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인니 세컨드홈 비자정책 시행, 혼란에 빠진 외국인 커뮤니티 사회∙종교 편집부 2022-12-1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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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
인도네시아에서 상당한 자산을 현지에 보유하고 있음을 증빙해야 하는 세컨드홈 비자 정책이 이번 달 하순부터 시행됨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오랫동안 살고 있던 외국인 은퇴자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고 11일 자카르타포스트가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이민국은 얼마 전 은퇴체류비자 보유자들에게 세컨드홈 비자로 교체하라는 공문을 내보낸 바 있는데 정작 외국인 은퇴자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비자 구비조건으로서 증빙을 요구하는 자산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부 누사뜽가라 롬복섬에 살고 있는 72세의 호주인 은퇴자 러셀(가명)은 이민국 직원들조차 새 규정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어서 정확한 정보가 절실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지난 10월 25일 이민국장 회람문 IMI-0740.GR.01.01/2022으로 공표된 세컨드홈 비자 정책은 오는 12월 24일부터 발효된다.
세컨드홈 비자를 신청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인도네시아 국영은행 중 한 곳에서 20억 루피아(약 1억6,700만 원)상당의 예금 증빙을 떼어 오거나 인도네시아 국내에 고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외국인 은퇴자들로서는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58세의 영국인 은퇴자 찰스(가명)은 자신의 호주인 친구가 ‘지금껏 줄곧 발리에서 살아왔지만 이제 12월 24일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해당 규정을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란 '우선 키우던 개들을 안락사시키고 자신도 호주로 돌아가 스스로의 안락사를 도모하는 것뿐’이라 했다고 전했다.
많은 외국인 은퇴자들은 자신들의 본국엔 자산이나 친인척 등 아무런 연고도 남아있지 않아 인도네시아가 사실상 세컨드홈이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온리 홈’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들은 대개 매달 은퇴연금을 받아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으며 그리 많지 않은 은행 예금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고령자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옵션은 단기체류비자인 끼따스(KITAS)를 내거나 장기체류비자인 끼땁(KITAP)을 내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유 2억8,000만 루피아(한화 약 2350만 원)의 예금보유증빙을 제출해야 했지만 이는 세컨드홈 비자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20억 루피아 예금증빙에 비해 7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이민국 공문에 따르면 아직 180일 이상 유효기간이 남은 끼땁과 끼따스도 세컨드홈 비자정책이 발효됨과 동시에 무효화되므로 즉시 세컨드홈 비자로 전환해야만 한다.
러셀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직 유효기간이 남은 은퇴비자를 무효화한다는 부분에 많은 외국인들이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호주인 친구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26년간 살아왔는데 세컨드홈 비자 신청요건을 충족시킬 정도의 예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인도네시아 당국이 해당 비자정책을 변경하면서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에 사는 외국인 사회에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같은 우려가 외국인 사회에서 패닉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12월 6일(화) 해당 공문을 내보낸 이후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민국 홍보 코디네이터 아흐맛 누르 살레(Achmad Nur Saleh)는 인내심을 가지고 오는 12월 21일 새로운 비자정책 출범을 기다려 보라고 달래면서도 정작 세컨드홈 비자정책 세부내역에 대해서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세컨드홈 비자 신청요건으로 자산보유증빙을 요구한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은퇴 후 시간을 보내려는 연금생활자들의 자산을 더 많이 인도네시아로 끌어오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작 이미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외국인 은퇴자들에게 대한 배려는 애당초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비자정책과 관련된 세 개의 정부기관, 즉 이민국, 법무인권부 및 관광창조경제부는 모두 자카르타포스트가 보낸 관련 질문지에 아직 아무 대답도 주지 않은 상태다.
세컨드홈 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은 끼땁이나 끼따스와 달리 인도네시아에서 투자 활동도 허용된다고 보도되었으나 실제로 해당 외국인들이 어떤 자격으로 돈을 벌고 그들에게 어떻게 소득세 등을 과세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규정은 아직 불투명하다.
66세의 호주인 은퇴자 제니퍼 비스턴(Jennifer Beeston)은 친구들이나 비자 브로커, 심지어 이민국 직원조차도 해당 규정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12월 24일 새 비자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더라도 자신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인도네시아에 계속 거주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럴 경우 그녀가 인도네시아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관광비자를 받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관광비자는 두 달마다 3백만 루피아(약 25만 원)의 수수료를 내고 체류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난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인도네시아를 사랑하고 발리를 사랑해요. 나는 이곳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난 관광객이 아니예요. 관광객처럼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난 이곳 주민이에요.” 비스턴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녀의 나이에 이제 또 다시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세컨드홈 비자를 통해 더 많은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외국인 억만장자들에게 현지 투자에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컨드홈 비자를 시행한다는 것은 커버스토리일 뿐이고 사실은 돈 많은 외국인 노인들에게 발리에서 장기체류하러면 목돈을 들고 오거나 현지 고가 부동산을 매입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비스턴은 자기 주변의 많은 연금생활자들이 그들에게 보다 호의적인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같은 국가로 이주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세컨드홈 비자정책의 시행을 인도네시아 당국이 외국인 연금생활자들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로 여기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몇 명의 외국인 연금생활자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발리 연금생활자 그룹’이란 이름의 페이스북 그룹에만 2,8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비스턴은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하려는 일이 목욕물을 버릴 때 아기를 함께 내버리는 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새 비자 정책이 현재까지 알려진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서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인도네시아 법을 준수하며 연금으로 받는 돈을 고스란이 인도네시아에서 쓰면서 현지 경제에 일정 부분 기여했던 외국인 연금생활자들이 결과적으로 등 떠밀리듯 인도네시아를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들, 해야만 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가주권에 대해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은 반드시 파국을 낳을 겁니다.” 찰스가 많은 연금생활자들이 관련 규정이 변경될 것을 사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해당 규정이 요구하는 자산보유증빙을 내놓을 수도 없는 형편임을 설명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해당 요건, 즉 증빙해야 할 자산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울 시간도 주지 않고 해당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결국 자산보유 증빙을 할 수 없는 외국인, 특히 외국인 연금생활자들은 모두 인도네시아에서 나가라는 의미다.
“인도네시아 정부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한 국가가 스스로 법을 제정한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단지 내가 간절히 요청하는 바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산보유증빙을 하라며 그어 놓은 금액 한도를 다시 한번 재고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D’라는 이니셜만 공개할 것을 요구한 72세의 여성 미국인 은퇴자는 1990년에 유방암과 관련 합병증으로 거의 죽을 뻔한 후 아무 계획없이 발리를 짧게 다녀갔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후 병 때문에 유망한 직장에서 밀려났고 정신적으로 큰 상실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10년 전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후 새로운 세상에서 멋진 사람들을 만나며 마침내 회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D역시 다른 연금생활자들과 마찬가지로 달리 갈 곳이 따로 없다. 그녀는 인도네시아가 자신의 유일한 집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새 비자정책이 시행되면 그녀로서는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남지 않는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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