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하원, 정치인 비난금지 입법…비판에 재갈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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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인도네시아 전자신분증(E-ID) 시스템 구축 사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된 스띠야 노반또 전 하원의장이 중부 자카르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구체적 증거 없이 비난하면 명예훼손 처벌…13일부터 시행
뇌물수수 등 비리로 끊임없이 물의를 빚어 온 인도네시아 하원이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사실상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일간 꼼빠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하원의 존엄을 무시한 개인과 법인을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기관법(MD3) 개정안이 통과됐다. 구체적 증거 없이 하원이나 소속 의원이 부패했다고 언급하면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게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에는 하원윤리위가 하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한 인물을 강제 구인해 청문을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 대통령 외에는 하원의원을 소환할 수 없도록 해 사실상의 치외법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혼전성관계 금지와 동성애 불법화 등 다른 쟁점 법안 사이에 슬쩍 끼워넣어져 처리된 이 법안의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 사회에선 거센 역풍이 일었다.
인도네시아 헌법 전문가인 뻬리 암사리는 "국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이들이 어떻게 국민이 자신들을 비판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현지 시민단체들이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진행한 청원에는 불과 열흘만에 19만명 이상의 서명이 모였다.
쪼꼬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입법기관법 개정안 비준을 거부하고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확대되길 원하지 축소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해당 법안은 이달 13일부터 원안대로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의 비준 여부와 무관하게 하원을 통과한 법은 30일 뒤부터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번 입법을 주도한 세력이 조꼬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자 원내 1당인 투쟁민주당(PDI-P)을 중심으로 한 여야 8개 정당이라는 점도 법안이 철회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부유층과 유력인사가 연루된 부패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하원은 각종 이권과 관련한 뇌물 의혹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실정이다. 최근 5조9천억 루피아(약 4천650억원) 규모로 진행됐던 전자신분증(E-ID) 시스템 구축 사업 예산의 절반 가량이 전·현직 의원 30여명에 대한 뇌물 등으로 유용된 사실이 부패척결위원회(KPK)에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하원은 오히려 KPK 당국자들을 청문회에 회부하고 KPK의 수사 및 기소권 박탈을 시도하는 등 행태를 보였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작년 초 발표한 2016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인도네시아는 100점 만점에 37점으로 176개국중 90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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