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 문화 연구원 [제339회 문화탐방] 끄망,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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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회한인니문화연구원 제339회 문화탐방]
끄망,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추은진 (한인니문화연구원팀장)
- Museum Di Tengah Kebun
- Dia.Lo.Gue Arts Space
- Duta Fine Art Foundation
비가 올 듯 말 듯 촉촉한 토요일 아침, 한인니문화연구원(IKCS)에서 진행하는 339회 문화탐방은 자카르타남부의 끄망(Kemang) 지역에서 열렸다. 끄망 지역은 구석구석 작은 소품가게와 갤러리, 가구점들이 많은 곳으로 외국인이 자주 찾는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즐비해 밤이 되면 인도네시아 젊은이들로 붐빈다. 아쉽게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우기철 상습 침수지역이기도하다. Kemang이라는 이름은 습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망고나무의 한 종류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원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 숨겨진 작은 박물관과 문화예술 공간, 그리고 갤러리를 순회하는 이번 탐방은 인도네시아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연구원 윌리암(William) 국제교류팀장과 김경애 선생님께서 통역과 해설에 도움을 주셨다.
<Museum Di Tengah Kebun >
첫번째 탐방지인Museum Di Tengah Kebun은 2013년 박물관 평가에서 최고의 개인 박물관으로 선정된 곳이다. DKI 지방정부로부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두 번이나 상을 받은 곳으로, 인도네시아 및 해외 예술 작품 및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3,500m² 면적의 부지에 지어졌는데, 입구가 잘 눈에 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전시공간이자 거주지인 Museum Di Tengah Kebun은 소유주의 의도대로 건축되었고 전시되어 있다. 역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80,000개의 벽돌로 건물을 지었는데, 그중 65,000개는 바타비아의 동인도회사 건물에서 가져왔으며, 15,000개는 1896년에 지어진 기상청 건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집안 문들의 경첩은 찔리웅(Ciliwung)강에 있었던 부낏두리(Bukit Duri) 여자교도소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헬레니즘석가모니상/ Gandara지역, 2세기경 가장 인상적이었던 유물.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리스인들의 눈으로 표현한 모습이다. 동양의 사물과 신비주의를 서양의 스타일과 기술로 결합한 것으로 해석된다.
Museum Di Tengah Kebun의 주인인 중부자바 출신의 샤리알 잘릴(Sjahrial Djalil, 1940~2019)은 인도네시아 현대 광고계를 이끌어가던 중요한 인물로, 광고대행사 Ad Force Inc.를 설립한 사람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고대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30대 때부터 취미로 유물을 수집했다고 하는데, 대부분 본인이 해외여행 중에 직접 구입하거나 유럽, 미국, 홍콩,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경매를 통해 모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함께 즐기기를 원했던 Djalil은 자신의 집과 컬렉션을 공개하기로 결정, 1990년 자신의 거주지였던 이곳을 박물관으로 등록하였으며, 현재 이곳에는 그가 세계 63개국과 인도네시아 21개 주로 부터 수집한 2000여 점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수집품들이 전시 및 보관되어있다.
Museum Di Tengah Kebun은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하며,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하고, 개인 가방도 맡겨야 한다.
내부의 모든 가구 및 소품 하나하나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품이기 때문이다. 집 내부의 거실, 식당, 서재 심지어 화장실까지 모두 전시실로 사용되며 그 안의 전시물 중Sjahrial Djalil이 가장 우선시하는 수집품의 이름을 따서 전시실 이름을 붙였다.
각 전시실마다 다양한 종류의 수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국 한 박물관 전시물과 한쌍을 이룬다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테라코타, 이집트 무덤에서 가져온50여개 세트 중 하나인 작은 셉티수호석상, 모로코에서 발견된2억3천만년 전 쥐라기 시대의 조개화석, 독일 프로이센빌헬름2세의 초상화등등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전시품들이 많았다.
해외에서 온 수집품 외에도 솔로(Solo)왕궁에서 가져온 침대, 중부자바(Jawa)에서 발견된 금강수보살상, 또라자(Toraja)지역에서 가져온 관뚜껑 등 인도네시아 여러지역에서 온 것들 또한 다양했다.
세계곳곳에서 만들어지고 발견된, 여러시대를 망라한 갖가지 종류의 수집품들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도네시아의 국가이념과 닮아 있어서Museum Di Tengah Kebun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수 있었다.
관람의 마지막 순서인 뒤뜰은 ‘가네샤(Ganesha)정원’이라 불린다. 이름대로 그 중앙에 거대한 가네샤상이 있는데, 9세기 중부자바의 유물로 그 시대의 작품 중 가장 큰 것이라 한다. 미완성된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이 박물관에서 가장 값비싼 소장품으로 알려졌는데, Djalil은 이 석상을 얻기 위하여 이것이 발견된 지역에 학교를 건립해주었다고 한다.
정원은 가네샤 이외에도 136개 종류의 꽃, 1200그루 이상의 야자수, 109개의 다양한 크기의 돌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박물관의 주인이자 2000여점의 유물들을 수집한 Sjahrial Djalil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오래 즐기지 못했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그의 침실 전시실 천장에 그려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은 투병 중이던 그를 위한 치료 목적의 그림이라 한다. 2019년 눈을 감은Djalil은 그의 바램대로 자신의 집, 박물관 안 정원에 자리하게 되었다.
<Dia.Lo.Gue Arts Space>
다음 탐방지는 맛있는 음식과 예술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Dia.Lo.Gue Arts Space이다. 음식과 예술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주제이지만,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곳이다. 자카르타 지역 버따위(Betawi) 언어로 그/그녀(Dia), 당신(Lo), 나(Gue)라는 의미로 지어진 낭만적인 이름은 지역사회의 협력과 대중의 참여, 예술가들의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예술 플랫폼을 지향함을 반영한다고 한다.
