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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인터넷문학상/ 학생부 대상 (주ASEAN 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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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838회 작성일 2017-10-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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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밭 뒷골목에서 
 
홍수빈 (JIKS 11)
 
# 1
체육시간이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몇씩 짝을 지어 우르르 나가는 애들 가운데 나 혼자 운동화를 대충 꾸겨 신고 야외로 나가고 있었다. 방금 밥을 먹었는데 체육을 해야 된다는 게 별로였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할 생각도 없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이지아가 보였다. 그것도 2-3살 많은 현지 남자애들에게 둘러 쌓인 채로. 그냥 지나갈까 싶었지만 지아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데 오빠 된 도리로서 어떻게 모른 척 할 수가 있을까. 괴롭힘 당하는 것 같아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야 이 개새끼들아!” 아버지가 자주 입에 올리던 욕을 하면서 달려가 한 놈의 멱살을 잡았다. 그대로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있는 힘껏. 달랑 삼촌 하나 믿고 시골로 온 엄마에 대한 화라도 풀듯이. 
이게 일주일 전 얘기다. 누군가가 불러 온 남자 선생이 나를 들어 옮겨 싸움이 끝났다. 그 일 이후 학교에서 나는 문제아로 찍혔다. 학교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나를 피했다. 복도에 지나가기라도 하면 지들끼리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이 여간 꼴사나운 게 아니었다. 선생님들도 은근히 나를 불편해 했다. 그래. 혼혈인 전학생이 전학 온지 2주만에 지네 나라 애들을 팼는데 좋게 보일 리가 없지. 다행히 엄마는 가게 일이 바빠 이 사건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엄마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관심도 없는데 뭘.
육 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한국에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높은 포부를 가지고 엄마의 고향인 인도네시아에 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던 동업자는 배신을 했다. 무슨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얘기였다. 엄마는 예민해졌고 아버지는 난폭해져 욕설이 늘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는 다툼이 잦아졌다. 아버지와 엄마가 이혼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만 결국 우리는 떨어져 살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아버지는 아직 우리가 살던 찌까랑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엄마의 고향에 와서 현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전에 엄마 아버지가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인도네시아에 한인 학교도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다닐 수 없는 모양이다. 몇 달 만에 다니게 된 학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 때문에 기초 단어나 하는 것이 그만이었기 때문에 말도 안 통했다. 5학년인데 인니어를 못한다고 4학년으로 들어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이것저것 답답하다. 지아 녀석은 아직 1학년이라 별 생각 없는 지, 마냥 좋아 보인다. 멍청한 녀석.
 
# 2
아무래도 학교에 정 붙이기는 그른 것 같다. 가끔 애들이 말을 거는데, 말을 시키면서도 흠칫거리는 꼴이 거슬려 한번도 답한 적이 없다. 매섭게 올라간 쌍꺼풀 없는 눈에 아빠를 닮아 한국인스러운 외모가 한 몫 더하는지 되물어보는 경우가 없었다. 아빠 말고 엄마를 닮았으면 더 잘생겼을 것은 물론이고 이 나라 애들과도 낯가림 없이 더 잘 지내려나. 아무튼, 지금도 계단에서 뭐라고 말을 거는 같은 반 남자애를 무시한 채 지아를 데리러 1학년 반으로 가고 있다. 반 앞에서 기웃거리다 보면 항상 지아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올 생각이 없다. 다른 애들은 우르르 몰려 나와 가던데. 반에서 뭘 하고 있는 지 안 나오는 동생 녀석이 짜증나 반을 들여다 보았다. 지아는 없었고 교실도 비어있었다. 쿵,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다. 몰려 가던 애들 중에 지아가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 걸.
교문으로 뛰어갔다가, 교무실에 갔다가, 다시 교실로 갔다가, 화장실에서 이지아, 이지아 하고 불렀다가. 아무데도 지아는 없었다. 혹시나 혼자 집을 가겠다고 나선 건 아닌지. 이 생각을 하고 나서야 오늘 지아가 자신의 사탕을 뺏어먹었다며 울며불며 학교에 온 게 생각이 났다. 내가 미워서 혼자 집으로 가려 했으면 어떡하지. 조급해진 마음에 무작정 뛰었다. 미친 듯이 달리면서 마음 속으로 집 가는 길에 지아가 있게 해달라고 알라 신께 기도 드렸다.
한참을 지아를 부르며 달리는데 강가에 와서 “오빠?”하는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지아, 너 여기서 뭐해?”하고 씩씩거리며 소리치자, “오빠야, 이 언니가 이거 줬어. 이쁘지?”하며 나비모양 머리핀을 내밀었다. 그때서야 지아 뒤에 쭈그려 앉아 씩 웃음 짓는 우리 반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얼른 집에 가자.”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드는 녀석을 못 본채하고 지아를 일으켰다. 뭐가 이렇게 묻었는지 꾀죄죄해진 지아의 옷을 탈탈 털어주며 집으로 가는데, 자꾸 녀석이 따라온다. 내가 뒤를 돌아 쏘아보면 다른 쪽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린다.
잠깐 멈춰 서서 “야, 장안 이꿋! (따라 오지마) 돈 팔로우 미!” 하고 소리치자 오히려 옆으로 온다. “노! 아이 고 마이 홈!” 문법도 맞지 않는 말을 하며 샐쭉거리는데 순간 얼굴이 화악- 달궈졌다. 그러더니 지아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쌩하니 먼저 가버렸다. 혼자 착각한 것이 창피해 입술만 꾹 다물었다. 괜히 지아 손을 홱 놓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다 와가는데 그 녀석이 우리 집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더니 나와 지아를 보고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시늉을 하며 “수다 마깐(밥 먹었어)?”이라고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이 우리 집을 아는 건지가 겁이 났다. 창피했다. 한국 친구들이 우리 집을 봤다면 틀림 없이 비웃고 놀려댔을 것이다. 얘 앞에서 이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차, 지아 녀석이 문제였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가서 손을 꼭 잡았다.
 
