇 걸음 물러났다. 난 겁쟁이.
 
1740년 중국 민족 학살 때 이 사원 또한 화재 피해를  입었지만 1755년 재건되었다.  사원의 길을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눈이 매워져서 원인을 찾아보니 곳곳에 3미터 높이의 큰 화로에 종이를 태워 쉴세없이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신을 모시는 각각의  칸막이가 있는 곳에서도 여기저기 향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음력설 같은 특별한 날에는 연기가 너무 심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고 사공경원장님의 설명이 추가 되었다. 화로 앞에서 한 여성이 노랑색 종이를 한뭉큼 들고 태우고 있길래 물어보니, 소원 성취 종이이고 돈을 주고 구입한 다음 소원을 빌며 이 파고다 같은 화로에서 태운다고 하였다. 
 
 
‘탁, 탁, 탁’ 소리가 난다. 한 불자가 나무조각을 바닥에 던지고 또 다시 주워서 던진다. 한국 절에서 그러면 혼이 날 듯싶은데 이 곳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의문이 생긴 나는 ‘실례합니다. (Permisi)’로 시작하여 질문을 해 본다. 본인 기도에 대한 점을 치는 것이라고 하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점을 치는 나무는 자석이 들어 있는지 두 개를 붙이면 자동으로 붙는다. 포개진 두 개의 나무를 던져서 한쪽만 뒤집어 지면 기도를 들어주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다는 뜻이고, 두 개가 다 바깥쪽으로 뒤집어 지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두 개가 다 안쪽으로 뒤집어 지면 그냥 웃어라 라는 뜻이라 한다. 노코멘트 의미인가.
중학생 아들 키만한 초 들도 길게 줄을 서있었고 절을 지키기 위해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의 사천왕들 주위에 쌓여있는 쌀 포대들도 보였다. 사원 정원에는 몇 년이나 되었을지 모를 아주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아래 잔디에는 금연이라는 표식은 없고 ‘꽁초를 잔디에 버리지 마세요’ 라고만 되어 있었다. 사원 앞마당 바닥에 누워 있는 현지인들을 보며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쩐지 애잔했다.
 
 
번째 탐방지, Gereja Katolik Snata Maria De Fatima
불교사원 같은 천주교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마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보니 성당이 맞는데 바깥쪽에 중국 사자 2마리가 새겨져 있어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차이나 타운에 있는 독특한 가톨릭 조합성당 이구나 싶었다.
 
 
원래 중국 부유층 개인 소유의 집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는데1995년 가톨릭 교회가 구입하였다고 한다.  성당 내부 벽에는 14개의 액자 속에 예수님이 사형선고 받고 부활하시는 14처가 순서대로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가톨릭성당임에 틀림이 없다.  성당 마당에는 철재로 만들어진 종 탑이 있었는데 연구원 답사 팀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저녁 노을 속에서 종이 울리고 있었다고 했다.
 
 
번째 탐방지, Klenteng Toa Se Bio 성전
1740년 중국 민족 학살 때 생존한 Cheng Goan Chengkun 상이 사원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카르타에 있는 오래된 사원중의 하나로 불상도 있고 한국처럼 연등도 있었다. 신도 아닌데 동상을 두고 기도를 드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인 대학살 시대에 살아 남았다 하는 것은 그 시대에  Cheng Goan Chengkun 이 상당한 인품을 가진 사람으로써 이 지역에서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고 후손도 그처럼 살아라 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성전에는 18개의 다른 재단이 있고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제단 위에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곳 또한 1740년에 식민지 학살과 대규모 방화로 손실되었다가 1751년 재건되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입구 왼쪽에는 특별한 장소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유리 칸막이에 손바닥 만한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불상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세월의 흐름과 관리소홀을 알려주듯 쌓여있는 먼지로 인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화재 당시에 손실되지 않은 4개의 기둥과 이 불상을 따로 보관 하고 있다고 하였다.
용을 좋아하는 나는 화재 당시 불에 타지 않고 견디어 준 기둥을 감싸고 있는 용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의지가 담긴 용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하고 기도했다.
 
다섯 번째 탐방지, Pasar Petak Sembilan
탐방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 현지 시장탐방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어디든지 원하면 갈수 있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시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잘 다니지 않게 되는 곳이라 어떤지 궁금했었다.
우리는 사공경 원장님의 길잡이 안내에 따라 이미 인도네시아의 복잡하고 좁은 골목들을 한바탕 돌아 다닌 후라 겁도 없어지고 전부터 구경하고 싶었던 곳이라 무엇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구경하였다. 북적거리는 시장거리를 둘러보며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다를 바 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은 생기가 도는 진정한 서민의 장소이구나 싶었다.
 
