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인도네시아 대법원, 異종교간 혼인 불가 재확인 사회∙종교 편집부 2023-07-2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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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대성당의 결혼식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서로 다른 종교 간에 혼인한 부부가 호적사무소에서 합법적으로 혼인등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금지하라고 하급 법원들에게 공시했다고 자카르타포스트가 20일 보도했다.
이로서 종교가 서로 다른 연인들의 혼인을 국가가 허용하고 마침내 합법적 지위까지 보장해 줄 것이란 세간의 희망 섞인 기대는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해당 금지령은 지난 17일 회람문에 공시되었는데, 해당 회람문에서 무함마드 샤리푸딘(Muhammad Syarifuddin) 대법관은 일선 판사들에게 1974년 혼인법 2조를 준수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혼인법 조항은 신랑과 신부가 공히 함께 따르는 종교가 정하는 바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합법적인 혼인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신랑과 신부의 종교가 일치하는 것이 혼인의 필수 조건이란 것이다.
이번 회람문도 종교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의 혼인등기신청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재차 못박은 셈이다.
2006년 공공행정법에 따르면 혼인한 무슬림들은 종교국 사무소(KUA)에서 혼인등기를 하고 비무슬림들은 공공 호적사무소에서 혼인등기를 하게 되어 있다.
해당 법령은 이종교간 혼인의 경우에도 법원의 승인을 받아 호적 사무소에 혼인등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대법원 결정은 그 이례적이고도 험난한 좁은 길조차 완전히 막아버렸다. 결국 이종교간 혼인한 부부가 합법적인 지위를 얻는 방법은 이제 최소한 인도네시아 국내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대법원 회람문이 나오기 몇 개월 전 자카르타 지방법원이 기독교인 남성과 무슬림 여성의 혼인등기신청을 허락해 신문에 대서특필된 바 있다. 지난 6월에도 자카르타 지방법원 합의부가 이종교간 혼인한 부부의 혼인등록을 허용했다.
당시 판결을 내린 재판부 주심 빈땅AL(Bintang AL) 판사는 인도네시아의 지리적 조건이나 인구 구성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종교간 혼인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합리적’인 일이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위원회(이하 MUI)는 이번 대법원의 이종교간 혼인등기허용 금지령이 법적 확실성을 공고히 하고 이종교간 혼인의 법적 허점을 메웠다며 환영입장을 내놓았다. MUI의 종교칙령(파뜨와) 국장 아스로룬 니암(Asrorun Ni’am)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모든 이들, 특히 혼인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 못하는 척하는 판사들도 모두 이번 대법원 회람문이 명령하는 바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단체 스따라 연구소(Setara Institute)는 이번 대법원 회람문이 부부 지위에 대한 최소한의 합법적 보장을 기대했던 이종교간 혼인 부부들에겐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스따라 연구소의 할릴리 하산(Halili Hasan) 소장은 19일 인터뷰에서 이번 대법원 회람문이 결과적으로 국가사법기관들이 그동안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전을 만들어 나가던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자카르타 소재 나들라뚤 울라마 인도네시아 대학교(Nahdlatul Ulama Indonesia University) 아흐맛수아에디(Ahmad Suaedy) 교수는 대법원이 회람문을 내어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사안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이슬람은 이종교간 혼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고 있으며 일부 울라마들은 이종교간 혼인을 종교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실제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대법원 회람문은 이슬람이 가족 차원에서조차 타 종교와의 화합을 포용하지 못하는 용렬한 종교라는 인상을 일각에 심었다.
한편 헌법재판소도 1974년 혼인법의 이종교간 혼인금지조항 폐지 청원을 기각한 바 있다. 지난 1월 파푸아 출신 라모스 쁘떼게(E. Ramos Petege)가 종교가 다른 배우자의 결합을 수용하지 않는 법령의 위헌 심판을 요청했으나 헌법 재판관 아홉 명이 만장일치로 해당 청원을 기각한 것이다.
카톨릭 신자였던 라모스는 당시 자신의 무슬림 배우자와 함께 3년 간이나 계속한 혼인등기허가신청이 끝내 거부된 후 급기야 헌법 청원까지 냈지만 헌재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이번 대법원 회람문이 나오면서 이제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가 다른 배우자들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종교적 무관용 원칙의 법적 근거를 더욱 공고히 한 셈이 됐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혼인법이 사람들의 혼인을 지나치게 종교적 관점에서만 취급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정국가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오직 종교기관만이 혼인의 합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최고위 법원들의 판결은 사뭇 이율배반적이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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