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의사협회, 옴니버스 보건법 심의 반대...기득권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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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픽사베이/Darko Stojanovic)
옴니버스 보건법에 강력히 반대해온 인도네시아
의사협회(이하 IDI)가 재차 국회의원들에게 해당 법안의
심의중단을 요구하면서 만약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법제화 될 경우 IDI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제의 옴니버스 보건법은 2004년 진료법, 2009년 보건법, 2009년 병원법, 2014년 보건근로자법 등 총 10개 법령의 일부 내용을 동시에 개정해 보건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목적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IDI는 인도네시아 치과협회(PDGI), 인도네시아 간호사협회(PPNI), 인도네시아 조산사협회(IBI), 인도네시아 약사협회(IAI) 등 저명한 국내 의료 관련 네 개 조직과 손잡고 최근 수천 명을 동원해 해당 개정안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국회가 법안 심의를 강행할 경우 조만간 또 다른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위협했다.
20일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그들이 시위를 통해 반대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의료계 각 직업군을 대변할 협회를 각각 하나씩만 두도록 한 규정을 폐기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의사들의 IDI, 치과의사들의 PDGI, 조산사들의 IBI, 간호사들의 PPNI 등 한 직종에 한 개의 협회만 둘 수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은 직종별 복수의 협회를 허용한다는 규정을 담았다.
단일 조직을 구축해 소속원들을 철저히 통제하여 강고한 기득권을 지켜온 각 협회들로서는 업종 내 새로운 협회와 조직들이 등장해 자신들이 독점하던 각종 이권과 기득권을 나눠 갖게 될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지난 14일(일) IDI 대변인 베니 사뜨리아(Beni Satria)는 해당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기존 의사협회의 기존 역할을 약화시키고 의사들 사이의 불화를 야기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그 손해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한 개 직종에 한 개의 협회를 두는 현행 법령이 의료종사자들을 훨씬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 및 노동문제를 관할하는 국회 제9위원회 에마누엘 멜끼아데스 라까 레나(Emanuel Melkiades Laka Lena) 부위원장은 11일 안따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령 한 직종에 한 개 이상의 협회가 구성되더라도 해당 협회들이 의료부문 종사자들의 다양한 열망과 요구를 충분히 대변하고 정부와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국회가 최대한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점 시대의 종식
한편 옴니버스 보건법을 지지하는 이들은, 신참 의사들은 물론 기존 의사들도 실제 의료행위를 하려면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관련 과정을 독점한 IDI가 그간 당연하다는 듯 휘둘러 온 독점적 관료주의의 전횡을 이번 개정안을 통해 마침내 종식시킬 수 있게 되었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의사가 진료 행위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 비정부 기관인 인도네시아 의사협의회(KKI)로부터 ‘STR’이라는 등록서류를 발급받고 해당 지역 보건기관들로부터 진료허가(SIP)도 받아야 한다.
여기서 함정은 STR 발급을 위해 제출하는 구비서류에 해당 직종의 의료협회에서 발급하는 역량인증서과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의사협회가 해당 서류를 발급해 주지 않으면 의대 수석졸업자도 의사면허를 받을 수 없다.
한편 SIP은 단 한 군데의 진료소에만 유효하므로 여러 곳에서 진료행위를 하거나 다른 도시로 전근을 갈 경우 매번 의사협회로부터 별도의 SIP를 발급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의사의 모든 일수거일투족에 의사협회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해당 SIP는 앞서 언급한 STR의 유효기간 내에서만 유효하다.
결국 의사가 인도네시아 국내 어디에서든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협회의 철저한 통제와 영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진 일단의 의사들이 2017년 IDI에게 의사들을 대변하는 해당 직종의 독점적 협회 자격을 부여한 법령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IDI로부터 떨어져 나온 비공인 조직인 인도네시아 전국 의사협회((PDSI) 데비 핀스끼(Deby Vinski) 부협회장은 의사면허 취득 과정을 IDI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인 의사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000명 당 의사 수는 세계보건기구 WHO 권장기준인 1,000명 당 1명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1,000명 당 0.4명 수준이므로 전국적으로 13만 명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IDI는 의사 희소성을 고수하고 집단이익을 지키기 위해 의사면허 발급 과정을 매우 비싸고 까다롭게 만들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옴니버스 보건법이 통과되면 의사들에게 발급되는 역량증명서의 발급 권한은 IDI의 손을 떠나 중앙정부에 귀속된다. 정부는 의사들이 SIP 허가를 얻기 위한 구비서류에 의사협회의 추천서를 받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조항의 삭제도 국회에 요청했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이 여러 진료소에 근무하기 위해 각각의 SIP을 별도로 갖춰야 할 필요도 없어진다.
즉 이번 옴니버스 보건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의사면허 발급과 진료허가를 받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 두 개를 치워버리는 데에 있고 의사협회는 이를 극렬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IDI는 의사 진료허가 발급에 필요한 일부 서류들에 대해 자신들이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므로 자신들이 의사면허 발급 과정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의사로서 일하기 위한 유일한 길목에 어마어마한 차단기를 세우고 비싼 통행세를 받아야 차단기를 올려주지만 해당 길목을 독점한 건 아니라는 식이다.
투명한 규정이 필요
가자마다 대학교 의료법 전문가 리마와띠(Rimawati)는 특정 의료 직종을 대변하는 동등한 협회라 해도 치과의사나 조산사를 대변하는 PPNI, IBI 같은 다른 협회들에 비해 의사협회인 IDI가 훨씬 광범위한 권한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IDI가 역량증명서와 추천서를 발급하는 권한 외에도 의사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하기 때문이다. 해당 훈련과정, 즉 수련의 과정에서 얻는 점수는 역량증명서 발급의 토대가 된다. 결국 모든 과정이 물고 물리면서 의대 졸업생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무조건 IDI에 철저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리마 교수는 IDI 권한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IDI가 권한 남용과 이해충돌의 온상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추천서 발급에 있어서 최소한의 투명성이나 표준시스템이 없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리마 교수는 의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직종별 협회를 복수로 허용하는 것이 혹시 있을지 모를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보다 진보된 방편임을 인정하면서도, 새로 들어서는 다른 협회들이 또 다른 차단기를 길목에 세우거나 면허발급 및 허가 절차에 혼선을 일으키지 않도록 모든 협회가 역량증명서와 추천서 발급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투명한 규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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