뒤쪽 입구로 들어간 우리가 처음 마주한 곳은 작은 식당들이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았지만 점심장사 준비하는 바쁜 시간에 하나씩 물어보는 것이 상인들에게 민폐인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어느 식당 한 켠에서는 기름진 프라이팬에 물을 끓이며 지푸라기 뭉치처럼 생긴 도구로 뜨거운 물을 휘휘 저으며 닦고 있었다. 위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니 몇 개의 작은 액세서리 가게와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추억의 카세트 음악 테이프를 파는 상점이 나왔다. 
그 뒤로 이어지는 노점상 간식들도 맛있어 보이고 야채, 과일도 싱싱해 보인다.  3개의 시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시장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야 했다.  3명의 아이들 모두 잘 따라와 주는지, 뒤에 오시는 분들은 너무 멀어져서 무리에서 이탈 되지 않는지 체크하며 바쁜 시간이지만, 여성 특유의 멀티감각으로 시장을 스캔 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다음 시장은 찻길 건너 골목에 있었는데 첫 번째 시장이 일반 식료품 시장이라면 이곳은 여러 가지 잡화용품을 취급하는 시장이었다. 시장 입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일반 노점 매장들과 다르게 문이 닫혀있는 가게 하나가 보인다. 100여년의 시간을 글로독 차이나타운 시장과 함께 해왔다는 이발소가 위치해 있었다.  이발소 안을 들여다 보니 세월을 말해주듯 이발사도 백발, 대부분의 손님들도 머리가 하얀 백발이다. 오래된 단골 손님인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몇 남지 않은 친구가 아닐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잡화상을 구경한다. 가루로 된 개미 해충 약을 구입하시는 회원님께 사용법을 알려드리며 상인과도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바닥 스크래치 방지를 위해 가구 다리에 끼는 여러 가지 모양과 사이즈의 고무들, 열쇠고리, 마사지 도구 등등 많다.
 
하나뿐인 시장길 따라 가보니 맛 집이라고 소문난 인도네시아 라면 파는 식당이 있었는데 원래 맛 집은 외관보다 미각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지만 단체활동이기에 시간 관계상 시식은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마음먹고 패스.
시장 끝자락 즈음에 있는 과일 상에서 자그마한 크기의 귤 한 다발을 4만 5천원 루피아에 구입하여 탐방 하시는 분 들과 달콤한 귤을 나누어 먹고 발길을 돌려 다시 시장 입구로 갔다. 입구에 위치한 시장 규모에 비해 나름 큰 사탕상점에서 평소에 자주 사주지 않던 사탕을 아이들에게 직접 골라보라고 했다. 많은 종류의 사탕 중에서 어떤 것을 살까 재잘재잘 의논하며 고민하는 세 명의 아이들을 보며 즐거웠다.
 
