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귀신 꾼띨아낙과 뚜율에 대한 서방 인류학자들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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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대표 귀신. 왼쪽부터 건드루어, 꾼띨아낙, 뚜율, 뽀쫑, 한뚜 떵꼬락
인간 주변 어딘가에 깃들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인도네시아 귀신들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학술적인 고찰이 이루어졌다.
독일인 인류학자 티모 두일(Timo Duile)은 인도네시아 꾼띨아낙의 유래에 대해, 미국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뚜율에 대해 연구했다.
독일 인류학자의 꾼띨아낙 연구
꾼띨아낙에 대한 티모 두일의 연구는 2020년 동남아시아 인류사회과학 저널에 실렸다. 해당 연구보고서에는 ‘꾼띨아낙: 인도네시아
뽄띠아낙의 귀신이야기와 말레이 현대사회(Kuntilanak: Ghost Narratives and Malay
Modernity in Pontianak, Indonesia)’라는 제목이 달렸다.
두일은 한국의 처녀귀신쯤 되는 위상인 꾼띨아낙의 물리적 존재를 입증하려 한 것이 아니라 꾼띨아낙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연구했다고
전제했다.
그는 꾼띨아낙이 단순히 인도네시아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꾼띨아낙이
인도네시아인들의 문화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줄기차게 쏟아져
나온 꾼띨아낙 영화와 소설들이 그 반증이고 지금도 꾼띨아낙을 봤다는 증언이나 기사, 동영상들이 넘쳐난다.
꾼띨아낙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다루살람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필리핀과 타일랜드에도 같은 성격의 영적 존재들이 강력한 문화적, 영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두일은 꾼띨아낙에 대해 소설이나 공포영화에서 묘사되는 전형적
원혼의 내레이션, 말레이 민속, 그리고 도시 건립과 관련한
민화 등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 연구했다.
내레이션은 티모 두일이 2014년에 6개월 동안
현장을 답사하며 청취한 것들은 토대로 한 것인데 주로 서부 깔리만딴 뽄띠아낙 지역 사람들에게서 인간과 영혼 그리고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에 객체분석방식을 사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뽄띠아낙 주민들은 이곳에 사람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꾼띨아낙을 쫓아내고 꾼띨아낙이 있던 곳에 도시를 세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꾼띨아낙은 사람들에게 쫓겨나기 전 까뿌아스 강과 란닥 강이 만나는 곳에 깃들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부 깔리만딴 주도 뽄띠아낙이 있는 곳이다.
꾼띨아낙이 살던 곳은 당시 울창한 정글과 늪이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꾼띨아낙의
말레이어로 지금은 그곳 도시 이름이 되어버린 뽄띠아낙(Pontianak)은 원래 키 큰 나무를 뜻하는
뽀혼 띵기(Pohon Tinggi)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서부 깔리만딴의 시골 마을에는 키 큰 나무와 관련된 꾼띨아낙 이야기들이 많이 전래되고 있다.
티모는 자신의 학술서에서 꾼띨아낙 또는 뽄띠아낙이라 불리는 존재가 멀라유 사람들의 집단 기억 속에 출몰하고 있으며 뽄띠아낙 도시와
인근 지역에서는 사람들에게 빙의하거나 겁을 줘 쫓아내는, 그러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악령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미국 인류학자의 뚜율에 대한 연구
미국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이웃의 재물을 훔치는 아기 유령 뚜율(Tuyul)에 대해
연구해 ‘자바의 신앙: 자바 문화 속의 아방안, 산뜨리, 쁘리야이(Agama
Jawa: Abangan, Santri, Priyayi dalam Kebudayaan Jawa)’라는 학술서에 해당 내용을 담았다.
아방안이란 정령을 섬기는 Animism이 혼재한 형태의 이슬람, 산뜨리는 정통 이슬람, 쁘리야이는 힌두교적 요소와 혼합된 이슬람 신앙을 말한다.
아방안과
쁘리야이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달리 자바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형태의 신앙이다. 이슬람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자바의 토착신앙 또는 먼저 전래한 힌두 불교 신앙과 섞여버린 것이다.
클리포드 기어츠의 논문 속 이야기는 1950년대에 자바 문화의 여러 측면들을 연구분석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의 박사생 여섯 명이 인도네시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기어츠는 자바인들이 영적 존재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은 논문에서 뚜율의 실존 여부를 따지지 않음을 분명히
전제했다.
그는 모조꾸또(Mojokuto) 지역사회의 집단적 신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포커스를
두었다. 모조꾸또란 고대로부터 형성된 동부자바의 주거지역 지명이다.
그들은 영적 존재를 메메디(memedi), 러럼붓(lelembut),
뚜율,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메메디와 러럼붓은 자바 지역에서 귀신을 뜻하는 한뚜(hantu), 세딴(setan) 등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자면 메메디는 사람들을 놀래키며 겁주는 존재, 러럼붓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존재방식이 호환되지 않아 위험하고 치명적인 악령을 뜻한다.
한편 기어츠는 뚜율에 대해 ‘어린 아이의 유령’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인간 아이가 죽어 발생한 귀신이 아니라 애당초 인간이었던 적이 없는 아이 형태의 유령이란 의미가 강하다.
그는 뚜율이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좋아해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도 묘사했다.
그는 모조꾸또 지역 주민들 여러 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들 중엔 뚜율을 만나려면 금식과 명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뚜율의 특성을 이용해 부자가 되려는 인간은 그렇게 해서 만난 뚜율에게 제물을 제안해야 하고 뚜율이 그 제물을
수용하면 계약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제물은 대개의 경우 누군가의 생명이지만 다양한 다른 옵션들도 존재한다.
계약이 성립되면 계약자는 비로소 뚜율을 맨눈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뚜율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직접 시킬 수 있게 된다. 뚜율은 요즘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이웃의 돈이나 패물만 훔쳐오는 존재가 아니라 농촌에서는 이웃이 수확한 벼와
쌀을 훔쳐오기도 한다. 덩치가 작다고 훔쳐오는 작물의 규모가 꼭 작은 건 아니다.
계약자가 뚜율에게 돈을 훔쳐오라 하면 뚜율은 돈 냄새를 맡고 먼 곳까지 눈깜짝할 사이에 찾아가 간단히 훔쳐온다는 것이다.
기어츠는 해당 논문에서 뚜율에 대한 이러한 내용은 지역사회에서 그렇게 믿고 있다는 내용을 기술한 것이지 뚜율의 신상 정보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뚜율 외에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똑같이 학술적 스탠스를 취했다.[드띡닷컴/ 기사 제공=배동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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