# 3
지아를 막았어야 했지만, 집에 가봤자 반찬도 없을 것인데 배는 고파 녀석을 따라 동네 바나나 밭까지 왔다. 뭐, 나쁜 녀석처럼 보이지도 않고. 녀석은 주인 아저씨와 몇 마디 주고 받더니 작은 바나나 한 묶음을 받아왔다. 얼핏 들리는 단어들로 봐선 서로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녀석은 지아의 손을 잡고 밭 뒤에 있는 골목으로 이끌었다. 벽에 기대 앉아 가장 큰 바나나를 떼어 지아를 주고, 또 하나를 떼어 내게 건넸다. 얼떨결에 바나나를 받은 채로 지아의 바나나를 까주는 녀석을 멍하니 보았다. 그러고선 지도 얼른 까서 바나나 한입을 먹더니 뭐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껍질을 까서 한입 작게 물자, 만족한다는 듯 아까처럼 씩 웃었다. 나도 그 애를 따라 씩 웃었다. 단지 그 애가 웃는 모습이 바보 같아서.
 
# 4
“나마 사야 Mira.” 녀석의 이름은 미라였다. 바나나를 얻어 먹은 다음 날부터 그 애는 강가에서 나를 기다렸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걸지도 않더니 꼭 강가에서 나와 지아를 기다렸다. 우리는 매일 그 바나나 밭 뒷골목으로 가서 튀김, 과자, 과일 등 미라가 가져온 것들을 나눠 먹었다. 이것을 반복한 게 일주일이 다 되가는데 나는 매일 미라의 짓궂은 장난에 된통 당하기만 했다. 어쩜 그리 놀려 먹는 걸 좋아하는지, 덜 익은 열대 과일을 가져와 먹이지를 않나, 쓴 맛이 나는 과일 씨를 먹이지를 안나. 한번은 한국인이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어왔는지 자존심을 긁으며 고추를 건네 한참 동안 고생한 기억도 있다.
그래도 이날만큼 최악의 날은 없었다. 미라가 싸온 과자를 먹으며 놀고 있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집안에 나타나는 바퀴벌레도 엄마나 삼촌이 잡아 주기 때문에 제대로 본 적도 없던 바퀴벌레가 나타난 것이다. 소름 끼치게 생긴 모습이 팔뚝에 닭살이 돋게 했고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징그러운 벌레를 피했다. 그래도 나는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됐다. 미라가 이 모습을 놓칠 리가 없지. 얼른 두 손으로 바퀴벌레를 잡고는 깔깔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그 모습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꿈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어제, 미라가 처음으로 학교에서 말을 걸었다. 쉬는 시간이었는데, 항상 같이 다니던 여자애를 데리고 와 수학 문제를 물어봤다. 한국에서 이미 다 배우고 온 문제라 쉽게 공식을 적어주니 “뜨리마까시 반약.” 하고는 수업 준비를 하러 갔다. 그날 하교 때 반 남자애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치 전학 온 첫날 같았다. 처음에는 수학을 잘하느냐고 묻더니 이것저것 잘하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머뭇거리자 축구공을 들더니 따라 나오란다. 오랜만에 하는 축구는 재미있었다. 남자애들이 갑자기 말을 건 것이 다 미라 덕분인 것 같아 ‘내일은 내가 과자를 사가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다.
 