다음 시장을 들어가자 마자 아이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햄스터와 거북이, 물고기였다.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중에 “엄마 이거는 안 사줘도 돼 “라고 한다. 다행이다.
그 옆으로 커다란 레몬같이 생긴 것을 팔길래 냄새를 맡아보니 발리에서 유래된 과일로 자이언트 귤처럼 생긴 깔끔한 맛을 내는 즈룩 발리였다. 거북이 상인이 함께 취급하는 물건인지 즈룩 발리 과일껍질을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있어서 아이들과 보며 웃었다. 그 옆에서 끌라빠(코코넛)로 만든 국화빵 같은 천연맛 빵을 구입하고 시원한 인도네시아 티도 한 팩 사 마시며 더위를 조금 식힌 후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 년 전까지도 자카르타에 있는 마트 생선코너에서 보이던 개구리 다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는데 여기 시장에서는 턱 하니 살아있는 개구리가 묶음으로 팔리고 있었고, 꼬꼬닥 하는 소리에 쳐다보니 생 닭을 잡는 것도 보였다. 식용 달팽이, 해삼, 파인애플, 바틱, 중국 전통 옷, 한약재, 돌아다니는 수건 팔이 상인 등등 사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 마음 놓고 구입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섯 번째 탐방지, Pantjoran Tea House
더운 날씨에 시장을 돌아다니고 난 후라 목도 말랐고 점심시간도 다가와서 허기도 느낄 즈음에 도달한 레스토랑이 반가웠다.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두어서 식당주인인 Lin Che Wei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티 하우스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었다.
글로독 지역의 구글 지도에 추천 식당으로 나올 만큼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Glodok Chinatown의 랜드마크인 빤쪼란 티 하우스는 1635년 약국으로 설립된 384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28년 청화 Chung Hwa 약국(자카르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약국)으로 되었다가 2015년 TEA HOUSE라는 레스토랑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티 하우스 시작은 옛날Batavia 지역 VOC(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하던 까삐딴 간 지 (Kapitan=대장, 캡틴 Gan Djie) 라 불리는 남편과 부인이 가난한 행인들과 상인들을 위해 매일 8 개의 차 주전자를 준비하여 무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Patekoan으로 알려 졌는데, Pa = 8(중국어)이고 Te-Koan = 주전자(인도네시아어)라는 의미로 8개의 주전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문화탐방 팀이 방문 했던 그 날도 여전히 이 티 하우스 앞에는 8개의 주전자와 컵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VOC에서 일했던 일본식물학자 Andreas Cleyer가 차를 인도네시아에 처음 소개하였다고 한다. 그는 1684년에 일본에서 차 종자를 가져 왔고, 17세기 바타비아의 운하, 티지 그 라흐트 (Tijgergracht) 주변에 심었다고 한다. 글로독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곳에 차 농장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관상용 이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식용으로 차를 재배하였다고 하여 그 지역 주변에 중국인들이 더욱 더 차를 즐기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질과 콜레라의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 때 유난히 중국인 희생자는 적었던 이유는 뜨거운 물로 차를 우려내어 마시던 중국의 전통이였던 것이다.
Tea House 입구 왼쪽 벽에는 한약재를 담았을 듯한 빨강색 바탕의 검은색 한자가 적혀있는 서랍장들이 높은 천장까지 있었다. 계산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창문으로 길이 보였다. 이 찻집을 기준으로 왼쪽은 바타비아 오른쪽은 글로독으로 나뉜다고 한다.  이 찻집이 글로독과 바타비아 관문인 셈이다.
 
조금 후 미리 주문해 놓은 음식이 나온다. 닭 한약 탕 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한방 향이 나는 리틀 삼계탕으로 오늘 하루 피로의 보신을 하고, 딤섬과 중국 전통 차를 마시고, 이어 나오는 보라색 비트로 색을 낸 해물 볶음밥, 닭고기 콩 볶음을 점심으로 먹었다. 열심히 따라다니던 아이들도 배가 고팠는지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이 식당의 딤섬이 특히 맛있다며 탐방이 끝난 후 추가로 주문하여 먹었다. 이것으로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준비한 인도네시아 글로독 지역 마지막 문화탐방 코스를 의미 있게 끝냈다.
 
 
보너스 문화탐방. Batavia Café
Tea House에서 15분정도 걸어가면 파타힐라 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 편에는 프랑스 대표적인 여행정보 책인 미슐랭에 기재된 세계 추천 TOP 100 식당 중 하나인 바타비아 카페가 있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이 거울로 되어있다고 더 유명한 곳이다. 역사를 자랑하듯 많은 사진의 액자가 있고 인도네시아를 찾는 여행객은 꼭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 중 하나이다. 바타비아 카페에서 시원한 주스를 주문하고 파타힐라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를 보면서 그 옛날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상상해 본다. 오늘 문화탐방 코스였던 글로독 지역에서 이어지는 물이구나 하며 배운 것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색색의 대여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노랑 머리의 외국인 배낭족들, 오른쪽의 와양 박물관과 바타비아 카페 맞은편에 위치한 역사 박물관, 그리고 왼쪽의 예술박물관을 보며 자카르타에는 갈 곳이 없다고 하는 한인들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이였을 때 공개처형장으로도 사용했던 파타힐라 광장은 더 이상 공포의 장소가 아닌 역사를 담은 관광지로써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세 명의 아이들은 광장에서 1만 5천 루피아에 구입한 버블을 불며 바람에 날리는 버블과 함께 뛰어다니며 웃음 짓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화탐방은 나에게는 한동안의 힐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많은 역사와 문화가 있는 인도네시아를 사랑 하는 분들과 다시 만날 기회를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참고: 326회 잘란잘란글로독 문탐 팸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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