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시한폭탄 ‘자살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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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프트한자에서 비행조종 훈련을 받던 안드레아스 루비츠는 몇 달간의 병가를 마치고 훈련 복귀를 신청하면서 자신이 중증의 우울증을 겪었다는 사실을 항공사에 알렸다.
그러나 그는 루프트한자의 테스트를 통과한 후 훈련에 복귀할 수 있었고 루프트한자의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 저먼윙스 조종사 자격을 얻게 됐다.
루비츠가 십여 명의 의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정신질환과 싸우려 애쓰는 동안에도 회사는 그가 겪고 있는 지독한 심적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지난달 24일 자신과 다른 149명이 타고 있던 항공기를 알프스에 고의로 추락시켜 전원 숨지게 했다.
미국 언론은 18일 "저멍윙스의 사고가 그동안 쉬쉬해오던 조종사 자살비행의 위험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조종사들의 심리적 압박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자살비행에 대해 그 동안 업계와 규제당국은 언급을 꺼려왔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 루프트한자의 최고경영자는 "루비츠는 100% 비행에 적합한 상태였다"고 확언했지만 곧이어 검찰조사에서 루비츠가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살성향을 보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항공사나 규제당국이 조종사들의 정신건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전부터 나왔다.
2012년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젊은 조종사들의 심리문제를 검진할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같은 해 민간항공의료지침에서 젊은 조종사들에게는 신체적 문제보다는 정신적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이를 탐지할 수단이 없다고 언급했다.
특히 이번 사고가 난 독일의 경우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개념이 다른 나라보다 엄격해 항공당국이 조종사의 병력에 접근하기 힘들다.
독일은 조종사 면허를 발급할 때 500명의 비행 전문의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지난해 유럽항공안전국은 독일의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비행 전문의의 소견을 재평가할 충분한 자료가 당국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드레 드루그 유럽항공심리학회 회장은 "항공사 경영진이나 감독관, 운항관리사 등은 조종사들을 잘 보지도 않는다"며 "자기를 점검하고 신변을 보살피는 것을 상당부분 조종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관리 부실이 실제로 조종사 자살비행 참사로 이어져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1997년 104명이 사망한 인도네시아 실크에어기 추락사고의 경우 미국 조사당국이 조종사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인도네시아 당국은 고의추락 가능성을 배제했다. 1999년 217명의 사망자를 낸 이집트항공 사고에서도 부조종사가 "나를 신께 맡깁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의 추락한 정황이 확인됐으나 미국 조사당국은 이집트 정부의 압력에 보고서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한편 유럽 항공사들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종실 2명 상주' 규정을 도입하지 않다가 이번 사고 이후에야 조종실에 2명 이상이 머물도록 권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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