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대포 뒤편 디자인, 손가락 욕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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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구도심 파타힐라 광장에 놓인 시 자구르 총통(Meriam Si Jagur) 포신 뒤편 미묘한 손가락 모양의 디자인 (사진=꼼빠스닷컴/XENA OLIVIA)
자카르타 구도심 파타힐라 광장에 놓인 식민지 시대의 시 자구르 총통(Meriam Si Jagur) 포신
뒤편의 손가락 모양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엄지 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넣고 주먹을 쥔 모습은 일부 문화권에서는 중지를 치켜 세우는 것에 맞먹는 손가락 욕으로 사용되는데
왜 저런 흉측한 디자인을 남녀노소는 물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에 설치해 두었을까?
일각에서는 임박한 선거를 앞두고 저 손가락 모양이 특정 후보의 번호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파타힐라 광장엔 과거 바타비아의 시청이었던 건물이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곳
자카르타 역사박물관 에스띠 우따미 관장은 시자구르 총통의 포신 뒤편 손가락 모양을 마노 피코(Mano Fico)또는
마노 피가(Mano Figa)라 부르는데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악을 거부하거나 악마를 물리치는 상징이며
궁극적으로 행운을 비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 저 손모양으로 주먹을 쥐고 상대방에게 내밀며 ‘행운을 빈다’고 외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일부 국가에서 돌아오는 건 욕설이나
귀싸대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를 제대로 축복의 의미로 사용하려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에스띠 관장은 해당 손모양이 실제로 그런 의미를 가졌기에 포르투갈인들이 대포에 굳이 저런 디자인을 형상화해 부적처럼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후세에 누군가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 굳이 저런 음란한 손모양을 대포 뒤에 붙여 리플리카를 만들어
광장에 설치했을 거라 생각한 방문객들도 적지 않았을 텐데 저 손모양은 실제 총통에 붙어있던 디자인 그대로다.
한편 포르투갈 다음으로 동인도 제도에 진출한 네덜란드인들에게 저 손모양은 다산과 성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는 어딘가 손가락 욕과 통하는 접점이 살짝 엿보인다.
포르투갈의 마누엘 타바레스 보카로(Manuel Tavares Boccaro)가 만든 ‘대포의 역사’에도 해당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역사박물관 가이드나
큐레이터에게 물어도 이에 대한 올바른 답변을 받을 수 있다고 에스띠 우따미 관장은 설명했다.
오해를 다루는 방법
@muhammadlutfifuad라는 틱톡 계정에 시자구르 총통의 손가락 모양이 음란하여 공개적인 전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레이션이
달린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며 사회적 반향을 낳았지만 이상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는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해당 계정에 실린 문제의 동영상.
https://www.tiktok.com/@muhamadlutfifuad/video/7331655592865565958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러한 역사가 사실이라 해도 해당 손모양이 음란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일반적 선입견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아이들이
많이 오는 파타힐라 광장에 그대로 설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역사가 그렇다
하더라도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디자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파타힐라 광장에 진열된 총통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 진품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사한 디자인의 총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총통 받침대에 붙은 설명문에는 마카오에서 제작한 시자구르 총통이 인도네시아에 단
한 대만 있다고 하므로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역사란 이미 벌어진 사건이어서 후손들은 그것이 신성하든 외설적이든 그 흔적과 의미를 문화자산으로서 평가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과거의 일이 현재의 규범과 상식에 맞지 않으니 파괴하거나 변형해야 한다는 비상식의 목소리 역시 어느 사회에서나 있다는 것을 파타힐라
광장의 시자구르 총통 디자인 논란에서도 새삼 실감하게 된다.[꼼빠스닷컴/기사 제공=배동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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