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지방선거 경쟁에서 쏟아져 나온 성차별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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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자카르타 주지사 후보 토론회에 나선 후보들(왼쪽부터) 리드완 까밀, 다르마 뽕레군, 쁘라모노 아눙 (사진=자카르타 선거관리위원회 유튜브 계정 영상 캡처)
인도네시아 11월 지방선거 유세가 뜨거워지면서 표심을 잡으려 무리하는 후보들이 성차별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아 ‘인도네시아 정치판의 심각한 문제’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성평등과 여성 정치참여 등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후보들을 정당들이 방치하는 것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지만 그런 사례들이 실제로 속속 보고되고 있다.
28일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투쟁민주당(PDIP)의 지원을 받는 슬레만 군수 후보 하르다 끼스와야와 그의 러닝메이트 다낭 마하르사는 여성을 폄하하는 선거 포스터를 인터넷에 뿌려 물의를 빚었다.
그는 ‘왜 여자를 당신의 이맘(imam)으로 선택하려 하는가? 그래선 안된다. 이맘은 반드시 남성이어야 한다’는 의미의 자바어 문구를 포스터에 넣었다. 이맘(imam)이란 무슬림들의 기도를 이끄는 사람을 뜻하는 아랍어이지만 일반적으로 지도자라는 의미로 읽힌다. 즉 여성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슬로건을 공공연히 내건 것이다.
온라인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하르다 후보는 자신이 해당 캠페인 슬로건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문제의 포스터는 모두 삭제되었다며 허겁지겁 진화에 나섰다.
하르다가 문제의 슬로건으로 공격한 상대방인 국민수권당(PAN)의 꾸스띠니 스리 쁘루노모 후보는슬레만의 현직 군수이자 그 지역 첫 여성 지자체장이다.
지난 15일 ‘지역사회 복지개선 및 형평성 있는 발전 가속화’라는 주제로 열린 첫 반뜬 주지사 후보 토론회에서도 쁘라보워 지지 정당들의 지원을 받는 안드라 소니-딤야띠 나따꾸스마 후보팀이 골까르당 아이린 라흐미 디아니-아데 수마르디 후보팀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내 물의를 빚었다.
반뜬주에서 창궐하고 있는 아동 성학대 문제에 대해 아데 후보가 상대편 딤야띠 후보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묻자 딤야띠가 뜬금없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지사 같은 무거운 직책을 맡게 해서는 안된다’는 노골적인 성차별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명백히 남부 땅그랑 시장을 지낸 골까르당 여성 정치인 아이린을 겨냥한 것이다.
복지정의당(PKS) 소속 정치인인 딤야띠는 여성들을 존중하라는 무하마드 선지자의 가르침을 아랍어로 암송하더니 ‘그래서 여성들이 지도자의 막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엽게 여겨야 할 일’이며 ‘여성들에게는 쉽고 편한 일들만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딤야띠는 과거 미성년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국가인권윈회(Komnas HAM)에 고발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안달라스 대학의 헌법 전문가 페리 암사리는 과거 정치인들이 실용주의와 포퓰리즘 전략을 선호한 것에 반해 이번 선거의 특징은 종교적으로 포장한 성차별적 발언이 난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적 권리를 중요시하는 민주주의적 접근방식이 이미 힘을 잃고 정치인들이 종교와 같은 보편적 가치들마저 무시한 채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무슨 말이든 쏟아내며 광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이 성별에 관계없이 정부에 참여할 동등한 헌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여성과 소녀들이 인간으로서 권리의 평등을 누리는 것은 인도네시아가 지향하는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선거민주주의를 위한 모임(Perludem) 데이터에 따르면 국회에서의 여성 대표성은 2014년 17.3%에서 2024년 약 22%로 증가하는 등 인도네시아 여성 정치참여 상황이 다소 개선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의 정당들이 충분한 여성 후보들을 내지도 않고 여성 정치인들이 부각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를 증명하듯 각 정당들이 여성 대표성 최소한 30%를 지켜야 한다는 규정을 실제로 지킨 정당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여성 대표성의 성격 역시 문제다.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여성들조차 그중 45.67%가 뿌안 마하라니나 그녀의 딸처럼 정치세습가문 출신들이어서 순수한 여성 대표성이라기보다 특정 가문들의 권력 장악이란 의미가 더 크다.
상대 후보의 여성차별적 발언 대상이 된 반뜬 주지사 후보 아이린도 그러한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당선이 유력한 48세의 아이린 역시 2007-2015년 기간 중 반뜬 주지사를 지낸 라뚜 아뚯 코시야의 시누이이기 때문이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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