# 5
미라, 지아와 함께 길거리에서 두부 튀김을 사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식탁에 앉아 있는 아버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새우 과자와 빨간 별이 그려진 캔맥주가 살짝 찌그러진 채로 식탁에, 아버지 앞에 놓여 있었다. 몇 달 만에 더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낯설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인이 반갑다. 그새 지아는 벌써 신발을 벗고 아버지에게 안겼다. 아버지는 지아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내가 있는 곳을 돌아봤다. “왔으면 와서 앉아 봐라.” 지아는 아버지 볼에 뽀뽀를 하고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를 마주보며 앉자 “지난 번에 학교에서 애들을 때렸다는 얘기는 들었다. 학교에 적응을 못한 모양이지?”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아버지께서 들으셨다는 것은 엄마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욕을 먹을까, 혹시 손이라도 날아올까 온갖 걱정을 하며 식탁만 내려다 봤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으냐?” 라는 뜬금 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우리 다시 한국에 가요?”  “엄마랑 지아는 말고, 너랑 나만. 이미 비행기 표는 끊어 놨다.”
그날,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방방 뛰며 반겼을 제안이었지만, 이제야 친구도 생겼고, 다른 친구들과도 조금이나마 말을 텄는데 내 의사 한번 묻지 않은 엄마와 아버지가 미웠다. 그리고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껄끄러운 느낌이 계속 남아 하루 종일 몸을 뒤척였다.
 
# 6
학교가 끝나고, 보통 때와는 다르게 먼저 지아를 집에 데려다 주고 바나나 밭 골목으로 갔다. 미라에게 말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입을 열지 않았더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며 일어서려는 미라를 불렀다. “미라, 사야 끔발리 꼬레아.”  “왜? 나한테 한국말 알려주기로 했잖아.” 미라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자고 하셔서”라고 말하자 지아와 함께 가냐고, 우리 가족 다 같이 가냐고 재차 묻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 나랑 아버지만. 내일 낮에 당장 아버지 지내는 곳으로 갈 거야.” 하고 말하자, “너희 엄마께서 많이 슬퍼하실 거야.”
그때서야 내가 지난밤 끙끙대며 잠에 이루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남겨질 엄마와 지아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미라를 만나고 어둑어둑해져 돌아왔을 때, 엄마는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왈칵 나왔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우는 나를 엄마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리곤 귓가에 속삭였다.  “Aku cinta kamu, Ji-Hun.”
인도네시아인 엄마도, 한국인 아빠도 국적에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7
“너희 엄마께서 많이 슬퍼하실 거야.”
“…”
“나도 그렇고.”
미라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섞여 있었다. 그런 미라의 눈물 고인 눈을 보자 나도 눈물이 나왔다. 처음 사귄 친구와 멀어지기 싫었다.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아내도 계속 눈물이 났다. 한참을 엉엉 울다 미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 너 안 잊을 거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나도. 꼭 인도네시아로 돌아올게. 그때 다시 만나.”
울고불고 했던 어젯밤, 바나나 밭 너머로 보이는 저녁놀이 참 예뻤다. 그 저녁놀에 화목한 우리 가족, 사이 좋은 나와 인도네시아 반 친구들을 그려 넣고 왜 진작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 나도, 아빠도, 친구들도 아닌 누군가를 원망했다.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를 웃음짓게 해준, 노을에 비친 우리의 바나나 밭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집으로 갔다.
메이는 목을 억지로 쥐어짜며 했던 마지막 약속을 아빠의 숙소로 가는 동안 계속 되뇌었다. 가는 길 내내 미라, 엄마, 지아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시 나타난 예쁜 노을에 미라와 엄마, 지아의 얼굴이 애쓰지 않아도 떠올랐다. 얼른 나이를 먹어 내 친구,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는 내 친구를 찾으러 인도네시아에 오고 싶다. 그다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 할 특별한 사건도 없었지만 미라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미라와 나의 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라와 내가 가진 모든 다른 것들을 이어주는 사람간의 온정. 미라는, 인도네시아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빛깔의 바나나처럼, 따뜻하게 감싸 온기를 지켜주는 바나나 잎처럼 내게 남아있다.
 
수상 소감
사실 생전 처음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기회로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를 잘 담아낸 멋진 소설을 써 보일 테야.’ 라는 당찬 마음으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늘 창문 밖으로만 보던 현지 학교 친구들의 삶을 한국학교에 다니는 제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또 순수 한국인 부모님을 둔 제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대해 그리고, 다문화 가정 친구들에 대해 한 가지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료 조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소설로는 다 들어나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사는 동네, 주인공과 미라의 학교를 설계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까지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하는 일이 참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성격, 습관을 만들어 한 명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우체국, 옷 가게들도 만들어서 하나의 동네도 만들어내고. 상상만으로 저는 한 우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이 글을 쓰면서 창작의 즐거움이 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의 포부만큼 위대한 글이 완성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첫 소설이니 부족한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도 수상까지 하게 되니 자부심이 생겨 글을 쓰는 것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꾸준히 즐겁게 글을 쓰며 장차 훌륭한 문인이 되라고 이 상을 주신 것이라 믿고, 앞으로도 열심히 작문 생활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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