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빠 뻐무다(청년의 맹세)' 제 86주년을 기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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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자바 수라바야 우또모대학의 학생들이 27일 밤 '숨빠 뻐무다(청년의 맹세)' 86주년을 기리며 촛불로 숫자 '86'을 만들었다. 사진=안따라(Antara)
숨빠 뻐무다(Sumpah Pemuda∙청년의 맹세)는 1928년 10월 27~28일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 2차 청년회의 폐막에서 한 3가지 선언이다.
무려 430여년 간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한 네덜란드는 바타비아를 포함해 인도네시아 군도 곳곳에 무역 독점권을 행사했다. 네덜란드인 뿐만 아니라, 각 지방 왕국의 왕족들 또한 세력다툼에 혈안이 되어 식민세력을 이용해 자국 분열을 초래했다.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는 강제경작 등 불공평한 노동법 등을 시행하며 착취를 해왔고 농민들의 생활이 빈곤해지고 민중봉기까지 발생했다. 참고로 1930년대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93%가 문맹이었다.
당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네덜란드 식민정부 하에서 분열된 인도네시아인들의 마음속에 민족의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교육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여 민족의식을 높이기 위해 자바섬을 중심으로 1908년 5월 20일 부디 우또모(Budi Utomo)가 창설되었다. 부디 우또모는 인도네시아어로 '숭고한 노력'이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 구체화 된 민족주의는 1928년 10월 28일 청년의 맹세로 발전했고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외쳤다. 그리고 이는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언하는데 매우 큰 견인차역할을 했다.
선언문은 당시 식민지배를 받은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식 철자법이 반영되어 있다.
청년의 맹세(Sumpah Pemuda)
Pertama
첫째
Kami poetera dan poeteri Indonesia, mengakoe bertoempah darah jang satoe, tanah air Indonesia.
우리 인도네시아의 아들과 딸은 인도네시아라는 단 하나의 조국을 선언한다.
Kedoea
둘째
Kami poetera dan poeteri Indonesia, mengakoe berbangsa jang satoe, bangsa Indonesia.
우리 인도네시아의 아들과 딸은 단 하나의 인도네시아 민족임을 선언한다.
Ketiga
셋째
Kami poetera dan poeteri Indonesia, mendjoendjoeng bahasa persatoean, bahasa Indonesia.
우리 인도네시아의 아들과 딸은 바하사 인도네시아로 하나됨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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