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이교도로 차별받는 인도네시아 토착종교 사회∙종교 편집부 2023-08-08 목록
본문
서부자바 꾸닝안군 찌산따나 마을에 있는 순다 위위딴 조상묘가 당국 허가없이 지어졌다고 하여 빨간 딱지가 붙었다. (사진=꼼빠스닷컴/Muhammad Syahri Romdhon)
81세의 수브라따는 서부자바에 뿌리를 둔 순다 위위딴(Sunda Wiwitan)교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평생 이교도, 무신론자라는 차별적 대우를 당해왔다. 그는 이제 미개한 이교도라는 소리를 듣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고 5일 자카르타포스트가 전했다.
순다 위위딴은 그 내용과 방식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6대 종교와는 확연히 다르다. 순다 위위딴 신앙은 이슬람이나 기독교가 전래하기 이전부터 인도네시아에 존재해 왔으나 신진 유일신 종교에 떠밀려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되어 왔고 이젠 거꾸로 유일신 종교 주류의 사회에 떠밀려 정부에게 정식 종교로 인정해 달라고 간청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신의 피조물들이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진 것을 좀처럼 수용하지 못한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종교와 같지 않으면 배척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사람들 얼굴이 각각 다른 것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각각의 종교와 신앙이 다른 모습과 체계를 가진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순다 위위딴 신앙을 가진 이들이 치러야 하는 희생이 적지 않다. 새로운 입교자들이 넘어야 할 허들도 낮지 않다.
일단 순다 위위딴 신도들은 공무원이 될 수 없고 호적사무소에 정식 부부로 등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수브라따를 비롯한 순다 위위딴 교도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이지만 자국 내에서 사실상 소외되고 추방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진 종교 때문에 신분 상 법적 하자가 반드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렌 따운(Seren Taun)이라 부르는 추수감사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는 1982년부터 수하르또 정권이 끝나던 1998년까지 불법으로 금지까지 당했던 행사다. 이 행사에는 해충으로부터 수확물들을 보호하는 뻬스타 다둥(Pesta Dadung)이란 의식이 집전되는데 이에 앞서 순다 위위딴 교도들 중 남성들은 검은 색 옷을 입고 횃불을 밝힌 채 주문을 영창하고 여성들은 흰색 전통 끄바야 의상을 입고서 전통 순다어 노래를 부른다.
순다 위위딴 신앙은 조상들의 영혼과 자연 섭리를 숭배하는데 이는 종종 그들이 생명 없는 대상을 따르는 이교도라는 오해를 낳게 했다.
공무원으로 일했던 수브라따는 재직 시절 매번 승진에서 누락되었고 당시 상사들로부터 이교도 또는 무신론자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갖은 추궁과 조롱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는 “신은 나를 순다 위위딴 신앙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았습니다.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라고 회상했다.
급기야 인도네시아 정부는 토착 신앙을 가진 이들의 공직 진출 기회를 아예 막아버렸다. 그래서 순다 위위딴이 수백 년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까지, 토착신앙을 가진 1천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을 할 때 ‘종교’란을 채우지 않았고 그로 인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종교란이 공백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은 운전면허도 연장할 수 없고 특정 직업군에는 구직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공무원이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2017년에 이르러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는 토착신앙을 가진 이들이 종교란에 ‘절대신에 대한 신앙’이라는 상투적 문구로 써넣는 것을 허용했다. 물론 이것 역시 그들로서는 모욕적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들이 믿는 신앙 체계 속 신들 중엔 절대신도 있지만 수많은 주변신들도 있었으므로 정부가 허용한 문구는 그들 신앙의 본질을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헌재 판결을 따라 종교란을 그렇게 채우기 시작한 후에도 인도네시아의 관료주의는 그들을 편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게 기재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이교도임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제 신앙을 종교란에 적고자 하는 이들은 신분증을 만들거나 갱신할 때 상투적 문구를 적고 싶지 않았으므로 갈등과 곤란을 겪어야 했다. 적지 않은 신도를 가진 인도네시아의 토착신앙은 그 종류가 수십, 수백 개가 되는데 그것을 달랑 ‘절대신에 대한 신앙’ 한 가지 문구로 뭉뚱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헌법이 인정하는 6대 종교 이외에는 합법적인 혼인신고가 불가능하여 어떤 이들은 비공식적인 혼인관계, 즉 법적 보장이 없는 사실혼 관계로 살 수밖에 없다. 이는 특히 여성들에게 운신의 폭을 더욱 좁히는 족쇄이자 낙인이 되었다. 그들의 자녀 역시 태생적 합법적이 인정되지 않아 법적으로 혼외자로 기록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불법인간’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 행정부가 심지어 그들 선조들의 묘지까지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쇄조치를 내리기도 한다. 순다 위위딴 교도이자 반둥 빠자자란 대학교 인류학자 인드라와르다나(Ira Indrawardana) 교수는 이를 명백한 차별과 탄압이라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관청에서는 지역사회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교육문화연구기술부 고위 공무원인 샴술은 신분증에 수많은 종교를 일일이 다 표기해 전산처리 할 수 없어 부득이 보편적인 용어로 통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다 위위딴 신도들을 대변하는 데위 깐띠 스티아닝시(Dewi Kanti Setianingsih) 변호사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순다 위위딴 교도들이 1만5,000명에 달했는데 그 이후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차별과 박해를 피해 자신의 신앙을 숨기는 토착종교 신도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세의 대학생인 레스뚜 부아나는 자신이 실제 종교를 말하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기 일쑤여서 어릴 때부터 남들이 물으면 카톨릭 신자라고 답하곤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순다 위위딴 신도임을 알게 된 교사가 순다 위위딴이 종교 축에 끼지 못한다며 대놓고 폄하하는 일도 있었다. 레스뚜는 현재 신분증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어렵사리 해결해 나가는 중이다.
그는 종교 유무, 또는 개인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인만큼 해당 내역을 신분증에 굳이 표기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개인이 어떤 종교를 따르던 그것은 해당 개인의 독점적, 배타적 권리이므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순다 위위딴 신도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그들의 성스러운 수확제 의식에 참여하면 그들의 신앙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순다 위위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그들은 NGO들이나 다른 종교단체들과도 공조하고 있다.
권익위원회를 통해 정부에 로비를 하거나 혼인등기 허용을 위해 법원에 청원을 넣거나 묘지 폐쇄에 대한 항의집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정말 다양성의 상징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서로의 다름을 수용해야 한다고 인드라와르다나는 힘주어 말했다. 국가 엠블렘에 적힌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국가 모토가 순다 위위딴을 비롯한 토착종교 신도들에게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 이전글발리 올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전년대비 250% 증가…인도가 중국 앞서 2023.08.08
- 다음글인니 야당 대선후보 아니스 캠프, 부통령 러닝메이트 선정에 갈등 조짐 2023.08.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