끄망 남부에 위치한 Dia.Lo.Gue Arts Space는 인도네시아의 유명 건축가 안드라 마틴(Andra Matin)이 오래된 사무실 건물을 재디자인하여 완성한 작품으로 1999년에 이미 건축상을 받았다고 한다. Arts Space로는2010년에 오픈했으며, 빈 공간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전시되는 작품에 따라 건물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현재는“Cerita Kaca”라는 제목으로 유리페인팅 전시가 진행 중이다. 유리페인팅은 14세기에 유럽에서 시작했으며, 17~18세기 왕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중국•인도•중동지역으로 전파되었다.
19세기에는 무역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에는 유리페인팅이1840년대에 중국으로부터 발리에 처음 들어왔으며, 이후 자바에 전파되었으며 찌르본이 그 중심이 된다. 특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신질서 엘리트들의 지원과 중산층의 관심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부족해졌고 예술가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이에 Dia.Lo.Gue Arts Space를 운영하는 그래픽디자이너로 유명한 딴질(Tanzil)선생님과 부인 엔젤 여사는 이 전시회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민속예술인 유리페인팅의 역사를 알리고 문화유산으로서 그 기법을 보전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5년 동안 준비하고 기획하였다.
유리페인팅은 일반페인팅과는 다르게 유리의 뒷면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그려진 뒷면이 아닌 앞면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렇기때문에 넓은 면적을 칠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쌓아올리는 채색이 아니라 반대로 강조되는 부분을 먼저 그리고 그 뒷배경을 칠하는, 부분에서 전체로 덮어 올리는 채색이 이루어진다.
독특한 기법,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로 완성된 그림들은 명암이 표현되지 않아 한컷의 Cartoon(만화)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감상하는 그림은 얕은 입체감이 보이면서 그 자체로 액자에 넣은 것 같이 보였다.
여러 수집가와 박물관으로부터 엄선해 가져온 유리페인팅은4월11일까지 전시된다. 작품들은 여러 테마로 나뉘어 구역별로 전시되었는데,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와양, 중동 이슬람 문화와 인도네시아 현지 문화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종교적 테마, 민속예술, 유리페인팅의 다양한 기능 등이 그 주제이다.
<Duta Fine Arts Foundation>
마지막 탐방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컬렉션을 소유한 Duta Fine Arts Gallery이었다. 인도네시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며, 한인니문화연구원 관람시에는 특별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박물관 전시관까지 개방해 주기도 한다.
주차장에 내려 아치형 정문을 지나면, 마치 지중해의 집처럼 붉은 기와지붕과 베이지색 벽으로 된 건물이 등장한다. 왼쪽 건물은 상설전시실, 길을 따라 쭉 들어가 건물 사이를 지나면 아름다운 중앙뜰이 나오고 그 뒤에 기획 전시실이 있다. 정문 오른쪽에는 상당한 규모의 아랍풍 대리석 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개방되는 수장고이다.
1986년 3월 당시 문화교육부장관이었던 파웃 하산티(Fuad Hasanti)에 의해 개관된 Duta Gallery는 40년 가까이 국제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나 역사적인 작품을 전시, 여러 예술품과 인도네시아 예술에 관한 기록을 수집해오고 있다. 솔로 출신으로 에너지회사 회장인 Wiwoho Basuki와 꽃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인 부인 Kartini Basuki가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다.
두타재단의 이사인 하멜(D.Hamel)을 빼놓고는 두타를 이야기할 수 없다. 화가이자 큐레이터, 작가이면서 배우인 프랑스인Hamel은 1986년 갤러리 설립부터 함께 했던 인물이다.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건너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위해 예술을 소개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는데, Duta Gallery 역시 인도네시아 대중에게 예술작품을 홍보하고 지역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재단이다.
Hamel은 1980년대에 많은 인도네시아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 50여권의 책을 출판한 다작 작가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강조하였으며,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정신과 전통이 살아있는 인도네시아를 높이 샀다. 두타에서 키운 많은 작가중에서도 존반데어스테렌(John van der Sterren)은 대중들에게 많이 사랑받는 작가이다.
▲ Hamel의 작품
상설전시실을 지나, 기획전시실 그리고 특별수장고로 이어지는 관람길에는 많은 그림들과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자친구를 모델로 한 Trubus Soedarsono의 흉상에서는 손끝 하나하나의 애정이 느껴지는 듯 했고,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시키는 현대적 감각의 그림,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등 개성 넘치는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이 흥미로웠다.
바틱그리기를 즐겼던 Sukamto의 민화풍 그림은 바틱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전통적 주제를 새로운 양식과 결합하려는 시도가 보였으며, 서민들의 일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Bonny의 작품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사랑한 외국작가들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 예술활동이 어려웠던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신하여 이 땅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아왔다.
유독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Pierre Guillaume은 발리의 시장과 상인, 모래사장의 아이들, 관광객 등 해변의 모습과 자연의 논밭을 주로 그리는데, 그가 그려낸 알록달록한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실, 인도네시아의 자연은 이렇게 따스하지 않다. 사시사철 싱그러운 푸르름을 넘어서, 약간은 단조로운 푸르죽죽함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화려한 색감으로, 아련함과 향수를 자아내며, 은근히 타오르는 뜨거움을 이끌어 내는 것은 인도네시아를 향한Guillaume의 애정일 것이다.
제339회 문화탐방은 우리 주변의 역사, 문화, 예술을 찾아보는 여행이었다.가까이에 있다고 당연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한걸음 다가가 들여다 보아야 보인다. 보고 느껴야 알게 되고, 그래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끄망 곳곳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나선 오늘 탐방이 우리가 인도네시아로 다가가는 큰 한걸음이 되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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